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벌려’가 예능의 한복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국내 유일 여성 리얼버라이어티 <무한걸스>의 후신이자 송은이 사단의 대표적인 유튜브 콘텐츠 <판벌려>가 드디어 TV로 상륙했다. 웹예능 <판벌려>는 여성 걸그룹을 결성하는 가상의 설정을 넉넉한 울타리로 두르고 그 안에서 가상의 설정에 부합하는 캐릭터 연기와 현실의 관계를 넘나드는 일종의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리얼버라이어티다. 시즌1에서 셀럽파이브의 데뷔 과정을 담았고, 시즌2는 2집 싱글 ‘셔터’ 준비과정을 담았으니, 방송으로 승격한 이번 판은 실질적으로 시즌3인 셈이다.

JTBC2 <판벌려-이번 판은 한복판>은 혜성처럼 나타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셀럽파이브의 2집 싱글 ‘셔터’의 흥행 실패를 되돌아보면서 시작한다. 두 번째 곡은 전작과 달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데뷔곡 ‘셀럽이 되고 싶어’와 비교했을 때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5분의 1이상 차이나고, 신곡 프로모션 차 <유희열의 스케치북>같은 음악프로그램 포함 예능도 한바퀴 돌았지만 반복된 콘셉트, 평균 나이 40세의 신인 걸그룹 콘셉트를 미는 여성 코미디언의 반란 등의 신선함이 사라지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판벌려-이번 판은 한복판>은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이야기다.



시즌2부터 본격화된 아이돌 리얼리티 패러디에 페이크 다큐 요소가 한 꼬집 들어가고 꿈과 갈등과 화합과 질투가 향연을 이루는 아이돌 서바이벌쇼의 요소가 가미됐다. 이름과 나이, 관계는 현실에서 그대로 가져왔으나, 아이린 선배를 닮았다고 주장하는 송은이는 40대 후반의 FNC 27년차 연습생, 안영미는 YG 등 실제 소속사의 연습생이 되어 <프로듀스 101>를 패러디한다. 목표는 팀의 센터자리를 차지하는 것, 더 나아가 만능돌이 되어 가요계의 한복판을 차지하는 것.

호주 멜버른까지 다녀올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데뷔 시절의 영광을 되찾고, 미국 인기 토크쇼 진출까지 노리지만 정작 영어도 거의 못하고, 킬러콘텐츠인 일본 고등학교에서 빌려온 칼군무 복고 퍼포먼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도 시들해지자 리더 자리, 연차나 나이, 제작자 타이틀도 다 내려놓고, 동등한 연습생 신분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돌계 최초로 ‘장인 시스템’을 도입, 분야별 장인들에게 직접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은 후 ’셀럽파이브’의 센터를 차지할 한 명을 뽑는 서바이벌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설정이다.



갈등구도와 단계별 학습이란 <프로듀스101>식 상황극을 이어가면서 소찬휘, 서문탁, 권인하 등의 보컬리스트와 흥 넘치는 추임새를 전수하는 노래강사 손영주에게 원포인트레슨을 사사받는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메인보컬이 정해지고, 그 다음 센터를 찾기 위한 다음 단계의 레슨이 준비된다.

송은이와 김숙이 이끄는 VIVO TV는 팟캐스트와 웹예능으로 시작했지만 웹생태계 안에서만 노는 게 아니라 <영수증> <밥블레스유> 등 라디오와 TV 방송콘텐츠로 진출한 사례를 쌓아가고 있다. 이번 <판벌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기획자가 출연자이자 연예인이란 점도 우리 생태계에서는 매우 큰 특징이다. 멤버들도 VIVO TV라는 울타리를 통해서 다른 방송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에너지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판벌려>를 포함해 VIVO TV의 콘텐츠들이 애초에 웹예능보다는 TV콘텐츠의 정서나 기획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이는 기획자인 송은이, 김숙부터 김신영, 신봉선, 안영미 등 출연자들 모두 방송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는 익숙함과 안정감이 분명 있고, 웹예능에서 이렇게 뭉쳤을 때는 친한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한 줄의 재미난 설정 아래에 스토리라인을 끌고 가는 힘이 딸린다는 단점이 반복되고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셀럽파이브에 지적한 “재미를 뛰어 넘는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은 <판벌려>와 VIVO TV 자체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송은이의 유쾌한 걸음을 통해 여성 코미디언들이 방송에서 밀려나는 어려움을 잘 알았고, 그래서 시작된 멋진 반격에 박수를 보내고 관심을 가졌다. 이를 통해 동료들이 다시금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VIVO TV로 인해 무언가 준비하고, 버틸 수 있는 영토는 확실히 갖추었다. 하지만 재밌는 한 줄 설정에만 힘을 쏟고, 내부를 비워놓고 채워가는 방식의 기획이 계속 되다보니 세부 디테일을 들여다보기 전부터 식상하게 들릴 가능성이 높다.

방송으로 들어온 <판벌려>도 아이돌 패러디에서 아이돌 서바이벌 패러디로 넘어 왔을 뿐 기획은 신선하나 세부적인 볼거리는 <무한도전>식 리얼버라이어티의 범주 안에 머문다. 이제는 한 줄의 기발한 설정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기발한 설정을 꿰는 스토리텔링을 촘촘히 만드는 것과 같은, 다음 단계의 또 다른 재미를 추구해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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