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내편’, 2019년에 50%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한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2019년에 50% 시청률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이 49.4%(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며 50%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물론 2011년 방영됐던 KBS <제빵왕 김탁구>도 50.8%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그 후 지금까지 급격히 변해온 미디어 환경과 우리네 삶의 양태를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 50%에 육박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는 건 어딘지 기현상처럼 보인다. 과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과거였다면 이런 시청률 수치가 그 드라마의 가치를 얘기해주는 절대적인 지표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까지 붙여진다. 하지만 2019년의 공기는 다르다. ‘국민드라마’라는 호칭 자체가 구시대적이다. 그건 지상파 몇몇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던 매스미디어 시대에나 어울리는 호칭이다. 지금 같은 다채널 시대에 어느 한 방송프로그램이 수치적으로 국민의 절반을 끌어 모은다는 건 대단해보이기보다는 퇴행적으로 보인다.

<하나뿐인 내편>은 여러모로 부실한 드라마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이야기는 무한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또 극성을 만들어내는 갈등 코드들은 이미 너무 많이 나온 것들을 뒤범벅해 놓은 것이라 패턴이 뻔히 읽힌다. 게다가 심지어 시대 정서와 역행하는 면까지 갖고 있다. 때아닌 가족주의를 내세우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것이 핏줄과 혈연에 대한 강박으로까지 가는 건 공감하기가 어렵다. 오로지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남편과 이혼하고 살아가는 딸 캐릭터는 때 아닌 심청 캐릭터의 부활처럼 보인다.



그래서 결국 “욕하면서 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기사의 댓글창에 가득 채워진 것들은 비판적인 반응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것에는 이러한 떨어진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그 가장 큰 정서적 요인으로 꼽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신파성’이다. 사실 지금 같은 시대에 ‘신파’과 과연 먹히겠느냐고 말하지만, 신파는 여전히 강하다. 그것도 현실에 지쳐 울고 싶은 시청자들을 앞에 두고 있다면 말이다.

이 드라마가 퇴행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코드는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다. 강수일(최수종)은 살인누명을 쓰고 복역하다 모범수로 출감했지만, 그 과거의 사실은 그는 물론이고 그의 딸의 인생까지 걸림돌을 만들어낸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를 그 딸인 도란(유이)에게 씌워 이들을 핍박한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국 강수일은 누명을 쓴 것뿐이고, 그래서 힘겨운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설정이다. 이건 뭘 말해주는 걸까.



이 드라마에서 누군가의 불행은 그 자신이 자초한 일이 아니다. 도란은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지만 살인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다. 강수일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다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로 평생의 주홍글씨를 새기게 된다. 결국 이들의 불행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다. 이 지점은 드라마가 지나치게 뻔하고 식상하지만 시청자들이 어쩔 수 없이 보게 만드는 요소다. 드라마는 힘겨운 현실에 처한 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불행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나뿐인 내편>은 이런 정서적 포인트가 있어서 이토록 퇴행적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것을 KBS는 중요한 성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포상휴가를 보내줄 정도로. 그런데 만일 이걸 성과로 받아들인다면 KBS가 앞으로 가려는 길이 보다 명확해 보인다. 그건 콘텐츠가 다소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KBS라는 채널이 가진 색깔임을 인정하고, 과거적 기준이 되어 있는 시청률에 집중하는 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KBS 드라마들은 이런 흐름을 전면에 내세웠다. 수목드라마에 문영남 작가의 <왜그래 풍상씨>를 세워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그것이다. 시청자들은 이것 역시 성과라기보다는 퇴행이라고 비판했지만, KBS는 이 드라마 또한 성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역시 포상휴가를 보내주는 것이 그 증거다.

결국 KBS는 이대로 이제 다채널 시대에는 맞지 않는 추산방식이라고 지칭되는 과거적 기준의 시청률에 집중하는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시청률 50%란 그래서 거꾸로 보면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과거적 기준 속으로 돌아가려는 채널의 ‘상징적 수치’처럼 보인다. 시청률 50%를 내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른바 국민드라마는 다양한 취향으로 선택적 시청을 하기 시작한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5%에서 10% 시청률을 내며 확실한 취향적 색깔을 내는 드라마들이 더 다양하게 포진해 시청자들을 나눠 갖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정상적인 풍경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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