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가 블랙유머로 해부해낸 우리네 사회, 세계에도 통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제 72회 칸 영화제 폐막식의 주인공은 봉준호 감독에게 돌아갔다.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것. 아직 개봉된 작품이 아니라 그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현지 언론들의 폭발적인 반응들을 염두에 두고 예상해보면 역시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를 해부하는 블랙유머가 들어간 작품일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소개를 보면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집 고액과외면접을 위해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분명 실현될 일이었다는 기시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여러 작품을 해오면서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어느 순간에는 그의 영화 세계로 구축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그의 첫 단편 작품이었던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현재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까지 이어졌다.



대학교수와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의 허위의식을 발랄한 유머로 담아낸 <지리멸렬>로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은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한 중산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아낸 바 있다. <살인의 추억> 역시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우리가 겪었던 한 시대의 암울함을 담아냄으로써 그가 사회성 짙은 진중한 메시지와 더불어 대중성 또한 겸비한 감독이라는 걸 보여줬다. 이 작품은 봉준호를 국내만이 아닌 해외에서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괴물>로 그는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미군부대가 방출한 화학약품이 원인이 되어 한강에서 출몰한 돌연변이 괴물로 인해 사투를 벌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장르적 색깔을 가져오면서도 봉준호 특유의 사회성 짙은 블랙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괴물의 출몰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그간 벌어졌던 무수한 재난과, 그 재난에 대처하는 무능한 콘트롤 타워의 문제를 통렬한 유머로 담아냄으로써 이 작품은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작이 되기도 했다.



<마더>는 한 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보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사회가 가진 모성애의 살벌한 이면을 들춰낸 문제작이었다. 아들을 위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잘못을 지워내기 위해 자행되는 범죄들은, 이른바 ‘치맛바람’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비뚤어진 모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달리는 설국열차에서 벌어지는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가는 투쟁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자본주의의 동력시스템을 해부하는 성취를 보여줬다. 자본주의라는 궤도를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고 그 동작의 무한순환을 깨는 길을 마치 하나의 완결성 있는 상황극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넷플릭스에서 투자해 동시 상영된 <옥자>는 그 달라진 영화 유통의 시대를 화두로 끄집어낸 작품으로, 식량과 환경이라는 문제를 슈퍼돼지라는 가상의 존재를 통해 풀어냈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사실상 대부분이 우리네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통렬한 탐구를 담아낸 영화들이었다. 그 진지함을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 세계는 그래서 형사물이나 괴수물 심지어 가족극 같은 익숙한 장르들을 가져와서도 독특한 그만의 세계관으로 구축시켰고, 치열한 문제의식은 ‘봉테일’이라 불릴 정도로 그 작품에 놀라운 디테일을 부여했다.



따라서 이번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가 일관되게 해온 우리 사회에 대한 탐구가 이제 세계에서도 통했다는 걸 말해준다. <기생충>에 대한 외신들을 보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마다 자국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어느 한 사회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은 결국 어느 사회에나 비슷하고 또 통할 수 있다는 걸 봉준호 감독은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각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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