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 예능의 가능성을 지닌 ‘구해줘! 홈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고 강력한 방법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바꾸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주거 환경을 벗어난 공간과 인테리어는 라이프스타일 차원에서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고, 그래서 다른 이의 집과 동네를 구경하면서 ‘저런 집에서 살면 어떨까?’와 같은 즐거운 상상을 가능하도록 한다.

집이 필요한 의뢰인을 대신해 연예인들이 집을 찾아주는 대결을 펼치는 <구해줘! 홈즈>는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 환경을 TV 앞으로 가져와 그 로망을 펼친다. 부동산이 가장 큰 자산이자 뉴스인 세상에서 철저히 투자와 매매의 관점을 배제하고, 실거주 위주로 공간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그 덕분에 전문가가 등장하는 부동산TV가 아니라 부산, 망원동, 강남, 제주도, 용인, 강원도 등등 다양한 지역과 아파트, 다가구, 다세대 원룸, 구옥, 농가주택, 타운하우스, 탑층 복합형 구조 빌라 등등 다양한 형태의 집을 들여다보고 임대 시세를 접하는 인포테인먼트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는 재미요소가 복합적으로 가미된 콘텐츠다.



무엇보다 <구해줘! 홈즈>의 매력은 집을 부동산이나 인테리어의 관점의 중간에 서서 공간과 그에 깃든 오늘날 주거 문화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그간 대표적인 부동산 입지 조건으로 꼽히는 대단지 아파트, 학군, 역세권 등의 조건이 아닌 다른 가치와 가능성, 가성비에 눈을 돌리도록 인도한다. MC진인 김숙, 노홍철, 박나래 등은 실제로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경험이 풍부하다. 에폭시로 마감한 바닥에 바닥 난방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지고, 건식 화장실, 선룸, 전실, 테라스 등 요즘 세대에게 중시되는 공간과 문화 등 집 보는 재미를 다각도로 끄집어낸다. 구옥을 개조하거나 보수해서 살아가는 멋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그런데 지난달 EBS에서 <방을 구해드립니다>라는 유사한 콘텐츠의 방송이 런칭됐다. 방송을 통해 사정이 빡빡한 의뢰인의 집을 구해준다는 취지는 같지만 <방을 구해드립니다>는 자산관리 전문가, 부동산업자가 한 팀을 이뤄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이용 방법 등 현실적인 자산관리의 관점에서의 매니지먼트에 힘을 준다면, <구해줘! 홈즈>는 살기 좋은 공간에 대한 토론과 제안과 소개를 통해 현실 속에서 로망을 피워내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매체와 뉴스에서 말하는 집은 늘 부동산 관점에서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대단지 아파트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구해줘! 홈즈>는 이 틀에서 벗어나 집을 실제로 살아가는 환경의 관점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파일럿 이후 정규방송에서 나타난 변화다. <구해줘! 홈즈>는 지난 2월 설 특집 파일럿으로 첫 선을 보였다. 출연자들이 직접 발품을 판다는 구성이나 대결 구도 등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의뢰인 선정과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의도에 있어서는 피드백을 반영하고 적절히 변화해 나타났다.

파일럿판은 도시에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 세대에 포커스를 맞췄다. 초저가 원룸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바닥에 두고, 루프탑 선호, 반려동물 친화적 주택 등 변화한 시대의 주거관을 주로 담아내려 했다. 그래서일까. 청년 세대가 적은 예산으로 ‘인서울’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자’라는 주제로 방영 중인 일본의 인기 예능 <시아와세! 본비걸>의 한 코너가 오버랩됐다. 출연자들이 사회초년생의 첫 자취집을 구해주는 콘셉트의 코너인데,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청춘의 발걸음과 도쿄의 다양한 주거 환경과 현실을 담아내 일본 내에서 오랜 기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콘텐츠다. 마침 ‘홈즈’는 일본 최대 부동산사이트 이름이기도 하고, BGM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마니아들만 즐겨 듣는 일본 음악들이 간간이 선곡된다는 점에서 기시감도 있었다.



그런데 정규화된 <구해줘! 홈즈>는 1화부터 청춘, 서울이란 해시태그를 의도적으로 벗어나면서 일본의 예능과는 다른 방향과 관점에서 흥미로운 주거 관찰기로 전환했다. 의뢰인의 직업과 나이, 지역, 조건 등이 매번 다르게 등장한다. 특히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제주 특집편은 ‘연세’와 ‘풀옵션’ 같은 지역의 특성과 숨겨진 보물 같은 동네들을 소개하면서 다소 주춤해진 제주의 매력과 로망을 다시 한 번 발산하기도 했다. 즉, 청춘의 도시 생활기에 해당하는 파일럿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로망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돌아왔다.

집 구경은 왠지 모를 환기 효과와 설렘을 선사한다. ‘이사를 간다면’ 이란 공상을 하면서 인테리어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하고,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가고픈 욕망, 독립의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은 인류가 정착해서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갖게 된 오랜 흥미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기본적인 호기심이다.

그래서 <구해줘! 홈즈>는 바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예능 콘텐츠라 할 수 있다. 현재 시세를 반영한 확인 매물로 시청자들이 공감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일상성을 확보하고, 남의 집 구경이란 인류 보편의 재미와 로망을 전달한다. 저성장 시대일수록 공간과 일상에 관한 관심이 늘어간다. 그러니 출연진들이 지치지 않고 발품을 판다는 콘셉트의 진정성만 잘 지켜나간다면, 어떤 특정 회사나 상품의 홍보로 전락하지만 않는다면, <구해줘! 홈즈>의 영민한 제작진이 불멸의 아이템을 발견한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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