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리즈너’ 살리는 김병철의 ‘파국미’와 최원영의 ‘백지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KBS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는 유머보다 긴장감으로 승부를 본다. 이 어둑어둑한 화면의 드라마를 보노라면 늦은 밤 새카만 에스프레소 더블을 연달아 마신 것처럼 신경이 바짝 예민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들려오는 삐, 삐, 삐, 삐, 삐…… 아마 <닥터 프리즈너>는 긍정과 신파의 정서를 밑밥으로 깔지 않고도 꽤 괜찮은 성적을 올린 흔치 않은 작품일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의 바탕이 어둡다 보니 <닥터 프리즈너>는 주인공 나이제(남궁민) 못지않게 악역의 비중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이주한 서준이아빠(김병철)와 우주아빠(최원영)로 활약한 두 사람은 전작보다 어두운 이 드라마에서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닥터 프리즈너>에서 김병철과 최원영의 연기는 화이트칼라 악역의 모범으로 봐도 충분할 만큼 매력적인 것이다.



김병철은 [SKY 캐슬]에서 로스쿨교수 차민혁을 통해 피라미드 계급 중간에 끼인 화이트칼라 중년남성의 콤플렉스를 그만의 스타일로 보여줬다. 단호한 목소리와 독선적인 표정을 지닌 김병철의 차민혁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차민혁은 희한하게 진지한데 우스꽝스럽고 그러면서도 나름의 비극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실 그에게 “파국”이란 명대사를 안겨준 tvN 드라마 <도깨비>의 박중헌 역할도 비슷했다. 간신에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으로 변해버린 그의 운명은 평생을 음모와 계략만 꾸미다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존재였다. 사실 전형적인 악역이었지만 김병철의 날카롭고 각진 연기 덕에 이 귀신은 <도깨비>의 키 큰 꽃미남 귀신들 사이에서도 꽤 의미 있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무시무시한데 나중에는 의외로 이 지긋지긋한 귀신이 기다려졌던 것이다.



<닥터 프리즈너>의 의료과장 선민식 역시 딱 김병철 표 악역이다. 이번에는 의료계 집안의 금수저 악역이지만, 선민식은 이번에도 콤플렉스 때문에 비비 꼬인 인물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병철의 선민식은 이번에도 주인공을 괴롭히는 음모를 꾸미고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죽거린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이 배우 특유의 표정과 어우러진 미소를 짓는다.

김병철의 이 미소는 만화영화 <마징가Z>의 악역 아수라백작의 미소처럼 특별한 매력이 있다. 김병철은 표정과 분위기에서 연약한 병아리와 매서운 독수리의 이미지를 오간다. 뭔가 모호한 속내와 감정선, 콤플렉스 등이 이 미소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수라백작이 늘 주인공 때문에 실패하듯, 김병철의 악역 역시 언제나 파국을 맞이한다. 악역이 파국을 맞이할 때 김병철이 짓는 우아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분노의 표정 연기 또한 이 배우의 백미다. 다른 악역 남자배우들이 보여주는 거친 파멸의 동작과 달리 김병철의 악역이 무너질 때는 특유의 파국미가 드러난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김병철 표 악역이 늘 실패할 것을 알지만, 언제나 그 실패의 순간이 주는 재미에 중독된다.



반면 최원영은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쪼다새2’란 별명으로 잘생긴 백치미 코믹배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후 윤상현이나 오지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 같던 최원영은 예상을 깨고 악역을 잘하는 배우로서의 면모를 종종 보여주었다. 최원영이 그려내는 악역은 백치미가 아닌 ‘백지미’,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에서 그 섬뜩함이 드러난다.

특히 KBS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최원영은 사이코패스 법의학자 이준호를 통해 화이트칼러 악역 연기에 정점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평온한 백지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차가운 악함을 드러내는 연기는 백미였다. 그 때문에 [SKY 캐슬]의 황치영은 그냥 말이 좀 느린 따뜻하고 다감한 남자인데, 그의 악역 연기를 잘 아는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무슨 범죄를 일으킬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KBS <닥터 프리즈너>에서 최원영은 재벌가의 아들 이재준을 연기한다. 자칫하면 재벌가의 흔한 악역처럼 느껴질 이 인물은 최원영 덕에 꽤 풍부한 깊이를 얻었다. 최원영의 이재준은 <닥터 프리즈너>에서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 속의 악역처럼 무표정 밑에 검은 속내를 감춘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눈썹과 눈빛과 입술이 하나하나 달라지며 악의 얼굴을 드러낸다. <닥터 프리즈너>의 느릿하고 어두운 리듬감과 최원영의 악역 연기 리듬은 최고의 궁합을 보여준다.

이처럼 김병철과 최원영은 <닥터 프리즈너>를 통해 화이트칼라 악역 연기의 새로운 미학을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중년남성 악역을 답습하는 대신 본인의 개성에 맞는 스타일로 악역의 분위기를 재가공한다. 김병철의 ‘파국미’, 최원영의 ‘백지미’ 덕에 <닥터 프리즈너>는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에 꽤 그럴싸한 힘이 실리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