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리갈하이’, 결국 ‘아갈하이’ 될 것 같은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금토드라마 <리갈하이>는 일본드라마 <리갈하이>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일드 <리갈하이>는 돈맛의 쩌는 맛을 아는 변호사 코미카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법정 드라마다. 그에게 있어 법정은 재판에서 이기고 돈 많이 벌면 장땡인 곳이다.

비호감 냄새 풀풀 풍기는 코미카도의 코믹한 궤변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데 희한하게 어떤 울림이 있다. 우리가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정의와 윤리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동시에 정의라는 그늘 안에 숨은 현대인이란 그저 스스로를 타인보다 청렴하고 윤리적인 존재라고 자위하는 존재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일드 <리갈하이>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당신이 믿는 세상의 윤리를 믿지 말라는 것.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느니 우물 밖으로 기어 나오는 독사가 낫다는 것. 그러다 보면 속물스럽고 웃기는 ‘찐따’처럼 보이던 코미카도가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철학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반면 한국판 <리갈하이>는 원작의 메시지보다는 코미카도의 코믹한 캐릭터와 몇 가지 서사를 따오는 수준에서 드라마를 가공해낸다. 그렇다보니 JTBC <리갈하이>의 고태림(진구)은 코미카도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로 다가온다. 말 많고, 속물스럽지만, 혹시나 이 캐릭터가 미움 받을까 염려하여 한국식으로 은근히 정 많은 아저씨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결과 고태림은 말 많고 시끄러운 동네 바보형처럼 여겨질 뿐,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는 다 뽑혀 버렸다.

남자주인공의 중심이 흔들린 대신 한국판 <리갈하이>는 여주인공에 좀 더 힘을 준다. 원작의 마유즈미 캐릭터인 서재인(서은수)의 분량이 오히려 고태림보다 많아 보일 정도다. 남자주인공의 캐릭터가 약해진 만큼 여주인공 서재인의 성장담을 주요 서사로 삼으려는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 서재인은 강해지기 위해 권투도 한다. 지루할 만큼 많이 한다. 하지만 서재인의 여성 서사 이야기는 그리 깊이 있거나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면에서 2017년 방영된 KBS <마녀의 법정>은 일드 <리갈하이>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면서 여성 서사의 이야기도 발굴해낸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녀의 법정>의 속물 검사 마이듬(정려원)은 코미카도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여성 캐릭터로서의 까랑까랑함도 갖춘 신선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판 <리갈하이>는 흔한 ‘한드’의 전략처럼, 캐릭터들에 별다른 개성이 없을 때 그냥 둘을 엮어주려는 게 아닌가 싶다. 말싸움하는 남녀 사이에 되도 않는 로맨스를 집어넣어, 입으로만 <리갈하이>를 외칠 뿐 빤한 로맨스물인 ‘아갈하이’가 될 위험이 충만한 것이다.



사실 <리갈하이>만이 아니라 몇 년 사이 성공한 리메이크작보다는 실패한 리메이크작이 더 많았다. 원작의 명성에 기댔지만 한국화 전략이 어설픈 작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tvN <안투라지>는 할리우드의 허세를 한국식으로 뽑아내면 얼마나 우스운가를 증명하는 데만 성공했다. KBS <내일도 칸타빌레>는 원작 <노다메 칸타빌레>의 과장된 분위기를 한국식으로 소화하지 못해 ‘노답’인 칸타빌레라는 비웃음만 샀다.

반면 tvN <마더>는 성공적인 리메이크에 속한다. 원작이 지닌 모성의 힘을 보여주는 메시지나 인물들을 섬세하게 잘 변주했다는 인상이 드는 작품이다. 특히 영신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역시나 독보적인 배우 이혜영이 소화하면서 모성의 이야기지만 흔한 신파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KBS <직장의 신>은 원작 일드보다 어떤 면에서 더 훌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작과 한국판 역시 똑같이 계약직과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코믹물이다. 하지만 한국판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 김(김혜수)은 한국인에게 친숙하면서도 좀 더 활기찬 인물도 그려졌다. 특히 원작에 없는 몇몇 에피소드들이 추가되었는데, 이야기의 흐름에도 이질감이 없고 한국의 정서와도 꽤 어울렸다.

안타깝게도 한국판 <리갈하이>는 리메이크 작업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듯하다. 원작의 장점은 날리고, 한국화 전략 역시 최악의 수를 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리갈하이>라는 제목을 쓴 의도자체가 좀 불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법정물에 <리갈하이>라는 알려진 이름과 원작의 에피소드를 살짝 끼얹어 눈길을 끌려는 그런 인상.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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