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돌이켜보니 북한은 애초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깊숙히 들여다 본 대표적인 ‘대북통 외교관’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차장의 결론이다. 그 돌이켜본 세월이 어언 14년. 지난 10월 책 『북한은 현실이다』를 냈으나, 만시지탄.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놀아난 뒤였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도자는 분단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역사적·철학적인 탐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게.

김정일이 떠났다. 상황을 다시 파악하려고 지난해 구입한 B.R. 마이어스의 책 를 한번 더 읽다 이내 덮었다. 마이어스는 평양 인민이 통곡하는 이유를 ‘내재적으로’ 상상했다. 그 책을 덮기 전에 떠오른 인물이 송두율이다. 그가 왜 민족의 과제를 더 이상 천착하지 않는지 되짚다가 화가 치밀었다.

결국 약 6년 전에 내가 나를 가르치고자 배우며 써 둔 다음 글을 다시 곱씹었다.

김일성·김정일, 또 카다피에겐 굿바이.

Q: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2003년 3월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 의사를 표명한다. 이 시기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

리비아는 9개월 뒤인 12월 대량살상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조건 없이 폐기하고 국제 사찰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선언한다. 2005년 4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은 그 전에 카다피 측의 정권유지 보장 요구를 수용했다.

미국은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제안했나?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A: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에서의 성공에 고무돼 2004년 2월 25~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차 6자회담 때부터 북한에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했다.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 예를 들어 2004년 7월 2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의 제안은 리비아식 선 핵 포기이며 여기에는 적대정책 폐기 공약과 그 실천 방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정권유지 보장 이상의 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이다.

Q: 북한은 2004년 9월 19일 베이징 공동성명을 낸 바로 다음 날 경수로 제공 시기를 문제삼았다. 즉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이 대북 신뢰조성의 기초가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NPT(핵확산금지조약)에 복귀하며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비아는 정권유지와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외에는 실제로 얻은 게 없다. 북한은 여기에 추가해 미국의 경수로를 요구하는 것인가?

A: 북핵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차 북핵 사태는 1993년 3월에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빚어졌다가 1994년 10월에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로 수습됐다. 북한은 영변 흑연감속로의 가동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경수로 2기와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받았다. 그 중 첫 기는 올해 완공 예정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이득을 챙기면서도 약속을 어기고 1990년대 말부터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북한은 2002년 10월에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그 사실을 시인하면서 경수로와 중유를 포기했다. 북한은 경수로가 아니라 핵을 선택한 것이다.

Q: 그렇다면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은 핵무장인가?

A: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다른 목표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핵무장을 통해 확실한 자위 수단을 확보하고자 한다. 북한은 또한 그 과정에서 다른 목표를 이루는 지렛대로 핵을 활용한다는 전략도 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북한은 핵 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다만 미국이 업수이 여겨 자위적 차원에서 맞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핵무장을 추구하는 배경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이같이 밝히고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핵 문제 해결 시 NPT에 복귀하고 IAEA의 사찰을 포함한 모든 국제사찰을 수용해 철저하게 검증받을 용의가 있다. 하나도 남길 이유가 없다.” 이는 핵무장이 완성되지 않아도 다른 목표가 달성된다면 족하다는 설명이다.

Q: 핵을 지렛대로 활용해 북한이 얻고자 하는 바는?

A: 북한 식의 북핵문제 해결이다. 첫 단추는 미국이 적대정책 포기 의사를 피력하는 것이다. 적대정책 포기란 무엇인가. 불가침조약이다. 국제사회와의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어기는 북한인지라 그 말도 가려 들어야 하지만, 북한은 2차 북핵위기가 발발한 2002년 10월부터 일관되게 불가침조약을 요구해 왔다.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핵 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확약한다면 우리도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2002.10.25 외무성 대변인 담화)

“미국의 ‘선 핵 포기 후 지원’ 요구는 무지의 소치다. 미국이 진정 조선반도 평화를 바란다면 그리고 핵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2003.1.17 조선중앙통신사 논평)

“부시 행정부는 믿을 수 없지만 불가침조약은 미국 의회의 법적 절차를 통해 구속력이 있다.”(2003.1.28 외무성 대변인 담화)

“우리가 불가침 조약을 제안한 것은 미국의 부당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지 그 무엇을 얻어먹자는 것은 아니다.” (2003.2.18 외무성 대변인 담화)

“우리가 미국에 불가침을 공약하고 대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미국에 체제 보장이나 대가 제공을 바라서가 아니다.” (2003.4.29 조선중앙통신사 논평)

Q: 북미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A: 이교관씨는 2005년 낸 <레드 라인>에서 “북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면 주한 미군이 철수해야 하거나 주한 미군의 지위가 평화유지군과 같은 중립적인 것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어 “북한은 주한 미군을 철수시켜 미국의 한반도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대미 전략 목표를 두어 왔다”며 “북한은 이 같은 대미 전략 목표가 실현되면 한반도 통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인식해 왔다”고 설명한다.

2003년 9월 3일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에서 북한은 이런 속셈을 드러냈다. “미국이 불가침조약이 한미상호방위조약 무효화에 이어 주한 미군의 철수로 이어질까 우려해 ‘서면 보장’이나 ‘집단 안보’ 운운하는데 이는 냉전적이다.”

북한 정권은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알아챈 미국에게 “냉전이 종식됐는데 주한 미군을 철수한들 뭐가 문제냐”며 도리어 설득하려 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YT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