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까닭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SBS 드라마 <해치>는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파란만장한 과정을 그린 사극이다. 정일우, 이경영, 권율, 고아라, 정문성, 박훈 등 연기자들의 호연이 돋보이고, 촬영과 편집의 퀄리티가 높다. 한동안 가상의 왕을 내세운 퓨전사극이 유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랜만에 보는 정통사극에 반가움이 느껴진다.

알다시피 영조는 무수리 출신인 최숙빈의 아들로, 왕이 되기에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천출의 왕자’라는 신분을 딛고 왕위에 올라, 52년간 왕권을 누렸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것도 당시 보수파였던 노론의 지지로 왕위에 오르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장희빈의 아들이자 소론의 지지를 받던 경종에서 최숙빈의 아들이자 노론의 지지를 받던 영조로 권력이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과연 순탄했을까.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지만, 이 시기를 정면으로 다룬 사극은 별로 없었다. 흔히 영조는 숙종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 무수리의 어린 아들로 잠시 등장하거나, 사도세자를 다룬 사극에서 늙고 괴팍한 아버지로 등장했을 뿐, 젊은 영조를 다룬 예가 거의 없다. 경종에서 영조로 왕위가 승계될 수 있었던 이유를 김이영 작가가 <동이>에서 다룬 적이 있다. 즉 지혜로운 최숙빈이 정쟁이 아닌 협약을 택하였으며, 그로 인해 경종에서 영조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한 작가의 상상이다. 최숙빈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동이’라는 평화의 화신으로 그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당시 역사를 살펴보면 왕위계승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 만만치 않았다. ‘경종독살설’이나 ‘이인좌의 난’을 검색해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해치>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자세하게 파고든다. 김이영 작가는 <동이>를 쓰면서 애써 외면했던 당시의 순탄치 않았던 정치 상황을 정면으로 그린다. 드라마 <해치>는 영조와 노론이 어떻게 견제하고 길항하고 공모하는지를 그리는데, 이를 통해 개혁의 난제를 안고 있는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유의미한 교훈을 안긴다.



◆ 택군, 혹은 적과의 동침

“왕자 하나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영조가 연잉군 시절, 노론의 영수인 민진헌(역사적인 인물은 민진원)에게 물은 말이다. 왕이 신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가 왕이 될 인물을 택하여 지지하는 일명 ‘택군’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숙종 말, 자식이 없는 세자(경종)를 대신할 차기 왕 후보로 당시 집권세력이던 노론은 방계인 밀풍군을 밀고, 소론은 연령군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연령군과 숙종이 잇달아 죽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노론은 연잉군을 옹립하여 세제로 추대한다. 한편 영조가 즉위한 직후 일어난 ‘이인좌의 난’에서 소론은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한다. 왕자와 지지세력 간의 짝짓기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택군’을 순전히 당리당략에 의한 야합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한 독해이다. 정도전과 이방원 이후 유구하게 제기되어 온 ‘왕권과 신권이 경합하고 대립하는 현장으로 읽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진헌은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의 나라’ 라고 못을 박는다. 이는 노론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연잉군은 노론의 추대로 세제가 되고, ‘대리청정’ 요구에 대한 역풍으로 노론들이 역적으로 몰리는 두 번의 정치파동을 겪은 후 비로소 왕이 된다. 이후로도 ‘경종 독살설’과 ‘이인좌의 난’을 겪는데, 영조는 노론을 주축으로 삼고 소론을 일부 참여시키는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정쟁의 파고를 넘는다. 소론 온건파를 이용해 소론 강경파를 진압하는 외줄타기 같은 정국운영으로 영조는 정권초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50년간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여기서 영조와 노론의 관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출의 왕자’인데다 ‘왕권의 강화’를 노리는 영조는 노론과 정치철학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초반에 연잉군과 노론의 영수인 민진헌이 대립하고 논쟁하는 것이 그려진다. 그러나 영조와 노론은 같은 배를 타게 된다. 단순한 대립이 아닌, ‘애증의 관계’ 혹은 ‘적과의 동침’에 가까운 복잡 미묘한 관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런 입체적인 관계를 그리기 위해 영조와 민진헌을 납작한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 영조는 여느 사극의 왕자처럼 착하거나 올곧기만 한 인물이 아니다. 첫 등장부터 과거장에서 대리시험을 치르는가하면, 한량에 난봉꾼으로 소문이 나 있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잘하고, 밀풍군에게는 악의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낸다. 정말 권력을 원치 않는 순수한 존재였는데, 악당들과 싸우기 위해 할 수 없이 나선다는 식의 위선을 떨지 않는다. 과거의 사극이었다면 주인공은 착한 연령군이나 정의로운 박문수 같은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착함이나 정의로움을 뛰어넘어, 유연한 현실감각과 성숙한 책임의식을 지닌 주체로 주인공을 삼는다.



