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골수 매력의 대체불가 중견배우, 정진영과 정재영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15년 국회를 다룬 KBS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정재영은 용접공 출신 국회의원 진상필로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진상필은 어부지리로 국회의원이 된 후, 종종 동료 국회의원의 비웃음을 산다. 정치9단들이 보기에 진상필은 정치감각 없는 꼴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셈블리>는 이 꼴통처럼 가슴이 뜨거운 초선 국회의원이 정치판을 바꿔나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에 정재영은 늘 어울린다. 답답하고 외골수지만 다혈질이어서 보는 이를 울리고 웃긴다. 특히 흥분하면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까지 더듬을 때면 뭐랄까 연기가 아닌 사람의 진심 같은 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외골수 남자 캐릭터는 아무리 선한 사람이어도 종종 답답하기 마련인데, 정재영의 외골수 남자는 이상하게 후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편 2019년 국회를 다룬 JTBC 드라마 <보좌관>에는 무소속 초선의원 이성민(정진영)이 등장한다. 이성민 역시 정치9단의 국회의원들이 넘치는 국회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정의감은 넘치는데, 권력에는 욕심이 없는 희한한 외골수다.

정진영이 연기하는 정치 외골수 이성민은 정재영이 연기했던 진상필과는 그 톤이 다르다. 영화 <왕의 남자> 연산부터 시작해 정진영의 연기는 악인이건 선인이건 어둡고 느릿한 부드러움이 있다. 깊고 커다란 눈과 언뜻 코미디언 쟈니 윤이 떠오르는 어눌한 어투는 이 배우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이런 아우라는 그 캐릭터가 고독한 인물일 때 특히 도드라진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정진영은 연산의 포악이 아니라 연산의 고독에 맞춰 인물을 연기했다. 그 때문에 <왕의 남자>의 연산은 단순한 패륜아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미친놈처럼 보였다.

MBC <화려한 유혹>의 강석현 역시 이런 정진영의 매력이 도드라진 인물이었다. 어쩌면 강석현은 대본상으로는 음흉하고 청승맞은 부자노인처럼 묘사됐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정진영의 아우라를 덮어쓴 강석현은 고독하고 쓸쓸하면서도 매력적인 ‘할배파탈’로 그려졌다.



정진영은 <보좌관>의 이성민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고독한 인물의 매력을 보여준다. 난장판 국회에서 이성민은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외골수지만 사람냄새 나면서도 이상을 품은 낭만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정진영의 이성민을 보면서 낭만적인 인물이 난장판인 국회에서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할지를 느낄 수 있다. 그는 국회에서도 혼자고 술집에서도 혼자 술을 마신다.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는 장면에서도 정진영은 꿈을 품은 인간의 쓸쓸함을 드러낸다.

한편 또다른 외골수 중년남 연기의 달인 정재영은 MBC 드라마 <검법남녀2>를 통해 한 번 더 외골수 남자 캐릭터를 보여주는 중이다. 하지만 검법남녀 시리즈의 법의관 백범(정재영)은 그간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과 비슷한 듯 다르다.



백범은 오직 부검을 통해 증거를 찾아내려는 냉혈한처럼 보인다. 정재영은 톤 다운된 연기로 이런 백범의 캐릭터 무게감을 확실히 잡는다. 그는 저돌적이지 않다. 그저 까칠하고 냉정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마음에 안 찰 때는 투덜거릴 따름이다. 허나 정재영 특유의 표정이나 말투가 은근히 드러날 때 영화 <아는 여자>의 야구선수 동치성이 지닌 ‘츤데레’한 매력이 샘솟는다. 범죄물이면서 은근히 생활드라마인 검법남녀 시리즈와 정재영의 백범이 찰떡궁합인 이유다.

이처럼 정진영과 정재영 두 배우는 비슷한 중년남성 배우들과는 확실히 차별적인 매력이 있는 배우들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이야기가 아니라 골방에 혼자 있는 남자와 어울린다. 무언가 이 세상에 홀로 떨어진 고독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고독하지만 보석 같은 배우들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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