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도 시청자도 지치게 만드는 ‘골목식당’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친 건 백종원뿐 아니다.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위로와 휴식을 위해 찾는 TV예능을 보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미간이 찌푸려지며, 마음은 복잡해진다. 지난해 말 <골목식당>은 실제 현실(에 발을 디딘 누군가의 삶)과 이를 추출해 만든 예능(에서 활약하는 캐릭터)이 서로서로 각자의 세계에 영향을 끼치며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후 유사한 패턴의 스토리가 반복되고, 출연 사장들이 호감을 얻지 못하면서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바로 내가 될 수도 있을) 인생역전의 기회를 누리는 걸 지켜보는 <골목식당>의 맛에 시청자들이 점점 시큰둥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송에 출연한 사장과 가게가 ‘선한 의도’에 맞는 ‘선한 대상’인가라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묵묵히 노력하는 정성과 세월에 대한 보상이 따르는 이야기는 정의구현, 권선징악처럼 인류 보편의 진리다. 그런데 가격 책정에 끝까지 불만을 제기한 거제도 김밥집이나 내부 인테리어까지 공짜로 제공받고도 장사 준비는커녕 소통 없이 촬영에 임한 서산 해미읍성의 불고기집, 극도로 심각한 위생부터 2주간의 숙제를 무성의하게 하고 나타난 이번 ‘여수 꿈뜨락몰’ 편까지 진짜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정말 간절한지를 되묻게 된다. 노력보다 욕심이 앞선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된 것과 진배없는 솔루션을 받고, 성공하기를 바랄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수 꿈뜨락몰 편’ 세 번째 편에서 백종원은 크게 화를 냈다. ‘방향성을 찾으라’는 숙제를 내주고 2주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생존을 건 치열함이나 열정, 혹은 영민함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안일했다. 수제 닭꼬치를 내놓은 닭꼬치집은 상품성에 대한 고민이 전무했고, 돈가스집은 나름 지역특색에 맞춰 해물가스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지만 매우 불완전했다. 햄버거집은 어떤 물건을 어떤 가격으로 팔려고 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 부족으로 별다른 결과를 내놓지 못했고, 라면집 사장은 특별한 이유 없이 문어전문점으로 전환하고 싶다고 고집했다. 만두 전문점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타코야끼집은 시판되는 만두피를 쓰는 데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 24개의 메뉴를 실험해 3개를 추려 개발한 파스타집을 제외하곤 대부분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태도로 백종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에 백종원은 <골목식당>을 하면서 매번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지난 2주 동안 아무것도 안했다. 원래라면 장사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럴 바엔 전체적으로 포기하자라고 제작진에게도 말했다며 일갈했다. 몇 십 년 동안 잠 못 자고 고생하면서 얻은 귀중한 노하우를 무슨 이유로 이렇게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노력도 안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나, 여러분이 뭘 잘해서 갑자기 뜬금없이 우리가 나타나 뭐든지 다 먹여줘야 하냐며,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에 있냐고 질타했다.



과도하게 화를 낸다는 인상도 있지만 이런 상황은 <골목식당>이 기본적으로 ‘문제 발견-갈등(발전과정)-해결’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따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지난 1월 22일부로 아예 기획의도도 바꿨다. 죽어가는 골목상권 살리기, 쇠락하는 음식특화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에 방점이 찍힌 기존 기획의도 대신 문제 있는 식당을 뜯어고치는 프로그램으로 정체성에 변화를 줬다. 더 나아가 식당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담았다. 따라서 드라마틱한 반전의 폭을 키우기 위해서 ‘미운 정’이 쌓이는 캐릭터가 필수다. 그러다 백종원이란 귀인을 만나 변화한다는 점이 핵심이고, 방송제작이란 목표 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결말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헬(hell) 키친에 가까운 업소를 짧은 시간에 변화한다는 데 방점을 찍다보니 생기는 스트레스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영업자들을 위한 교본이 아니라 사람이 살맛나는 세상이다. 감정이입은 정말 엉망진창인 가게가 번듯하게 바뀌는 개과천선에서 비롯되기보다 정말 먹어보고 싶은 숨겨진 맛집의 발견이나 노력에 대한 보상체계의 작동에서 비롯된다. 포방터 신화도 몸이 아픈 노모가 있었기에 변화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꽁꽁 숨겨져 있던 돈가스집의 발견과 함께 좋은 배합을 이뤘다. 그런데 이후 프로그램은 드라마틱한 반전 스토리와 갈등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도대체 이 방송을 왜 봐야 하는지 왜 응원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백종원의 스트레스만큼이나 시청자들도 빌런 논란이나 무성의한 출연자, 도움을 주는 걸 지켜보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좋은 사람’일지 의문이 드는 출연자의 태도에 지켜볼 매력을 잃고 있다. 문턱이 낮다보니 아무런 준비도 없고 열정도 없고, 욕심만 많은 이들이 쉽게 요식업에 뛰어드는 현실에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이야기는 이슈가 될 순 있으나 빠져들기는 어렵다. <골목식당>이 폭발적 인기를 누리게 된 계기는 가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대리만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손님 유치를 위해선 자극적인 맛도 분명 중요하지만 함께 지켜볼만한 가치에 대해서도 한번 돌아볼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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