민진헌 역시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나름의 원칙과 실력을 가지고 상대를 압박하고 협상한다. 민진헌은 세제에게 “나는 남처럼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남만큼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 이라 말한다. “노론만큼만 해도 이 나라가 지켜지겠구나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개혁을 표방하지만 무능하고 아마추어적인 국정운영으로 비판받는 정치세력에게 뼈아픈 일침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노론이 엘리트주의에 빠진 부패한 기득권 세력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들의 노련한 정치력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제는 민진헌의 충고를 곱씹으며 그래도 그들처럼 되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되뇐다. 이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되, 이들을 적대하는 것을 넘어서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의 결과가 사헌부 개혁을 둘러싼 세제의 아이디어로 드러난다. 세제는 과감한 인사 조치로 개혁의지를 천명하되, 사헌부에게 자정 기회를 줌으로써 조직의 자존심을 살려주자는 의견을 낸다. 사헌부는 이러한 조치를 이간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내부의 희생양을 찾아 꼬리자르기에 나선다. 이는 소론으로 소론의 난을 진압했던 영조의 정치력이 반영된 대목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영조의 정치에 대해 노론에 무게중심이 쏠린 미완의 탕평책일 뿐이며, 기득권층의 논리에 밀려 결국 근본적인 제도의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고 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을 표방하는 정부가 막강한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에서 어떤 운용의 묘를 찾으며 작은 승리를 쌓아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 정치가 아닌, 법치와 이치

드라마 <해치>에서 사헌부는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배경이다. 제목인 ‘해치’도 선과 악을 분별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상상의 동물로, 사헌부 관복에 새겨지는 상징이었다. 왕의 친위기구였던 의금부와 달리, 사헌부는 왕권 견제 기구로, 고관이나 왕족의 비리도 수사할 수 있었다. 사헌부의 ‘헌’이 ‘헌’법의 ‘헌’과 같은 한자임을 감안하면, 정치가 아닌 ‘법치’의 논리를 따르는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사헌부의 인사권은 비교적 낮은 직급인 이조정랑에게 귀속되어 있었는데, 이는 정치가 아닌 법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어져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노론의 인사독식으로 이런 제도도 의미를 잃는다. 권력에 줄서기 하는 사헌부 관리들로 인해 사건이 정치적으로 해결되기 일쑤였다.

드라마는 오늘날의 검찰에 해당되는 사헌부를 중심으로 연잉군과 호형호제하는 감찰 박문수와 다모 여지의 활약을 보여준다. 이들은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부패한 기득권과 싸운다. 단순한 풍속사건인줄 알았던 사건을 제대로 캐자 정치권의 해묵은 비리가 고구마줄기처럼 엮여 나온다거나, 정치인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압송 장면 연출로 망신주기를 시전하는 모습은 현실정치의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살주회나 인신매매 사건은 궁중암투나 당쟁 속에 가려지기 쉬운 당시의 피폐한 민생을 보여준다. 실제로 당시 농민들 사이에서 조세저항과 흉년으로 유민이 속출했다. ‘이인좌의 난’이 중앙의 정변이 아니라 삼남지방의 반군 형태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잔반 중심의 반군세력에 유민, 소상인, 화전민 등의 하층민이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세제는 여느 양반들과는 다른 신분적 감각을 드러낸다. 그는 양반을 죽인 노비 소녀를 연민하고,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민진헌은 신분제에 의한 착취는 ‘정치가 아니라 이치’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는 단순한 정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조선이라는 체제, 아니 계급사회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는 이념의 문제이다. 드라마는 천민의 피를 이어받은 왕이라는 독특한 출신성분을 지닌 영조가 피억압자에 대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고, 그에게 신분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정초하려는 의지를 부여한다. 실제 역사에서 영조는 균역법, 서얼 기용, 가혹한 형벌 폐지, 신문고 부활 등 백성을 위한 개혁정책을 펴나간 왕으로 평가받는다.



◆ 민심의 향배

하지만 ‘천출의 왕자’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양반들이 그러하듯 그의 신분을 비웃는 백성들이 많았다. “저자의 민심이란 이리 저리 모는 대로 휘둘리기 마련”이란 달문의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달문은 저자의 민심을 좌우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등 오늘날의 언론에 해당되는 역할을 하였는데, ‘거지 왕’ 달문은 연암의 <광문자전> 등에 기록된 실존인물이기도 하다.

달문은 권력의 사주를 받아 민심을 조작하기도 하는데, 그런 그에게 세제는 “누가 권력을 잡든 백성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당신이 도와준 노론이 당신 식솔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 경고한다. 세제는 백성을 위한 왕이 되겠다는 포부로 달문과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 “땅의 세금은 땅의 주인에게”라는 세제의 슬로건에 백성들은 가슴 설렌다. 세제가 모함을 받아 위험에 빠지자, 백성들은 세제를 구하기 자신의 호패를 던지는 집단행동을 벌인다. 이를 본 달문은 “조작되지 않은 진짜 민심은 이런 것”이라며 놀라워한다.



싸움은 이상한 방향에서 걸려온다. 드라마는 세제에 대한 역풍을 밀풍군의 모략에 의한 것으로 그리지만, 본질적으로 차기 권력을 두려워하는 현재 권력의 시기와 견제가 핵심이다. 드라마는 세제를 향한 경종과 소론의 공격이 본래 적으로 생각해왔던 노론과의 싸움보다 더욱 비열하고 흉포하게 펼쳐지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세제가 민진헌과의 동맹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념적 지향은 다르지만 나름 원칙론자로서 자부심을 지닌 민진헌에게 세제가 동맹을 제안하는 모습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격언을 생각나게 한다. 이는 또한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을 통한 개혁보다 차기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에 몰입하는 집권세력을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당쟁이 극심했던 시기에 천출이라고 비웃음을 당하던 젊은 영조가 피폐한 민생을 보듬는 개혁군주가 되고자 수난과 모험을 감행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여러모로 현재의 정치를 되짚게 한다. 사헌부를 통해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떠올리고,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을 선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정치적 성과를 쌓아가던 세제를 향해 경종과 소론이 공격을 퍼붓는 것을 보면서 차기권력에 대한 공격을 일삼는 용렬한 정치세력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연 ‘역사는 과거의 정치이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 라는 말이 실감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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