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생존자’, 권력의지 깨운 지진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권력이라고 하셨습니까? 저하곤 관계없는 이야기인데요. 전 그저 이 자리에서 시민의 책무를 다하고 60일 뒤엔 학교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예전처럼.”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지진희)은 비서실장 한주승(허준호)에게 그렇게 말했다. 초유의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 사건으로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게 된 박무진. 하지만 국민들도 청와대 수석보좌관들 같은 실무진들도 그를 믿지 못했다. 불신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한주승은 박무진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청와대 스텝의 신뢰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라”고 조언했다.

신뢰와 지지 그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한주승의 조언을 그러나 박무진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권력이라는 것과 자신은 아무 관계도 없다 여겼던 것. 그는 어쩌다 등 떠밀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지만 그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니 권력을 행사한다는 건 자신과는 먼 일이라고 여길 밖에.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자리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국정 공백’을 의미했다. 그건 즉각적인 폭력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탈북민들이 이 테러를 주도했다는 가짜 뉴스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극우단체들이 탈북민들이 장사하는 시장에 난입해 폭력을 저지르는 사건이 터졌다.



‘국정공백’을 기회로 삼으려는 정치인도 등장했다. 여권의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강상구(안내상) 서울시장은 폭력사태가 벌어진 보길 모현 지구를 특별감찰구역으로 선포하고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몇몇 탈북민들을 입건했다. 권력의 빈 자리를 차고 들어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정치적 행보였다.

그렇게 입건된 탈북민 중에는 아내 최강연(김규리) 변호사의 의뢰인도 있었다. 지병을 앓고 있어 주사를 맞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인 걸 알고 있는 최강연은 남편 박무진에게 힘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강상구를 불러 보길 모현 지구 특별감찰구역을 해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 결국 박무진은 권력행사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한주승의 이야기를 실감하게 됐다.

박무진은 입건된 탈북민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통령령 발령’을 결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난관이 있었다. 권한대행의 권한은 기존질서, 현상유지에 준해야 한다는 헌법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헌법 조항의 해석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그의 이런 선택은 그의 ‘정치적 행보’를 의미했다. 국민의 책무를 다하고 돌아가겠다며 권력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겼던 그가 이 선택 하나로 이제는 권력의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한주승이 대통령령을 발령하면 자신을 해임해야 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권력의지가 없다고 얘기한 박무진에게 ‘권력 행사’를 하는 경험을 제대로 해주기 위한 것일 수 있었다. 잠시 주춤했지만 박무진은 한주승을 해임했고 한주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권력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아직도 권력의지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60일, 지정생존자>가 박무진이라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첫 번째 행보에서 ‘권력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은 건 무얼 의미할까. 그것은 정치라는 것이 권력의지의 소산이라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함일 게다. 우리는 흔히 정치에 있어서 권력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상을 갖는다. 그것은 아마도 독재 시절을 거쳐 오며 정치권력의 부정적인 면들을 많이 겪어서일 게다. 그래서 심지어 권력행사에 해당하는 정치 자체를 혐오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무관심은 더 나쁜 정국을 야기한다. 그 빈자리를 차고 들어와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려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대통령 권한대행 같은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그저 어쩔 수 없는 책무로서 발만 담그려 했던 박무진이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인 국민들 역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권리와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권력의지를 깨운 박무진이라는 인물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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