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나무’ 작가들이 처음 밝힌 뒷이야기 [인터뷰1]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SBS 수목극 ‘뿌리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를 만나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봤다. 두 작가는 마지막회인 24회부가 방송된 후 처음 하는 인터뷰라고 했다.

우선 19회 세종 한석규의 8단 오열연기. 세종 한석규가 정기준(윤제문)에 의해 아들 광평대군(서준영)을 잃고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10여분에 걸쳐 단계별로 변하는 이 연기는 한석규 연기내공의 최고치를 이끌어낸 명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 박 작가는 이도의 감정을 위해 조금 비워두고 썼다고 했다. 지문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한석규의 연기를 보고 싶었던 거였다. 왕이 버선발로 나가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한석규는 대본을 보고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제가 준비한 게 있는데 좀 해볼까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두 작가는 한석규의 대본 해석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다고 했다. 박 작가는 “한석규씨의 연기를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설레면서 보게 된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할까?”라는 마음으로 봤다고 전했다.
 
두 번째의 궁금증은 수많은 인물들이 죽은 마지막회.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상인물은 거의 다 죽었다. 이신적과 심종수만 살아남았다. 작가는 “이득을 취하는데 밝은 이신적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인물이다. 언제건 살아남는다. 심종수는 역사상에서 잊혀진 인물이어서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많은 인물이 죽은 건 팩션사극의 역사성을 담보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세종때는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도의 마음은 지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거대한 시대정신을 충돌시켰다. 이를 칼을 사용해 죽이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이도에게 참담함을 주는 것이다. 극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형상화해 칼바다를 보여줘 차갑고 냉엄한 역사적 현실앞에 이도를 남겨둔 것이다. 세종은 마지막에 ‘이제 똘복은 없다. 소이도 없다. 물론 가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 안가봤겠느냐. 갔을 겄이다. 무덤이 없었겠지. 이도가 있는 곳은 자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기 그지 없는 곳이다. 이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사랑했던 캐릭터들이 줄줄이 죽어 기분이 안좋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글자가 살아남았지 않나. 그래서 엔딩 컷은 글자였다.”



마지막 반전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나왔다. 재상중심정치를 구현하려한 밀본의 중간 실행자로 등장했던 한가놈(조희봉)이 이후 세조의 책사가 된 한명회였다는 마지막 반전은 어색한 부분이었다. 세조는 밀본이 추구한 재상총제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왕이다.

“맞다. 세조는 한글을 너무나 사랑한 인물이다. ‘석보상절’까지 직접 지었다. 원래 한가놈이 밀본을 배신하게 된다. 드라마를 끝내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안나왔다. 원래는 한가놈이 심종수를 죽이고 밀본 명단을 붙태운다. 그리고 정기준에게는 ‘이제 비밀결사로 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집현전은 박살내주겠소’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24부작으로 끝내기에는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정체를 들어낸 한가놈에 어깨를 부딪힌 성삼문과 박팽년을 보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와 반포에 공을 세운 성삼문과 박팽년은 세조때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다 엄청난 고초를 겪게 된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한명회가 아닌가?
 
이밖에도 두 작가는 신소율과 정종철이 남매 설정이었고, 3각관계 설정도 있었다는 등 빠진 부분을 이야기 해주었다. ‘뿌리~’는 작가의 탄탄한 대본으로 완성도를 높인 드라마다. 게다가 많은 리뷰와 해석,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준 드라마이기도 했다.



작가에게 사극이 이처럼 현대적으로 소비될 것으로 예상했는지 물어봤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다. 글자를 다루는 내용이고 뉴미디어시대라서 이야기들이 제법 나오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고 누구에게 해당될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네티즌들이 드라마를 유희수단으로 가지고 논다. 이중에서 최고의 소설은 밀본은 MB라는 부분이다.”

김, 박 작가는 사극으로 새로운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대장금’ ‘서동요’를 썼던 김 작가는 ‘선덕여왕’부터 박 작가와 함께 대본을 쓰고 있다. 중간에 수사물인 ‘히트’를 쓰기도 했지만 주력은 사극이었다.
 
이들이 쓰는 사극이 여느 사극과 다른 점은 인물간의 경쟁과 갈등이 논리 대결적 양상을 띠면서 심리와 책략 등의 요소가 개입돼 보면서 생각하게 하는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사극의 스토리는 우리가 이미 아는 내용이지만 이들의 사극은 누가 ‘어떤 재주와 실력으로’ 이기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 두 작가가 왕(세종)과 사대부(밀본), 백성(채윤, 소이), 이 삼자 논리를 개발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 건 당연하다. 인터뷰를 함께 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사극의 매력이 무엇인지 하고 물었다.



“외국애들은 못하죠.(웃음) 사극의 매력은 인물 모두에게 극성과 서사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극은 전원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이를 ‘로열 패밀리’에서 한 번 해보려고 했다.(‘로열패밀리’는 이 두 작가가 기획과 각색에 참가했다. 그러고 보니 ‘로열 패밀리’가 왕조를 재벌가로 옮긴 것이라 보면 이들이 활용하는 사극 원리가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사극은 갈등이 세다. 목을 치는 것도 가능하다. 인물들을 살리기가 쉽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극을 했으니 다음은 현대극을 쓰고 싶다. SF도 좋을 것 같다. 일단 내년에는 우리 팀의 보조작가가 입봉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크리에이터를 맡는다.”
 
기자가 지금까지 만나본 드라마 작가들은 자의식이 강하고 깐깐해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너무나 부드럽고 털털하다. 속에서는 치열할 것이다. 집필실에서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지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외유내강형이다. <신세경 안석환 등 배우와 개파이 무휼 윤평 등 캐릭터 이야기는 2부로 이어집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SBS, 전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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