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온순해진 김구라와 윤종신을 들썩이게 만든 안영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늘날 MBC <라디오스타>는 비평의 가치를 지닌 예능이 아니다. 오랜 기간 사랑받는 장수예능으로 언제나 <전국노래자랑>처럼 매주 그 자리에서 기대한 만큼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물론 한때는 토크쇼의 대안이기도 했다. 게스트를 놀리거나 공격하고, 타 방송사 관련 이슈나 경제적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등 기존 예능 방송의 금기를 무너뜨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업적은 지난 10년의 세월 중 일부에 해당한다. 지금은 사전 인터뷰를 통한 문답, 개인기 자랑과 같은 구조화된 루틴으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지상파 예능의 모습만 남았다. 그렇다고 재미가 아예 없다거나 존재 가치를 완전히 잃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B급 정서, 독설, 깐족, MC진의 캐미스트리 등의 특색이 사라진 관성적인 예능이란 뜻이다.



<미스트롯>의 송가인을 메인으로 내세운 이번 주 방송은 에너지나 새로움, 개성이 사라진 <라스>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송가인이란 인물에 대한 관심도가 시청률을 움직이는 현상에서 보듯 TV는 더 이상 지상파가 우위를 점하는 시장이 전혀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번 주 게스트로 나온 송가인과 함소원은 이미 TV조선의 유명 인기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대중의 사랑을 이미 크게 받은 이들이다. 즉 <라스>의 자부심이었던 예능 스타 등용문으로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게스트의 인지도에 기대고 있다.

캐스팅이 밋밋해지는 만큼 대본과 상관없이 발화되던 유기적이고 살아있는 대화는 사라졌다. 근황을 묻고 사전 인터뷰를 통해 답이 준비된 에피소드를 질문하고, 개인기를 요청하면 게스트는 준비한 노래나 춤, 연기 등을 성실히 행한다. 그러다보니 질문과 분량이 집중된 송가인의 경우, 앞서 출연했던 <비디오스타>에서 했던 이야기와 많은 부분이 겹쳤다. 함께 출연한 셔누 또한 방송 출연할 때마다 물어봤던 이효리 백댄서 에피소드를 또 해야만 했고, 함소원은 자신의 메인 콘텐츠인 시부모님 이야기를 관찰예능 대신 토크로 풀어놓았으며 자이언트 핑크는 타 방송에서 보여준 캐릭터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익숙한 만큼, 익히 알고 있던 만큼을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도식화된 토크쇼가 된 이유는 게스트와 대결구도를 이루고, 준비된 문답을 넘어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던 4명 진행자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규현, 차태현, 저 멀리 신정환의 문제가 아니라, 엔진이라 할 수 있는 김구라와 윤종신 듀오의 에너지가 빠져도 너무 빠졌다. 김구라가 뻔뻔한 욕망을 드러내고 직설과 독설로 게스트를 곤란하게 만들고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했다면, 윤종신은 일명 주워먹기라 명명할 수 있는 순발력과 재치로 그 대화를 거들거나 그런 김구라를 공격하면서 티격태격하는 티키타카가 <라스> 웃음의 근원이다. 이 둘이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다른 두 MC가 몇몇 장면에서 거든다.

그런데 오늘날 김구라와 윤종신은 안정적인 진행이 장점인 MC가 되었다.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돌아가게는 만들지만 특별히 튀거나 자기만의 색을 갖고 있지는 않는다. 흘러온 세월과 높아진 위상이 있는데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만 그 결과 <라스>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착한 토크쇼가 됐다. 준비된 질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예측불허의 재미를 만들던 살아 있는 토크는 사라졌고, 김국진과 함께 대본에 맞춰 본분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이 눈에 띈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은 스페셜 MC로 참여한 안영미의 발견이다. 일단 신선하다. 중년 남성 일색의 MC진에 성별로나 연령으로나 이질적인 그림이다. 안영미가 그간 맡아온 역할과도 다르다. 또래 개그맨들이나 송은이 패밀리를 벗어난 조합은 안영미의 관점에서도 새롭다. 무엇보다 주눅 들지 않고 특유의 개그도 하고, 질문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물론 침체된 혹은 온순해진 김구라를 건드린다. 김구라의 핀잔을 빗겨내고, 오히려 면박을 주거나 무시를 하면서 이를 지켜보는 윤종신까지 함께 들썩이게 만든다.

MC들 간의 대화가 살아나고 새로운 관계망이 형성될 기미를 보인다. 점점 점잖아지고 있는 토크쇼에 활기를 가져다준 오래간만의 움직임이다. 과연 안영미의 효과가 관성의 힘에 짓눌린 <라스>에 새로움을 더할까. 점점 더 관습적인 예능이 되고 있는 <라스>의 변화에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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