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남의 일에 아파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보장된 탄탄한 미래와 안락한 삶을 포기한다. 남을 대변하고 앞서서 싸우는 고통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묵묵히 걸어간다. 그가 온몸을 부딪혀 얻은 자유를 우리가 누리고 있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김근태다.

1992년이나 1993년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일간지의 노동조합이 초청한 강연회에서 김근태를 만났다. 강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의 순수한 성품과 이상주의가 현실 정치를 하기에는 맞지 않겠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후 그를 장차 정치 지도자로 꼽는 얘기를 들었지만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걸어간 험하고 긴 길에서 그날 강연은 돌멩이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 김근태와 정치인 김근태를 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돌멩이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날 들은 얘기 중 기억나는 두 가지를 굳이 적는 까닭은 무엇인가? 떠난 그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자 하는 행위가 아닐까?

김근태는 강연 전,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명함을 주지 않았다. 명함이 없다고 말했다. 준비하지 못하거나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는 명함을 만들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이름을 적어 사람들에게 돌리는 게, 꼭 나를 상품으로 파는 일 같아서요.”

그때 그는 긴 직함을 갖고 있었다. 아마 ‘민주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 집행위원장’이었을 게다. 아니면 ‘민주항쟁기념국민위원회 공동집행위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름과 관련한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여기 오는 택시에서 합승을 하게 됐어요. 같이 타게 된 여자가, 여대생 같아요, 나를 흘끔흘끔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어봐요. ‘혹시…, 이근안 씨 아니세요?”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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