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영, 몇 백억을 포기하고 도대체 뭘 얻었나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박진영이 정초부터 원더걸스의 미국진출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와 원더걸스가 미국시장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JYP는 돈을 훨씬 더 많이 벌어 난 몇백억대의 부자가 되었겠고 원더걸스는 한국에서 지금보다 더 인기가 많았겠죠. 그러나 우린 바보같이 말도 안되는 도전을 하러 떠났죠”라면서 “올해 드디어 그 긴 도전의 결과들이 나옵니다. 잘되면 아시아 어떤 회사도, 연예인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얻어내겠고, 잘 안되면 무리한 도전으로 돈과 인기를 까먹은 셈이 되겠죠. 만약 잘 안되면 후회하겠냐구요? 그 도전을 통해 몇백억의 돈과 인기를 날리게 될진 몰라도 우린 몇 년간 세계 최고의 시장에 도전해 부딪히고 깨지면서 몇 천억원 어치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참된 지혜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 부딪히고 깨지면서만 얻어집니다”라고 계속 미국음악시장 문을 두드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박진영의 열정에 고추가루를 뿌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특히 원더걸스의 미국진출은 아직 진행중이라는 점과 또 멤버들의 동의하에 이뤄지고 있는 작업인지라 섯불리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개인적으로 지금처럼 미국시장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우는 방식도 있지만 원더걸스가 노래 실력을 좀 더 쌓고, 퍼포먼스 등도 더 가다듬어 경쟁력을 더 갖춘 후 도전했으면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걸그룹의 노래 실력이야 특출나게 잘 하는 팀이 많지는 않지만 메인 보컬 한 명쯤은 제대로 갖춘 팀들이 존재하는 데 반해 원더걸스의 메인보컬은 선예와 예은으로 나눠져 있다.
 
하지만 박진영이 원더걸스를 데리고 미국 음악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만큼 원더걸스에게서 나타나는 몇몇 상황과 징후만은 짚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꽤 인기 있는 걸그룹 멤버의 부모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딸이 연예계로 나와 인기를 얻어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몇몇 답변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돈을 많이 벌어줘 좋았다는 이야기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딸이 집을 사줬다고 자랑하는 엄마도 있었다. 자식이 잠 못자고 힘들게 번 돈이라 따로 관리한다면서도 10억~2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와있으니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원더걸스는 국내에서 ‘텔미’를 비롯한 소위 ‘레트로 삼종세트’로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 인기를 별로 추수하지 못했다. 불확실한 시장인 미국에 데뷔하는 바람에 멤버들은 국내에서 톱스타가 되고도 큰 돈을 쥐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원더걸스의 부모들이 신이 덜날 것이라 생각한다.

JYP가 2008년과 2009년 수익은커녕 2년 연속 적자가 발생한 주요인이 비의 월드투어 과정에서 생긴 피소와 원더걸스의 미국진출때문이었다. 박진영은 원더걸스가 돈과 인기를 얻어 성공한 연예인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커가는 걸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부질없어 보인다. 게다가 오는 2월 2일 미국에서 원더걸스가 주연을 맡은 TV영화 ‘The Wonder Girls’가 방영을 시작하는 등 그간 시도했던 도전의 결과들이 나오게 되면 부와 인기도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3년간 미국 음악 시장에 도전한 원더걸스 멤버들이 국내 위주로 활동하는 걸그룹들과는 다른 차별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어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원더걸스는 한마디로 나이에 비해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 쾌활 모드가 아니라 우울 모드다. 예은 등은 지나간 시간만 들춰내면 바로 눈물이 나온다. 무슨 한이 맺힌 사람처럼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린다. 원더걸스가 예능에 나와 울지 않는 걸 보기 어려울 정도다. 너무 빨리 커버린 원더걸스의 이런 모습이 ‘지혜’인지는 모르지만 안타깝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선예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20대 아이 같지가 않다. 20세를 전후한 여자 아이라면 일상을 이야기하며 철모르고, 까불고, 애교부리고, 귀여운 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게 좋다. 한데 원더걸스는 예능에만 나오면 지나치게 차분하며 고백이나 폭로성 토크가 유독 많다. 선예는 예능에서 남자친구가 있음을 먼저 고백하고 과거 연습생 시절 자살충동에 휩싸여 실제로 약까지 먹었던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유빈은 “주위에서는 걱정을 많이 해 우리가 정말 미국에서 망한 것인지 헷갈린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점점 토크의 수위가 올라간다.
 
원더걸스가 예능에서 보여주는 이 같은 조숙한 모습이 미국진출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인지, 원래 성격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원더걸스의 2집 타이틀곡 ‘be my baby’와 귀여운 춤을 좋아하는 나는 박진영에게 한마디는 해야겠다. 미국시장 도전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기를 바라고, 미래의 더 큰 걸 위해 현재의 작은 것은 희생한다는 식의 발상도 현재를 즐기면서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J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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