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2’의 장점과 진화, 그리고 여전한 한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KBS2 <대화의 희열>은 조용히 강력한 토크쇼였다. 이 프로그램으로 토크쇼 시청률의 역사를 다시 썼다거나 일약 스타를 만들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김숙이나 천종호 판사, 송해 등의 게스트들이 출연했던 회차의 클립들은 SNS 상에서 빠른 속도로 공유되곤 했다. 사회와 당대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의 토크쇼가 사라진 시대에, <대화의 희열>만이 확보할 수 있는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두 번째 시즌인 <대화의 희열2>가 시작한지도 벌써 5주가 되었다. 지난 시즌에 참여했던 강원국 작가의 빈자리를 KBS 신지혜 기자가 메웠고, 편성 또한 한 게스트와 2회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한결 과감해졌다. [TV삼분지계]는 방송 한 달을 맞은 <대화의 희열2>를 들여다봤다. 정석희 평론가는 대화의 기본인 ‘듣기’에 충실하다는 호평을 보냈고, 김선영 평론가는 동시대적 화두를 테이블 위로 올리는 쇼의 탁월함을 짚었다. 이승한 평론가는 이 ‘각별한’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아쉬운 부분을 짚었다.



◆ 듣고 받아서 말하기에 충실한, 대화의 기본

KBS2 <대화의 희열> ‘시즌 1’이 지난해 11월 10화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편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었다. 마지막 편의 울림이 꽤 커서 새 시즌을 기다려왔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혹여 시청률에 연연해 자신만의 색을 잃고 시끌벅적한 그저 그런 토크쇼로 전락해버리면 어쩌나. 그런 이유로 ‘시즌 2’ 첫 번째 초대 손님이 요식업계 대부 백종원이라고 들었을 때 살짝 실망스러웠다. 결국 도전보다는 안전을 택했지 싶어서. 그간 숱한 매체에 연예인보다 더 많이 노출되었던 그에게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려와 달리 2회를 할애할 정도로 좌충우돌 사업 얘기부터 가치관, 인생 목표 등 메모가 필요한 알찬 구성이었다. 특히 사업을 구상 중인 분들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현실적인 조언이었으리라.



3회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4회와 5회 라디오 DJ 배철수도 사실 참신한 출연자는 아니다. 이수정 씨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조언자로 자주 등장하고 있고 배철수 씨야 매일 저녁 라디오를 통해 만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두 분 모두 다른 방송에서는 접할 수 없는 솔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얘기들을 들려줬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토크쇼, 참 오랜만이다. <대화의 희열>에서 진행자의 역할은 듣는 쪽이다. 가끔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는 경우도 있지만 흐름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 질문을 할 때도 다른 토크쇼처럼 대본에 적힌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의 말을 받아서 한다. 서로 주고받는, 그야말로 대화인 것이다. 진행자들을 포함해 지금껏 어느 누구도 잘난 ‘척’, 있어 보이는 ‘척’ 하지 않아서 좋은, 대화의 기본과 배려를 아는 <대화의 희열2>가 부디 궤도 이탈 없이 쭉 잘 달려주기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수다의 테이블 위에 올린 동시대성

“시대를 움직이는 ‘한 사람’의 명사와 사석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의 토크쇼”라는 <대화의 희열> 소개 문구를 보면, ‘시대를 움직이는’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핫한’ 인물을 초대해 트렌드를 쫓기 보다는, 한 분야에서 역사를 써 오다시피한 인물과 만나 그로부터 ‘시대의 산증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들을 때다. 시즌1에서는 첫 회 김숙 편, 마지막 회 이국종 교수 편이 특히 그러했다. 과거의 1인 게스트 토크쇼가 사회 명사를 초대해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 초점을 맞추었을 때,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그 게스트를 매개로, 우리나라 여성 희극인의 현실, 의료 시스템의 문제 등 동시대적 화두를 수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종종 예능이 아니라 시사 토크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즌2에서는 이 같은 장점이 더 진화했다. 신지혜 기자의 합류 덕이 크다. KBS 사회부 소속인 그는 ‘새로운 직업군의 젊은 여성 패널로서 다양한 구성을 위해 섭외했다’는 연출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기존의 1인 게스트 토크쇼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별점을 담당하고 있다. 가령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 편을 보자. 날로 증가하는 성범죄 문제에서부터 가정 폭력 처벌법의 난제까지,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법한 주제들이 예능 토크쇼의 포맷을 빌어 편안한 수다의 테이블 위에서 일상적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의 탁월함이 유독 두드러졌던 회차다.



이 편에서 신지혜 기자는 여성 대상 폭력에 공감하는 당사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기자로서 대화에 심도를 더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신입 기자 시절 참관한 재판에서의 다문화 가정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평소 같은 문제에 공감하고 분노를 느낀 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여성 희극인이 처한 현실을, 전원이 남성 패널로 이뤄진 예능 프로그램에서 논하는 모순이 반복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시즌1보다는 확실한 진화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각별함과 아쉬움 사이

여러 게스트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집단 토크쇼에 비해, 한 명과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단독 게스트 토크쇼는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깊이가 다르다. 그럼에도 단독 게스트 토크쇼를 찾아보기 어려운 건, 사람들이 그 포맷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단독 게스트 토크쇼는 게스트를 미화하기 좋은 포맷이다. 실제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의 이미지 세탁에 동원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게 명사의 입지를 안겨준 전례가 많았다.

KBS <대화의 희열2>이 각별한 건 그 때문이다. <대화의 희열2>는 단독 게스트 토크쇼 포맷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사회 곳곳에서 유의미한 행보를 걸은 이들을 다양하게 섭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예능적 장치나 과도한 호들갑을 걷어내고 우직하게 대화에만 집중한다. 게스트의 삶의 행보를 천천히 되짚어 보고, 그의 내밀한 속내와 생각들을 엮어 큰 그림을 그린다. <대화의 희열2>는 여전히 이 포맷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외친다.



각별한 만큼 아쉬움이 더 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전적인 질문을 조심스러워한다는 점은 여전한 아쉬움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게스트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기회를 놓친다면, 자칫 앞서 사라져 간 단독 게스트 토크쇼의 한계를 반복할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게스트 배철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저 사람을 존경하는 거는 존경하는 거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민감한 질문도 물어보고 그러지. 계속 존경하면서 ‘아, 예 나오셨습니까’ 이러면 프로그램이 진행이 안 되잖아.” 배철수의 태도를 <대화의 희열2>도 조금 배우면 어떨까?

성비 문제도 여전하다. 신지혜 기자가 강원국 작가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간신히 ‘MC 전원 남성’이라는 그림을 피하긴 했지만 아직 성비는 3:1이다. 게스트 성비도 그렇다. 예고편에 등장한 호사카 유지 교수까지 4명의 게스트 중 여성은 이수정 교수 1명뿐이다. 그나마 백종원과 배철수가 2회 편성을 받는 동안 이수정 교수는 1회 편성에 그쳤다. 신지혜 기자가 가장 많이 활약한 회차가 이수정 교수가 출연한 3회였다는 걸 생각하면 성비는 보다 개선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도 나쁘지 않은 토크쇼지만,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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