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단짠단짠 김혜자의 능청스러운 센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를 구하려고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시계를 너무 많이 쓴 김혜자(한지민)는 노년의 김혜자(김혜자)로 하룻밤 사이에 돌변한다.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처음부터 마법의 손목시계를 보여주며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한다. 더구나 주인공이 나이를 먹거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코믹극의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시게>는 그간의 비슷한 작품들과는 다른 풍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눈이 부시게>는 아직 스물다섯의 꽃다운 청춘이지만 노인으로 돌아간 김혜자의 삶을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김혜자는 자기가 상상했던 노년의 삶을 직접 몸으로 느낀다. 그것은 상상보다 더 힘들고 구차하다. 생기 넘치는 외모는 주름진 피부와 백발로 변해 있다. 먹어야 하는 약은 너무 많고, 체력은 예전과 다르며, 존재만으로 가족의 짐이 된 듯 느껴진다. 이 혜자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핑 고이는 것이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가 마냥 물에 젖은 솜 같은 드라마는 아니다. 물론 인물들에게서는 종종 눈물의 짠내가 풍긴다. 비단 하룻밤 사이에 늙어버린 운명의 김혜자 때문만은 아니다. 늙어버린 딸 모르게 눈물 흘리는 아빠(안내상)와 엄마(이정은)의 먹먹한 연기 역시 짠내가 가득하다. 또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준하(남주혁)의 삶 역시 눈물 먹은 솜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놀랍게도 반전 매력, <눈이 부시게>의 전체적인 톤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유쾌하다. 물론 그것은 김혜자의 오빠이자 방송 크리에이터, 사실은 거의 백수에 가까운 김영수(손호준) 캐릭터에 도움을 받은 바도 크다. 김영수는 드라마를 종횡무진 누비며 청테이프로 문 틀어막고 삼겹살 굽기를 포함해 수많은 코믹장면들을 보여준다. 특히 tvN <응답하라 1994>의 해태에서 특유의 뺀질뺀질한 코믹연기로 눈도장을 찍었던 손호준은 물 오른 코믹 연기를 이 작품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김영수 캐릭터만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센스 있는 코믹한 대사나 상황들을 적절하게 배합한 제작진의 능력 역시 탁월하다 하겠다.



이처럼 짠내와 유쾌함을 오가는 <눈이 부시게>는 대배우 김혜자의 연기를 통해 최고의 밸런스를 보여준다. 배우 김혜자가 아니었다면 젊은 영혼의 노인 김혜자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를 우울한 캐릭터나 코믹한 캐릭터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들은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김혜자가 담고 있는 ‘단짠단짠’의 매력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오가며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아무래도 김혜자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미 김혜자는 KBS <엄마가 뿔났다>나 JTBC <청담동 살아요>를 통해 특유의 느릿하게 코믹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반대로 tvN <디어 마이 프렌즈> 조희자를 통해서는 보는 이의 눈물을 쏙 빼는 여주인공을 맡았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의 배우 김혜자의 김혜자 연기는 여전히 놀라운 순간의 연속이다. 그것은 이 배우의 능청스러운 센스 때문이다. 김혜자의 움직임이나 말투 표정에는 슬금슬금 스물다섯의 김혜자(한지민)가 스며든다. 스물다섯이 느끼는 감성이나 유머감각을 노년의 표정이나 말투로 위화감 없이 자연스레 소화해내는 대배우의 노련함이라니. 그리고 과장된 연기 없이도 보는 이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연달아 터뜨리는 대배우의 감수성이라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는 요리를 하는 도중 맛을 보며 “그래, 이 맛이야.”라는 대사를 친다. 사실 “그래, 이 맛이야.”는 김혜자가 조미료 CF를 통해 남긴 그녀의 유행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배우 김혜자의 표정이나 말투를 통해 그 시절 그 조미료는 감칠맛 나는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의미 있는 메시지와 위트 있는 장면들, 거기에 배우 김혜자의 연기까지 더해진 <눈이 부시게>에는 바로 감칠맛 나는 이야기의 맛이 물씬 풍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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