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캐릭터는 괜찮은데 스토리는 어째 영

[엔터미디어=정덕현] 어째서 이렇게 좋은 캐릭터를 두고 유치한 스토리 전개에 머물러 있을까.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드라마의 시작은 좋았다. 김해일(김남길)이라는 각별한 사연과 성격을 가진 캐릭터가 주는 특별한 매력이 기대감을 키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딘지 겁에 질린 듯 구담시 조폭들의 행태를 보면서도 눈감아주고 있는 형사 구대영(김성균)이나 역시 욕망을 위해 진실을 적당히 가리고 라인을 위한 ‘전략적인 수사’나 하고 있는 검사 박경선(이하늬)도 나쁘지 않았다. 두 인물은 결국 김해일을 통해 변화할 것이고 음으로든 양으로든 공조하게 되는 인물들일 거였다.

실제로 구대영은 과거 자신의 파트너가 구담시 조폭들에 의해 무참히 맞고 살해된 아픈 경험을 갖고 있고, 박경선은 자신이 하는 일이 신의 하는 일과 같다고 말해줬던 이영준(정동환) 신부가 살해된 사건에 대한 아픔 같은 걸 숨기고 있다. 결국 이 두 인물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김해일을 도와 구담시의 사탄들(?)을 대적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열혈사제>는 악역들도 그 캐릭터를 분명히 세워두었다. 황철범(고준) 같은 조폭 우두머리가 드라마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그 뒤에 있는 구담구청장 정동자(정영주), 부장검사 강석태(김형묵), 구담경찰서장 남석구(정인기), 국회의원 박원무(한기중) 같은 권력자들을 포진시켰다. 여기에 기용문(이문식) 같은 사이비 종교 매각교 교주의 등장은 사제인 김해일과의 대립각 또한 분명히 만들어주는 포석이다.

또한 <열혈사제>는 드라마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조연들도 나쁘지 않다. 구대영과는 달리 불의를 보고 그냥 넘기지 못하는 신참형사 서승아(금새록)가 그렇고, 의외로 화가 많아 보이는 김인경(백지원) 수녀나 외국인 근로자로 등장하는 쏭삭(안창환) 같은 캐릭터도 후에는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들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 캐릭터들이 주는 서민적인 정감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캐릭터들이 모두 포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혈사제>의 스토리 전개는 어딘지 지지부진하고 어떤 면에서는 유치한 느낌을 준다. 중대한 스토리라고 하면 이영준 신부가 살해당하고 자살로 위장된 채 심지어 성추행 누명까지 씌운 사건이지만, 그 후에 이야기는 그다지 진행된 게 없다. 이런 누명을 씌우는 거짓 진술을 한 두 명의 증인을 두고 이를 숨기려는 ‘사탄의 무리들(검찰, 경찰, 정치인까지 모두 포함해)’과 이를 찾아내 진실을 밝히려는 김해일과 서승아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스토리의 대부분이다. 사이비 종교 교주 기용문이 등장했지만 여기도 아직까지는 이야기가 본격화되지는 않았다.

스토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만나 부딪치고 싸우면서 치고받는 걸 반복하면서 이들 좋은 캐릭터들 또한 어딘지 빛이 바래간다. 물론 보여주는 액션과 자잘한 상황 속에서의 코미디가 적지 않다. 단적인 예로 김해일이 구대영에게 주먹을 날리고 코피를 터트리며 쓰러지는 장면은 만화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의외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 구대영이 김해일을 쫓아다니는 장면을 빠른 속도로 쫓고 쫓기는 모습으로 연출한 것도 과잉된 코미디적 방법을 썼다.



물론 이런 만화적 연출이 나쁜 건 아니지만, 본 스토리 전개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런 자잘한 것에만 이야기가 머물러 있는 건 유치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주말드라마가 갖는 특징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빽빽한 밀도의 이야기는 주말에 편하게 시청자들을 유입시키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느린 전개에 잘 보이지 않는 스토리는 자칫 잘 포진시켜놓은 캐릭터들마저 희석시킬 위험성이 있다. 오랜만에 주목되는 김남길이나 이하늬의 액션과 코미디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유치한 스토리에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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