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아스달 연대기’ vs 소품 ‘퍼퓸’, 뭐가 더 재미있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KBS 드라마 <퍼퓸>은 민재희(하재숙)가 자살 직전 택배로 온 마법의 향수를 뿌리고 23세의 패션모델 민예린(고원희)의 몸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다. 판타지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를 배경으로 고대시대 영웅들의 서사시를 그리는 이야기다. 역시 판타지다.

두 작품은 모두 똑같은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지만, 시대 배경은 다르다. <퍼퓸>은 지금 이 순간에 판타지를 얹었고, <아스달 연대기>는 ‘아스’라는 공간부터가 가상이며 종족의 이름이나 언어들까지 새로운 창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규모나 상상력 면에서 <퍼퓸>이 소품이라면 <아스달 연대기>는 대작이다.

당연히 <퍼퓸>과 <아스달 연대기>를 지켜보는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퍼퓸>과 <아스달 연대기> 모두 허술한 디테일들이나 허점 많은 설정들이 눈에 띄기는 한다. <퍼퓸>은 기본적으로 패션계를 너무 얄팍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종종 패션쇼가 학예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 민예린(고원희)과 관종 패션디자이너 서이도(신성록)가 ‘티티카카’ 주고받는 말장난 로맨스를 제외한 주변 이야기들은 좀 시시하고 식상하며 가끔 유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퓸>의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라면 이런 허술한 점쯤 쉽게 웃어넘길 수 있다. <퍼퓸> 자체가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 작은 로맨스드라마서 그런 부분들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아스달 연대기>의 문제는 우선 제작비 500억에 있다. 500원도 아니고 500억. 이제 대중들은 500억 제작비에 준하는 대작을 원한다. 그리고 그만큼 완성도와 디테일 면에서 까다롭게 <아스달 연대기>를 볼 수밖에 없다. <퍼퓸>을 볼 때는 다이소에서 쇼핑하는 기분 정도면 만족이지만, <아스달 연대기>를 시청할 때는 명품관을 둘러보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구나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들은 세계의 드라마들을 접하며 대작의 스펙터클과 디테일의 묘미가 무엇인지 이미 채득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은섬(송중기)의 머리카락 웨이브와 립글로스, 태일하(김옥빈)의 장신구나 메이크업에 대해 말이 나오는 건 단순한 트집이 아니다. 태고의 땅 아고에 ‘까끌래보끌래’ 미용실이라도 있는 걸까? 세련된 메이크업과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는 선사시대 인물들은 선사시대 판타지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또 아고의 배경을 청동기쯤으로 유추한다면 돌도끼나 휘두르는 무기류도 난감하다.



아울러 머리를 풀고 할렐루야, 느낌으로 타곤(장동건)이 등장하는 순간에 이 드라마가 대작인지 성경의 패러디인지 헷갈린다. 또한 신비한 느낌을 주고자 아사사칸(손숙)의 신성 동굴에서 신녀들이 선녀복 같은 의상을 입고 춤추는 장면 역시 당황스럽다. 신성 동굴 장면은 신비도 아니고, 신기한 것도 아니면, 그냥 식상하고 촌스럽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신녀의 춤 같은 허술함이 <아스달 연대기> 전체에 먹구름처럼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대작을 만들어야겠다는 강한 의지. 하지만 대작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기 위한 깊이 있는 세계관의 부족. 대작의 화면을 잡아내기에 부족한 영상 장악 감각 등등. 이런 것들이 <아스달 연대기> 제작진이 수많은 유사 판타지 장르 드라마의 스타일을 어설프게 따라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런 까닭에 혼혈인 이그트 은섬(송중기)을 통해 보여주려는 중심스토리에 접근하기도 전에 <아스달 연대기>은 시시하고 맥이 빠져버린다. 물론 흔치 않은 선사시대 배경 드라마가 보여주는 이야기 자체의 소소한 재미는 있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재미는 심형래 감독의 <티라노의 발톱>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 작가진이 꾸준히 보여준 새로운 영웅서사에 대한 고찰이 <아스달 연대기>에 녹아 있는 부분도 분명 있다. 다만 수많은 조잡한 먹구름에 가려 인상적인 부분들이 쉽게 도드라지지 않을 따름이다.



한편 배우들의 연기 면에서도 <퍼퓸>과 <아스달 연대기>는 비교가 된다. <퍼퓸>은 상대적으로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드라마다. 다만 주인공들이 신인작가가 보여주는 신선하고 어이없는 유머코드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이 부분에서 <퍼퓸>의 주인공 신성록, 고원희는 본인들의 몫을 충분히 해낸다. 고원희는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1>에서 개그캐릭터를 연기했던 경험을 발판으로 민예린의 코믹한 에피소드를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황후의 품격>의 악역과 개그캐를 넘나드는 황제 이혁을 연기한 신성록 역시 웹툰 주인공 같은 디자이너 서이도의 독특함을 이보다 더 잘 살릴 수는 없다. 두 배우 모두 이 드라마의 첫 번째 캐스팅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 두 배우 덕에 이 드라마의 개성이 살아난 것처럼 여겨진다.

반면 <아스달>은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 등 스타급 배우들 뿐 아니라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중견배우들도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이야기의 흐름 탓에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더우나 배우들 각각의 연기 스타일도 달라서 그것이 극에 쉽게 녹아들지 않는 것 역시 단점이다.



물론 <퍼퓸>은 끝없이 한국에서 반복되어온 로맨틱코미디물이다. 동시에 한국드라마가 저렴한 제작비로 뚝딱뚝딱 잘 만드는 장르이기도하다. 반면 <아스달 연대기>는 영화 <단적비연수>의 처참한 흥행실패 이후 20년 만에 돌아온 대작 고대시대 판타지다. 어쨌거나 제작진은 성공여부 미지수인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허나 과감한 도전정신에 감동해 박수를 쳐주기에 <아스달 연대기>는 많이 아쉽다. 사실 철저한 선사시대 고증이나 판타지 세계관에 대한 이해, 스케일이 큰 드라마의 화면에 대한 감각이 없는 대작의 성공 여부는 처음부터 미지수 아닌 무리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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