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손호준·남주혁도 이 드라마에서 빛났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지난 10회에 빛나는 순간을 오롯이 담아냈다. <눈부>는 초반과 달리 극 중반 다소 느슨한 전개와 코믹과 진지함 사이에서 길을 잃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편의 지지부진함을 만회하듯 10회에서 이 드라마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눈부> 10회는 샤넬(정영숙) 할머니의 죽음으로 가라앉았던 9회와는 그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노치원 대표 김희원(김희원)에게 납치된 이준하(남주혁)를 구하기 위해 김혜자는 노치원의 몇몇 노인들로 ‘노벤져스’를 만든다. 이들은 각자의 특기에 맞게 눈은 멀었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신공을 발휘하거나, 강아지와의 소통으로 어떤 사나운 사냥개도 ‘산책가까’ 한 마디로 유순한 귀염둥이로 만들기도 한다. 또 쌍둥이 노인들은 거울 위장술을 쓸 수 있었다. 관절이 좋지 않아 늦은 걸음으로 걷는 할머니는 그 신공으로 적들을 묶어두었다.

<눈이 부시게>는 10회에서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잔잔함 감동과 잔잔한 코믹을 간간이 섞었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때문에 웃기기는 웃긴데 어리둥절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황당하면서도 가슴 찡한 코믹극은 실은 반전을 위한 밑밥이었다. 노치원을 탈출한 노인들이 바닷가로 떠나 평화롭게 석양을 바라보던 행복한 그 순간 <눈이 부시게>는 한 번 더 반전을 보여주었다. 바로 엄마(이정은)와 아빠(안내상)가 바닷가에 나타나고 그 순간 김혜자가 자신이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그것이다.



사실 이미 극 중반부터 김혜자가 스물다섯 김혜자(한지민)에서 갑자기 나이가 든 것이 아니라 알츠하이머 속 상상이라는 암시는 있어왔다. 시청자들 역시 김혜자가 알츠하이머라면 실망이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배우 김혜자의 표정 변화만으로 김빠질 뻔했던 알츠하이머 반전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했다. 극적으로 가장 행복한 그 순간 활기찼던 김혜자가 일순간에 무표정한 알츠하이머 김혜자로 달라지는 변화라니. 그리고 그 명암을 담백하면서도 절절하게 보여주는 배우의 표정연기라니.

10회의 인상적인 전개를 통해 <눈이 부시게>는 작지만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드라마의 비전을 보여준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될 것 같다. 또 전편을 아우르는 배우 김혜자, 그리고 또 다른 노역 배우들의 사랑스러운 연기 역시 이 드라마의 감칠맛이었다.

하지만 주인공 김혜자를 더 빛나게 만들었던 두 젊은 남자배우 손호준과 남주혁 역시 <눈이 부시게>에서는 충분히 빛났다. 두 사람은 자칫 심심해지기 쉬울 법한 드라마에 드라마틱한 밑그림을 그려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시작으로 중간 중간 침체기가 있었지만 손호준은 KBS <고백부부>를 통해 연기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이번 <눈이 부시게>에서는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코믹연기의 재능을 완벽하게 보여준 듯하다. 가끔씩 드라마가 느슨해질 때마다 경쾌하게 분위기를 반전시켜 주는 역할은 손호준의 김영수 몫이었다. 더구나 손호준은 대배우 김혜자와 경쾌하면서도 따스한 호흡을 보여주면서 이 배우가 남남, 남녀, 아니 남녀노소 모두와 기분 좋은 ‘케미’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걸 한 번 더 입증한 셈이다.



한편 남주혁은 <눈이 부시게>의 이준하를 통해 이 배우만의 감성이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사실 MBC <역도요정 김복주>의 정준형 역할까지만 해도 남주혁은 청춘 로맨틱물의 전형적인 남자친구 캐릭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할머니를 잃고, 방황하는 이준하를 연기하는 남주혁은 달랐다. 이준하의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또래 사내애의 어떤 포즈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 대사 없이 어둠 속에 길 잃은 새처럼 서 있는 순간이면 이준하의 비통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눈부>에서 남주혁은 그 역할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데 최적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나중에는 아예 제작진이 배우 남주혁의 감정선을 학대한다 싶을 정도로 이준하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웃음을 담당한 손호준과 눈물을 담당한 남주혁은 <눈이 부시게>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니었다. <눈이 부시게>는 사실상 황혼이 주인공이고 젊음이 살짝 그 황혼에 빛을 비춰주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전부를 아우르는 이야기 속에서 어쩌면 두 젊은 배우는 주인공일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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