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토론 프로그램이 이 지경까지 됐을까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100분 토론’언제 방송 하나요”“토론 프로그램 진행자가 정부 대변인 인가요. 편파 진행이 너무 심하네요”“패널들이 나와 눈길 끌려고 자극적인 발언으로 생쑈를 다 하는군요”“토론자로 나와 주제에 대한 내용조차 모르고 나온 것을 보니 차라리 토론 프로그램 폐지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네요”…

요즘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들이 그 존재감을 상실하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당수 시청자들의 성난 그리고 심드렁한 목소리다.

근래 들어 KBS‘생방송 심야토론’ MBC‘100분 토론’SBS ‘시사토론’등 방송 3사와 tvN ‘끝장 토론’ 등 케이블 방송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들은 왜 방송을 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기획 의도와 존재의미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심지어 논란과 화제의 진원지이자 시청자의 열띤 관심의 유발지 였던 토론 프로그램들은 이제 그 타이틀 마저 가물가물할 정도로 일반인의 뇌리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다만 토론 프로그램들은 일부 패널들의 극단적인 발언과 진행자의 문제 있는 진행 태도가 논란을 일으켰을 때만이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 속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어쩌다 토론 프로그램이 이 지경까지 됐을까 라는 한탄이 방송가 안팎에서 터져 나온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해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거나 혹은 대립되는 당사자들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것을 도모하는 토론 프로그램은 토론 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우리의 상황에서 존재의미가 컸다. 1967년 TBC ‘동서남북’으로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역사를 열었고 1987년 KBS ‘심야토론’을 계기로 TV 토론 프로그램이 본격화된 이후 토론 프로그램들은 시청자와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토론 프로그램은 전문가나 이해 당사자들이 나와 논쟁이 되는 사안이나 이슈, 쟁점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 해 시청자나 국민으로 하여금 특정 사안이나 쟁점에 대한 최선의 평가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토론을 통한 활발한 소통을 통해 대립되는 입장의 간극을 좁히거나 의견 차이를 줄이는 역할도 했다. 토론 프로그램은 소통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 대안적인 공론의 장을 조성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큰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토론 프로그램은 어린이,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토론의 중요성과 토론문화에 대한 교육적 기능까지 수행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KBS ‘생방송 심야토론’, MBC ‘100분토론’등 토론 프로그램들은 대립되는 입장을 가진 이해 당사자나 전문가들의 소통보다는 특정한 입장만을 고수 혹은 억지에 가까운 주장, 심지어는 왜곡된 입장의 정당화 내지 합리화하며 단절과 불통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패널이나 진행자는 토론 주제의 본질도 파악하지 못한 채 중구난방으로 산만한 토론 프로그램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토론이 아닌 편파적인 입장만이 횡행하는 말싸움만이 전개되는 것이 오늘의 상당수 토론 프로그램의 현주소다.



세계적 석학 하버마스의 TV 토론 프로그램 비판처럼 우리 TV토론 프로그램은 시민의 공적 관여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진정한 공적 토론이 아니라 단순한 홍보나 수동적 관객의 영역이 돼 일반인의 관심을 정치적 행위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의사(擬似) 공론장(pseudo-public sphere)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토론을 위한 통로가 아닌 여론을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토론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토론 프로그램이 제 구실을 못하고 관심을 얻지 못한 상당부분은 토론 프로그램의 승패를 좌우하는 진행자들의 문제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시청자들은 토론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진행자다. 즉 시청자들이 토론 내용, 주제, 토론 프로그램의 구성 및 연출, 게스트 및 패널 보다는 진행자를 보고 토론 프로그램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토론 프로그램에 있어 진행자는 중요하다.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토론을 잘 이끌어 가야하는 것은 물론 토론 주제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진행을 해야 하며 패널들의 입장이 잘 개진되고 원활하게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진행자는 주제에 대한 장악력 및 소화력, 전문성과 신뢰성, 조정능력, 방송진행능력을 갖춰야한다. 그리고 발언기회와 시간 부여나 주제전환만을 하는 소극적인 진행보다는 불명확한 부분과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과 의견요약, 토론자 중재, 패널과 브라운관 너머의 시청자들과의 소통의 활성화 등 적극적 진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중 일부는 토론 내용과 주제의 장악력이나 소화력이 크게 떨어져 생기는 산만한 진행부터 다양한 의견이나 정보 제공이라는 토론프로그램의 본질을 망각한 채 특정한 입장만을 두둔하는 편파적 진행까지 각종 문제점을 노출시켜 토론 프로그램 추락을 가속화시켰다.

토론 프로그램 존재감이 사라지고 그 역할마저 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장 절실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100분 토론’을 최고의 토론 프로그램으로 부상시킨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다.

정재철 단국대 교수는 지난 2009년 손석희 교수가 ‘100분 토론’을 떠날 때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손석희 교수는 그만한 수준을 지닌 진행자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양쪽 토론자들을 언제나 잘 이끌어 내는 등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한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또한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역시 “‘100분토론’이 대표 토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진행자의 역할이 컸다. 정운영, 유시민, 손석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진행자들은 주제에 대한 장악력이 높았기에 토론을 잘 이끌어 낼 수 있었고, ‘100분토론’이 우리나라 대표 토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손석희 교수는 양쪽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이슈를 다루는 상황에서 어느 쪽의 당파성을 뛰지 않고 균형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토론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뛰어난 위기대처능력, 토론자들의 진행 정리 능력도 탁월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면모를 보였다. 또한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토론 주제와 내용을 장악했고 단순한 산술적, 기계적 균형성이나 형평성을 뛰어넘은 고도의 균형성을 유지하고 토론자 중재 등 적극적인 진행 스타일을 견지했다.

무엇보다 ‘100분 토론’ 진행자로서 손석희 교수는 시청자를 대신한 즉 시청자가 정말 알고 싶어 하는 사안을 날카로우면서도 집요하게 토론을 이끌어 ‘100분 토론’이 사이비 공론의 장이 아닌 진정한 공론의 장 역할을 하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100분 토론’은 손석희 교수가 떠난 2009년 11월19일 이후 쇠락의 길을 걸으며 이제는 진행자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100분 토론’뿐만 아니라 상당수 토론 프로그램들이 사이비 공론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요즘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서 손석희 교수의 부재를 확연히 느끼는 동시에 손석희 교수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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