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불륜도 아닌데 들킬까 조바심이 난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수목드라마 <봄밤>은 그저 액면의 스토리만 보면 마치 일일드라마 같다. 아마도 교장과 이사장인 부모들의 주선으로 만나게 됐을 걸로 생각되는 이정인(한지민)과 남자친구 권기석(김준한). 그들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는 와중에 불쑥 들어온 유지호(정해인)라는 남자, 그것도 아이가 있는 남자와의 로맨스. 집안 부모들의 결혼 강권과 사회적 통념에 비춰진 부적절한 관계와 비혼부에 대한 편견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이런 소재는 사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쓰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뻔한 소재들이 <봄밤>에서는 어딘지 다르게 다가온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서라면 저 정도에서 자극적인 상황들이 연출되고, 그래서 특유의 음악이 흐르며 누가 누군가의 뺨을 치는 그런 장면이 나올 테지만, 어쩐지 <봄밤>은 지극히 담담하게 그 상황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속에서는 감정들이 꿈틀대지만 인물들은 그걸 꾹꾹 눌러놓고 있다. 그래서 조금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황의 공기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사실 이정인과 유지호가 무슨 큰 불륜이라도 저질렀던가. 그들은 멜로드라마에서 그 흔한 키스도 한 적이 없다. 기껏 했던 스킨십이 어깨에 손을 얹는 정도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어깨를 다독이는 손길은 그래서 더 특별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이정인과 유지호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다는 걸 조금씩 감지해가는 권기석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이정인의 동생 이재인(주민경)이 박영재(이창훈)와 함께 집 앞에 있는 유지호를 데리고 정인의 집으로 가 함께 술을 마시는 대목에서 권기석이 찾아오는 시퀀스가 그렇다. 문밖에서 권기석을 막아 세우고 돌아가라 말하는 이정인과, 시끄러운 소리에 이재인이 밖으로 나왔을 때 유지호의 운동화가 슬쩍 보이는 장면 같은 게 의외의 긴장감을 만든다.

유지호의 운동화가 그 때 정인의 집에서 언뜻 본 것이라는 걸 눈치 챈 권기석이 그와 함께 술자리를 갖는 상황도 긴장감을 유발한다. 유지호와 권기석이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정인이 고민 끝에 권기석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말하자, 권기석이 그걸 마치 여자친구와 화해한 것처럼 말하는 대목에서 유지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장면도 그렇다. 또 유지호와 권기석이 농구시합이 끝난 후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마침 이정인이 전화를 하고, 그들이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정인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끊지마”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유지호와 이정인이 대단한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이렇게 커진 건 왜일까. 그건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이 갖는 감정들에 이미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됐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유지호와 이정인의 ‘비밀연애’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일종의 ‘공모자’가 되어 있다. 그러니 이것이 발각될까 함께 조바심을 느끼며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봄밤>의 멜로가 여타의 멜로들과 확연히 다른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사건들이 빵빵 터지는 그런 멜로가 아니라, 마치 일일드라마에서 그토록 많이 쓰던 소재라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심리변화에 한 걸음 더 접근함으로서 색다르게 보이는 멜로. 그리고 이런 긴장감의 이면이 전하는 이른바 ‘사회적 통념과 속물적인 편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이 멜로가 가진 사회적 의미 또한 담아낸다.



물론 이런 소소한 스토리를 이렇게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는 작가의 섬세함이 있어서겠지만, 이를 연출과 연기로 해석해내고 표현해내는 감독과 배우들의 역량이 있어 <봄밤>은 비로소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안판석 감독의 공력과 정해인, 한지민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