‘증인’, 단지 착한 영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좋은 영화인 까닭

“사람들이 재산과 지위를 잃는 것보다 어이없는 명령의 하수인이 되는 걸
더 불행으로 여길 때, 세상은 바뀐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아직 양심보다 두려움이 더 큰 사람들과, 양심이 두려움을 이긴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박성미의 <선한 분노> 중에서-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증인>이 흥행 역주행 중이다. 제 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한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연애 소설> <청춘 만화>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이한 감독의 전작처럼, <증인>도 ‘착한 영화’라는 수식이 붙는다. 하지만 ‘착하다’는 말은 수동적인 뉘앙스가 강해서, 영화의 장점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

영화 <증인>은 깔끔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김향기, 정우성의 안정적인 연기가 관객을 자연스럽게 몰입시키고, 엄혜란, 박근형의 신 스틸러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반전을 포함해 법정영화로서 매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것은 메시지다. 영화는 장애인에 대해 진전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녹록치 않은 윤리적 화두를 던지면서도, 웅변하거나 위압하지 않으며, 잔잔하게 설득해낸다는 점도 굉장한 장점이다.



◆ 장애인의 능력에 주목하기

지우(김향기)는 자폐스펙트럼의 발달장애를 지닌 중학생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지우에게 시를 읽어보라 시킨다. 지우의 특이한 말투에 아이들이 키득대지만, 선생님은 시를 금방 외워서 읊는 지우를 칭찬한다. 교사가 지우를 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지우를 배제하지도 않고 특별히 배려하지도 않는다. 그의 장애(특이한 말투)에 주목하기보다, (시를 외우는) 능력에 주목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지우의 다름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다. 신혜만이 유일하게 지우와 어울리지만, 아이들은 신혜를 “지우 하녀”라느니, “지우 엄마에게 용돈을 받는다”느니 하며 괴롭힌다.

지우는 앞집에서 일어난 변사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지우가 지목한 범인 오미란(엄혜란)의 변호를 맡은 순호(정우성)는 지우를 법정에 세워 진술의 신빙성이 없음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지우를 만나기조차 힘들다. 반면 검사와는 소통이 잘되는 것 같아 보인다. 검사가 지우에게 진술을 받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전문가에게 보여주니, 검사의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높다며 놀라워한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검사는 자폐 장애인과 소통하려면 그의 세계로 들어가라고 순호에게 조언한다. 영화는 순호가 지우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며 점차 신뢰를 얻어가는 모습을 담는다.



하지만 순호는 지우의 진술을 무너뜨려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따라서 지우의 무능과 결핍을 최대한 증명해야 한다. 순호는 지우가 사건을 목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폐 발달장애로 인해 장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설득력을 지닌다. 실제로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분야가 바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의도를 간파하고, 행간의 뜻이나 비유를 읽어내고, 농담이나 비꼬는 말의 뉘앙스를 포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지우는 윤동주의 시에서 ‘차가운 눈’과 ‘따뜻한 이불’이 어떻게 비유로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벼락공부를 한 순호는 법정에서 최대한 지우의 장애를 무능으로 몰아간다. 심지어 순호는 혐오 표현이 담긴 실언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순호는 다시 장애를 결핍이 아닌 능력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장애만 없으면” 이라는 순호의 말에 지우 엄마는 “그건 지우가 아니잖아요.” 라고 답한다. 이는 장애를 떼어버리고 싶은 흠결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이자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사고이다. 이는 “사람은 다 다르다.”는 순호의 말에 의해 보강된다.



영화가 반전을 통해 보여주는 재판 장면은 결핍이 아닌 능력의 관점에서 장애를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반전은 놀랍지만 느닷없지는 않다. 영화가 탄탄한 복선으로 이를 예비해왔기 때문이다. 가령 지우가 짖는 개를 무서워하고, 순호가 개를 쓰다듬는 장면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중의 암시를 갖는다. 즉 지우의 청각이 예민하다는 것과 올바른 소통방법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또한 처음 재판정에 들어선 지우가 시계를 꺼달라고 하거나 사투리가 섞인 혼잣말을 무시로 반복한 것도 모두 반전을 위한 복선이다.

영화 <증인>은 지우의 시점숏을 통해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 어떻게 세상을 느끼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특별한 감각과 능력을 보여준다. 이는 장애인을 연민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삼는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라고 모두 지우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중 특별한 재능이 발견되는 경우는 소수이며, 이를 ‘서번트 증후군’이라 부른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양하므로, 각 개인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 좋은 사람 되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가 핵심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 무엇일까. 영화는 순호의 상황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민변’의 ‘파이터’로 기득권 세력과 싸우던 순호는 이제 대형로펌의 변호사이다. 영화는 첫 시퀀스부터 변호사로서 자괴감을 느끼는 순호를 보여준다. 집행유예를 받게 된 범죄자는 순호에게 “여기 로펌을 선임하지 않았으면 얼마의 형량을 받았을지” 묻는다. 순호는 연봉도 높지 않은 입사 1년차 변호사이지만, 로펌 대표는 순호를 파트너 변호사로 키울 뜻을 내비친다. 발암 생리대 집단소송에서 기업의 변호를 맡은 로펌은 피해자 측에 선 민변에 맞설 소송전략을 순호를 통해 얻는다.

