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제는 양보다 질에 집중할 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지금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통틀어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양적으로는 쏟아져 나오지만 실상 볼만한 드라마는 몇몇 편에 불과하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월화에 5편, 수목에 5편 그리고 금요일과 주말에 무려 6편이 방영되고 있다. 일일드라마나 아침드라마를 빼고도 일주일에 무려 16편 이상이 방영되고 있는 것.

하지만 한편씩 뜯어보면 이런 드라마를 굳이 방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에 있어서나 기획적으로나 부족한 작품들이 많다. 이를테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는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통틀어 10% 시청률을 넘기는 작품이 없다.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7.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내며 그나마 통쾌한 조진갑(김동욱)의 사이다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지금 수위에 오르게 된 건 월화드라마들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탓도 적지 않다.

KBS <국민여러분!>은 애초 최시원 캐스팅이 빚은 논란을 좀체 넘지 못하고 있고, JTBC <으라차라 와이키키2>는 초반에는 시트콤 특유의 웃음으로 주목을 끌었으나 갈수록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점점 잊혀져가는 드라마가 되었다. 여기에 tvN <어비스>와 SBS <초면에 사랑합니다>가 새로이 시작했지만, 두 드라마 역시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초면에 사랑합니다>의 경우, 이미 힘이 빠져버린 멜로를 전면에 가져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고, <어비스>는 ‘영혼 소생 구슬’이라는 판타지 설정을 가져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스릴러, 추격 과정에서 벌어지는 멜로와 코미디를 섞었지만 너무 많은 장르적 색깔들이 겹치면서 이도 저도 아닌 듯한 애매한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곳곳에서 눈에 띄는 개연성 부족은 제아무리 판타지 설정의 만화 같은 드라마라고 해도 몰입을 깨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니 월화에 5편이 쏟아져 나와도 시청자들이 선뜻 선택할만한 드라마가 안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수목도 마찬가지다. KBS <닥터 프리즈너>가 14.2%(닐슨코리아)의 높은 시청률로 오랜만에 KBS 수목의 면을 세우고 있지만 이 드라마도 어쩐지 치고받는 복마전에 깊이 빠져버리면서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일찌감치 시청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MBC <더 뱅커>는 일본 원작이 갖는 우리네 현실과의 괴리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고 tvN <그녀의 사생활>도 덕질이라는 소재를 가져오긴 했지만 뻔한 상사와 부하 사이의 멜로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주목되는 드라마가 OCN <구해줘2>지만 아직까지 초반이라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주말드라마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금요일 밤, <열혈사제> 이후 승기를 잡은 SBS가 <녹두꽃>을 편성해 주목을 끌고 있고, JTBC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스카이 캐슬>을 잇는 완성도 높은 사회극을 그려내고 있다. tvN 역시 종영한 <자백>이 지금까지 어떤 스릴러에서도 보지 못한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전체 드라마들을 조망해보면 주말에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내는 드라마들이 편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만한 드라마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방송사간에 출혈경쟁처럼 보이는 이러한 양적 경쟁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사실 이런 드라마 편성은 과거 본방 중심의 시청패턴이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처럼 본방보다 IPTV 같은 선택적 시청을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과열경쟁이라는 것이다. 결국 많이 만들어지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드라마들이 대부분이라는 건 자칫 드라마 생태계 전체의 체질을 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최근 MBC가 오는 9월부터 월화극을 폐지한다고 발표하고, SBS가 여름철 동안 월화에 드라마 대신 예능을 편성한다고 발표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양적인 출혈경쟁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제 방송사들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최근 몇 년 간 드라마의 헤게모니를 잡다시피 한 tvN이라고 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달 간 tvN이 편성한 멜로 중심의 드라마들을 보면 tvN 역시 편성 채워 넣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많은 드라마들이 마구잡이로 편성되어 방영되고 있어, 이런 시기에 양적인 대결을 벌이는 일은 무모하고 무익한 일이 된다. 차라리 이럴 때일수록 양보다는 오히려 한두 편의 질 높은 드라마에 집중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양은 많지만 어찌 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드라마들에 시청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달라진 시청패턴에 따른 방송사들의 새로운 편성전략이 필요할 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M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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