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손에 묻은 흙을 보는 드라마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한국인은 정치를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정치를 혐오하는 것을 좋아한다. 목욕탕에서, 호프집에서, 동네 골목 어귀에서, 택시 안에서, 오늘도 많은 한국인들은 정치 현안에 대한 저마다의 견해를 쏟아내며 정국을 진단한다. 혹자는 국회의원들이 세비만 받아먹고는 일을 안 한다며 입법부 해산을 목놓아 외치고, 또 어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며 행정부 독재를 열렬히 규탄한다. 이처럼 5,100만의 정치평론가가 살고 있는 나라다 보니, 정치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은 오히려 어렵다. 신랄하게 본질을 건드려서는 그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길이 없으니, 자꾸만 에둘러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JTBC <보좌관>은 조금 다를까? <보좌관>은 입법부의 얼굴인 의원들 뒤에서, 그 의원들이 기능하도록 돕는 실무진인 보좌관들과 비서관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늘 카메라 앞에서 드잡이와 막말로 바쁜 의원들 말고, 그 뒤에서 의안을 검토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실무진들을 다룬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로 나올 수 있을까?

국정감사로 숨 가쁘게 돌아간 <보좌관> 속 대한민국 국회 일정을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참관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보좌관>이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을 그리는데 성공했던 KBS <어셈블리>의 성취 위에 장르적 재미를 더해 정치 드라마의 진일보를 끌어낸 작품으로 보았다.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이상과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캐릭터를 ‘고고하지만 무능한 선비’ 정도로 바라보며 정치란 모름지기 더러움을 피할 수 없다 여기는 제작진의 시선에서 정치 혐오의 흔적을 발견한다. 정석희 평론가는 이 정글 같은 의원회관 건물 안에서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윤혜원 비서 역할의 이엘리야에 주목했다.



◆ <어셈블리>의 성과에 장르적 재미를 더한 정치 드라마

한국 현대극에서 정치는 매력적인 소재는 아니었다. 정치에 대한 오랜 불신을 반영한 부패 정치인의 모습으로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곤 했다. SBS <시티홀>, <대물> 등 정치 판타지적 속성을 지닌 드라마에서, 이상적인 리더로 성장해가는 주인공들이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었다는 점도 대중의 정치 혐오를 투영한 설정이다. 2015년 방영된 KBS <어셈블리>가 한층 진보한 정치드라마로 평가받았던 이유는, 정치를 판타지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 밀착한 이야기로 그려낸 데 있다. 권력의지와 무관했던 정의로운 노동자 진상필(정재영)의 존재가 기존 정치 판타지적 속성을 일부 유지하고 있으나,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입안하는 직업인으로서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정치의 중요한 역할을 환기시켰다.



JTBC <보좌관>은 <어셈블리>의 이 같은 성과 위에서 출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의원실을 직장 삼아 일하는, 정치를 다루는 직원”인 보좌관을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는 정치가 세상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예컨대 부강전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해서 이슈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노동 환경 개선 법안의 필요성으로 이어지는 국정감사 에피소드에서, 정치는 국회 안 권력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처럼 <어셈블리>의 성과를 이어가면서도, <보좌관>이 한 걸음 더 나간 부분은 장르적 재미다. 이성민(정진영) 의원처럼 기존 정치 판타지 속 이상적인 정치인의 DNA를 물려받은 캐릭터는 옆으로 한발 물러났고, 장태준(이정재)처럼 “이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강한 권력의지를 불태우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입체적 재미를 더했다. 수시로 뒤바뀌는 인물 간의 역학관계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은, 이 분야의 대가인 박경수 작가 작품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적어도 초반부까지의 전개만 보면 진화한 정치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재미있는데 미심쩍다

<보좌관>의 초반부를 지배하는 것은 국정감사 기간 동안 당의 실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수 싸움의 쾌감이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릴 약점을 쥐고는 그 대가로 원하는 바를 제시하는가 하면, 상대가 손에 쥔 카드를 무효화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진흙탕 속 수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건 젊은 실무진들이다. 법무부 장관 자리를 노리는 송희섭 의원(김갑수)이나 당내 라이벌 조갑영 의원(김홍파)이나 모두 비열한 인간이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이나 6급 비서 윤혜원(이엘리야), 비례 초선의원 강선영(신민아)은 기꺼이 이 비열하고 지저분한 인간들을 플랫폼으로 삼는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힘 있는 사람들을 움직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이 다소 저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긴 것이다.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한 지극히 선량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 제 잇속을 챙기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극은 송희섭이나 조갑영의 반대편에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믿는 이상주의자 무소속 이성민 의원(정진영)을 세워놓는다. 얼핏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을 해 나가는 굳건한 인물을 그림으로써 젊은 실무자들이 참고해 정반합을 추구할 만한 ‘정’을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좌관>이 이성민을 묘사하는 투를 보면 다소 미심쩍다.

제 의원실 간판을 누군가 사보타주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이성민 의원실 사람들이 아닌 장태준이었고, 국정감사에선 강선영 의원실과 장태준이 조갑영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을 건네 받아 제 질의를 채웠다. 올곧은 사람이지만, 적당히 진흙탕에 발을 담근 젊은이들이 옆에서 어시스트 해주지 않으면 득점하지 못하는 사람인 셈이다. 이는 이상과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이를 ‘고고하지만 무능한 선비’ 정도로 바라보고, 정치의 속성 상 본디 더러움을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제작진의 정치 혐오가 무의식 중에 새어 나온 건 아닐까? 재미있는 건 확실한데, 보며 웃어도 될지는 의문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손에 피 안 묻히고 세상을 바꿀 사람은 누구인가

국회 보좌관 장태준(이정재)은 올라갈수록 바람이 매섭다는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디딤돌로 차기 공천권을 쥔 대한당 원내대표 송희섭(김갑수) 의원을 택했다. 3회 이정재의 내레이션을 통해 장태준은 이리 말한다. “출발 지점과 선택의 이유는 모두 다르다. 모두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로가 선 위치는 모두 다를지라도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이곳에 있다.” 그의 말대로 결이 다른 장태준과 송희섭은 지금은 한배에 올랐을지언정 결국엔 다른 길을 갈 것이 자명하다. 떼밀려 물에 빠지든지 물에 빠트리든지. 뒤를 밀어줄 노회한 정치인이 필요했다 해도 왜 하필 저열하기로 호가 난 송희섭이었을까? 잘못 꿴 단추라는 아쉬움은 있으나 매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장태준의 기민하고 통쾌한 순발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매회 마무리에 또 다른, 한 단계 승급된 위기가 닥치지만.



사실 주인공 장태준, 강선영(신민아)을 비롯한 태반이 권력을 향한 야망으로 가득한 인물들인지라 감정 이입이 어렵다. 내 편 네 편 안 가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야합하고, 타협하고, 심지어 누군가를 스스럼없이 이용했다가 버리기도 하니까. 끊임없이 속이고 의심하고, 그러다 한순간에 뒤통수를 맞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래서 송희섭 의원실 비서 윤혜원(이엘리야)에게 정이 가나 보다. 적어도 내 손에 피 안 묻히고 남을 해할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가서다. 어떤 과거사로 속을 끓이는지 모르겠지만 소신 있고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그의 마음이 편해지길 바란다. 장태준과 강선영이 조우하는 장면을 바라보던 윤혜원의 쓸쓸한 눈빛이 자꾸 생각난다. 이엘리야가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았다.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영상·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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