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인’, 러브라인 신경쓸 겨를 없다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KBS ‘브레인’은 요즘 ‘깔딱고개’를 넘고 있다. 마라톤으로 떠지면 마의 구간이다. ‘깔딱고개’는 쉽지 않은 구간이다. 잘 넘기면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지만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온 힘을 경주한다. 그러다보니 이강훈(신하균)은 윤지혜(최정원)와 사랑할 여유가 별로 없고 서준석(조동혁) 등 몇몇 캐릭터에는 더 많은 배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깔딱고개’를 넘기는데 핵심요소를 보자. 이강훈과 친구 서준석과의 경쟁도 보여주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제자 강훈과 스승 김상철 교수(정진영)와의 관계다. 이강훈과 김상철교수 캐릭터의 변화가 일어났고 관계가 역전됐다. 그럼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제작진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인지가 드라마의 핵심이다.

강훈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병원에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지만 가진 건 의학 실력뿐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미숙함과 교만함을 드러내 그의 욕망은 번번이 좌절된다. 능력녀(재벌딸)의 도움도 까칠하게 뿌리친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데다, 뒤늦게 어머니께 잘해보려는 계획도 어머니의 별세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연유한 트라우마를 지닌 강훈이 욕망을 이루는 건 천하대 병원에서 최고가 되는 길뿐이다. 바로 인술을 최고가치로 생각하고 의술을 펼치는 김상철 교수의 권위를 꺾어 그를 시원하게 이기는 것이다.

이걸로 쭉 진행된다면 ‘깔딱고개’ 없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캐릭터의 반전이 일어났다. 김상철은 20년전 의료사고를 내 환자가 사망했는데도 담당교수께 제 인생을 살려달라고 하며 위기를 벗어났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해 자신을 괴롭힌다. 의료사고 피해자는 강훈의 아버지다.

강훈은 천하대 병원 MOU권을 쥐고있는 차회장을 미니개두술로 치료해 생긴 힘으로, 자신의 입지를 위해 누구와도 거래하는 고재학과장(이성민)과 손잡고 천하대 병원 조교수로 복귀했다.

강훈은 고재학 과장을 통해 천하대 신경외과를 거의 자기 것처럼 주무르며 김상철의 신경을 건드린다. 강훈은 김상철에게 제자를 위하는 듯 보여도 뒤에서는 잇속을 챙기는 ‘가식’을 벗기겠노라고 말한다.


 
김상철은 강훈에게 “이강훈 명심해, 너 위에 항상 내가 있다는 것을. 넌 나를 이길 수 없어”라고 말했지만 초연하기 힘들다. 오히려 강훈을 볼 때마다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이 연상된다. 무의식속에서 점점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상철은 각성수술 할 때 강훈이 했던 방식과 똑같이 강훈의 환자를 가로채놓고 이를 따지는 강훈에게 “환자의 의사가 우선이다”고 말한다.  
 
‘브레인’은 캐릭터를 단선적으로 진행시키지 않아 그 흐름을 이해시키기 쉽지 않다. 제작진은 김상철 교수의 반전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욕망을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양면성’이다.

김상철은 원래 출세지향적인 인간이었다. 의료사고를 경험한 후 그러면 안되겠다고 인생철학을 바꿨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지운 채 연구와 임상에만 열중하는 의사, 인술을 펼치는 명망있는 의사로 살아간다. 하지만 강훈을 만나 특정 상황에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상철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본다.
 
잊혀졌던 상철의 원래 모습을 다시 끄집어내 보여주는 작업은 강훈과의 적대관계에서 화해의 관계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결과정이다. 이런 모습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오로지 청렴한 인물로 그려졌던 황영선 병원장(반효정)의 양면성도 보여준다. 병원장의 임기가 끝나면 평의사로 진료에 나서기로 했던 영선은 상철에게 “한번 더 하고 싶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직은 뒷방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고재학 과장에 대해 ‘저 인간, 또 무슨 장난을 치려는 거야’라며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직장에 가면 이와 비슷한 인간들이 적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강훈이 엄청난 상극이었던 김상철교수를 멘토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직 그려지지 않았지만, 인간을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봄으로써, 다시 말해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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