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상상력 사이, 갈 길을 찾아 나선 사극의 도전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올해는 유독 사극이 많이 포진된 해다. 이미 종영한 SBS <해치>에 이어, SBS <녹두꽃>, tvN <아스달 연대기>, MBC <이몽>이 현재 방영되고 있고, 하반기에도 KBS <의군>, JTBC <나의 나라> 등이 방영될 예정이다.

본래 드라마 기획이라는 것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올해 이렇게 많은 사극들이 등장하게 된 건 지금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올해가 3.1운동 백주년인데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라는 사실이 한 몫을 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월북한 독립운동가로 지금껏 다뤄지지 않았던 약산 김원봉 선생을 소재로 한 MBC <이몽>이나 도마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룰 KBS <의군>은 모두 올해의 이런 의미들과 무관하다 보긴 어렵다.

하지만 올해 등장하고 있는 사극들의 면면을 보면, 사극이 지금 현재 처한 고민이 느껴진다. 사실 무수히 많은 사극들이 제작되어서인지 특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은 소재적으로 그리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해치> 같은 조선시대 영조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려 하거나, <녹두꽃>, <아스달 연대기>처럼 아예 지금껏 다뤄지지 않은 소재들에 접근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녹두꽃>과 <아스달 연대기>의 상반된 흐름이다. <녹두꽃>은 사극에서 좀체 다뤄지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정통사극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은 물론이고 당시 동학군과 손을 잡기도 했던 대원군(전국환) 같은 실제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은 ‘거시기’라 불리던 백이강(조정석)과 ‘도채비(도깨비)’로 불린 백이현(윤시윤) 형제지만, 이들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실에 거의 근접해 있다.

반면 <아스달 연대기>는 아예 지금껏 다뤄진 적이 없는 역사 이전의 상고사로 시선을 돌렸다. 남아있는 사료가 없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대신 단군신화 같은 신화와 문화인류학이 찾아낸 인류사에 의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상상력으로 구현되는 신화의 세계이기 때문에 드라마는 현실적이라 보기 어렵다. 판타지적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이야기성이 더 강한 이 드라마는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국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한 하나의 추론을 그려나간다.



<녹두꽃>과 <아스달 연대기>의 상반된 방향성에는 지금의 사극이 처한 고민이 엿보인다. 그토록 많이 만들어진 사극이지만 그래도 다뤄지지 않은 역사를 찾아 좀 더 깊게 그 사료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역사가 없는 지대를 찾아 상상력으로 채우거나. 사극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이 상반된 흐름이 갖는 역사에 대한 천착과 역사 바깥에서 채워지는 상상력 사이에서 일장일단의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녹두꽃>은 그 소재 자체가 지금의 촛불 세대들에게 울림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흘러가다 보니 보다 더 극적인 상황들을 담아내지는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장대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7%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건 그런 이유가 크다.



<아스달 연대기>는 시선을 잡아끌지만 어딘지 사극을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낯설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상상력으로 채워진 이야기는 그것을 상징으로 바라볼 때 의미를 갖지만, 액면 그대로 보면 너무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이런 전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 시도를 더더욱 만만찮은 도전으로 만든다.

<녹두꽃>이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면, <아스달 연대기>는 역사 바깥이라 할 수 있는 선사로까지 시선을 돌리고 그 빈자리에 상상력을 채워 넣으려 하고 있다. 너무 많이 등장했던 소재들과, 뻔한 사극의 구도들 속에서 이를 탈피하기 위한 사극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과연 사극들은 역사와 상상력 사이에서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을까. 아직 그 길은 멀어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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