순호는 기꺼이 “때를 묻힐” 각오로 로펌에 적응해나가고 있지만, 크게 양심을 저버린 일은 아직 없다. 오랜 벗인 수인(송윤아)에게 생리대 소송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 피해자 보상에 주력하라며 합의를 종용하는 말을 흘린 것도 수인과 피해자들을 위해 실리를 취하라는 조언이었을 뿐 나쁜 뜻은 전혀 없다. 게다가 오미란 사건의 변호는 모처럼 힘없고 억울한 이를 돕는 변호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받는다. 물론 여기서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나서지 않는다고 누가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다들 뜻한 바를 이루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나도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니 돈 걱정이 끝난다. 하지만 순호는 자신의 커리어를 통째로 던지는 비상한 결단을 내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영화는 이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주변상황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순호의 아버지는 “사람만 좋아서” 빚보증을 물려준 채 파킨슨병에 걸리셨다. “돈 많이 벌면 좋은 거냐?”라고 덤덤하게 묻던 아버지는 편지로 속 깊은 말을 한다. “네가 어려서 변호사가 되어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잘 키웠구나 생각했다”는 아버지의 말은 지우의 말과 맞물린다. 지우 역시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하고 묻는다. 이는 순호에게 변호사가 되려했던 초심을 일깨우는 질문이다. 또한 여전히 민변에서 활동하는 수인의 존재도 그에게 초심을 환기시킨다.

신혜의 악행과 반성도 순호의 결단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복선이다. 신혜는 처음부터 지우를 이용했다기보다 지우와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괴롭히자, 가해자의 편에 선 것이라 짐작된다. 이는 약자의 편에 서던 순호가 “세상의 때”를 묻히기로 결심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강함’을 요구한다. 외부의 압력에 무너지는 사람은 악하다기보다 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신혜는 순호 아버지가 편지에서 당부하였듯이, “실수”를 교정한다. 이것은 순호도 실수를 교정할 것임을 관객에게 암시한다.



순호의 결단을 이끈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진실을 향한 지우의 용기이다. 지우는 믿었던 순호에게 모멸을 당하지만, 진실을 향한 용기를 낸다. “나는 증인이 되고 싶어. 증인이 되어 진실을 말하고 싶어.” 지우의 용기에 감화된 순호는 자신도 용기를 내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건다.

그런데 지우에게 ‘진실’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알게 된 끔찍한 진실을 법정에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것은 ‘좋은 사람’ 이 되어 정의를 구현하려는 그의 의지이다. 즉 선의지와 양심의 발로이다. 그렇다면 순호에게 ‘진실’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변호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저버리거나 모른 척 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좋은 일을 하는 변호사의 길을 포기한 순호에게 ‘나쁜 변호사’로 남을 것인지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를 묻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는 ‘나쁜 변호사’를 포기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한다.



◆ 법정영화로서 아쉬움

영화 <증인>의 반전은 극적인 쾌감을 주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과 궁금한 점을 남긴다.

첫째, 순호는 왜 자신이 알게 된 것을 검사에게 우회적으로 알리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법정에서 밝히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초짜에다 사건에서도 배제되었다니 검사가 영 못미더웠던 탓일 수도 있고, 진실 앞에서 변호사 자격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자신이 행한 오류를 수정하고 싶다는 심정이 컸을 것이다. 다만 그의 돌출행동은 그의 생계뿐 아닐라, 법정영화의 룰을 다소 위태롭게 만든 감이 있다.



둘째, 검사는 오미란이 범인이라고 확신했으면서도 왜 범행동기를 알아내기 위한 수사를 하지 않았을까. 가령 오미란의 뒤를 캐 숨은 가족을 찾는다든지, 노인의 죽음으로 누가 가장 이득을 보는지를 따지는 것이 살인사건 수사의 기본일 텐데, 어째서 검사는 그런 수사를 전혀 하지 않은 걸까. 아무리 초짜검사라 할지라도, 혼자 일하는 조직도 아니고, 언론의 관심을 받는 사건에 대형 로펌을 상대하면서, 이처럼 허술할 수 있는가.

셋째, 로펌 대표는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오미란 사건의 변론을 애초에 맡은 사람도 대표이고, 회계 법인의 자문변호 의뢰도 대표를 통해 들어왔으니, 그가 사건의 내막에 대해 뭔가 눈치 채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비교적 흥분이나 오열이 없는 재판정에서 가장 격앙된 목소리로 재판 진행을 반대한 것도 대표이다. 그는 무엇을 알고, 어디까지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런 반응을 보인 걸까.



이처럼 영화는 관객의 상상으로 채울 빈틈을 지니지만, 비교적 촘촘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장애인의 결핍에 주목했을 때, 지우는 증인을 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장애인의 능력에 주목했을 때, 지우는 증인을 하기에 가장 완벽한 존재로 보인다. 두 번의 재판 장면에서 지우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달리진 것은 지우를 향한 시선과 태도이며, 그와 적합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영화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좋은 삶’에 대해 환기하는 윤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판사도, 변호사도 사람이듯이, 직업인으로서 성공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아니 먼저 ‘사람’이 되기를 일깨우는 영화라는 점에서, 단지 ‘착한 영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좋은 영화’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증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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