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 신민아와 이정재가 맞서는 시즌2를 기대하며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JTBC <보좌관>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국회의원 보좌진을 중심으로 현실정치의 이면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드라마로 출발했다. <보좌관>은 초반 국회의원 회관에서 일하는 2700명의 보좌진들의 직업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이후 드라마의 중심은 권모술수가 판치는 권력다툼으로 옮아갔다. 직업세계로서의 정치드라마가 아닌 익숙한 정치스릴러로 장르가 바뀌는가 싶더니, 시즌1의 마지막 회를 주인공의 ‘흑화’로 장식했다.

장태준(이정재)은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지녔지만, 그런 소신을 펴기 위해서는 힘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4선의 송희섭(김갑수) 의원을 원내대표에 앉히고, 법무부 장관내정자로 만드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토사구팽을 당할 위기에 빠지자, 그는 송희섭 의원에게 맞선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장태준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그의 행보를 응원했다. 장태준이 부패한 송희섭 밑에서 일하면서도 서민정치를 실현하려는 이성민(정진영) 의원과 정치적 꿈을 공유하며, 원칙만 내세우는 이성민 의원보다 더 현실적이고 유능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민 의원이 죽은 뒤, 장태준은 송희섭에게 무릎을 꿇는다. 손에 피를 묻힌 채, 이성민 의원의 죽음으로 치러지게 된 보궐선거의 공천권을 얻는다. 장태준의 진심을 믿으며, 그의 반격을 기대하던 시청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오는 11월에 시작한다는 시즌2를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멍한 상태이다.



드라마에는 현실정치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노회찬의 죽음, 이명박의 동영상, 마티즈 속 번개탄, 노량진 수산시장 재개발, 내부 고발자의 파탄 난 삶, 젊은 하청 노동자의 산재, 국회의원 여성혐오 발언, 낙태죄 위헌 등. 이러한 굵직한 실제 사건들과 정치권에 대한 극사실적인 묘사가 단지 한 야망청년의 국회진출기를 보여주기 위한 극적인 소재로 동원된 것일까. 고작 장태준 하나 국회의원 만들려고 사람이 둘이나 죽어야 했다면, 너무 허망한 노릇이다. 더욱이 이성민의 죽음과 장태준의 흑화는 정치의 꿈을 꾸어봤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일 수 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정치 혐오를 부르는 결말이다. 정말 이게 전부일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밥으로 시즌1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즉 시즌1은 일종의 전사(前史)로 존재하는 것이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담은 시즌2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보좌관>이라는 시즌제 드라마가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이 될 수도 있고, 해묵은 정치혐오나 양산하는 정치스릴러를 답습할 수도 있다. 드라마가 가능성으로 내비치는 구도가 무엇이며, 어떤 전개가 <보좌관>이 시대정신에 기름을 부을지 살펴보자.



◆ 흑화된 장태준, 변절한 386 정치인의 논리

장태준은 강선영(신민아)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믿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 ‘흑화’를 택한다. <보좌관>은 ‘흑화’를 시각화하기 위해 심지어 만년필의 잉크가 새는 것까지 보여준다. 그의 가슴에 흘러내리는 잉크와 손에 묻은 잉크는 그대로 피를 암시한다.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흑화’를 보여주었건만, 여전히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시청자들이 있다. 이들은 장태준이 국회의원이 된 다음 권력을 이용하여 송희섭을 무너뜨리고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그것은 괴상한 믿음이다. 우리는 이미 변절한 386세대 정치인들을 알고 있다. 그들도 공정한 나라를 꿈꾸었고, 자신의 소신을 펴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을 가진 뒤, 정치를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릎 꿇었던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 되었다. 김문수나 이재오 등 몇몇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여권으로 흘러든 386정치인들은 정권을 잡은 후에도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갖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한다는 ‘현실논리’를 편다.



그들은 ‘신념’을 위해 ‘현실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현실논리’가 바로 그들의 ‘신념’이다. 한손으로 약자를 후려치면서, 옳은 신념을 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니 더 많은 지지를 보내달라며 다른 한 손을 내민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믿어 달라”는 말은 정치의 영역에서 통용될 수 없는 말이다. 정치인은 행위를 통해 지지와 철회의 선택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무조건적인 지지호소는 익숙하다. 장태준은 나이는 더 젊을지라도, 익히 보아왔던 386 정치인들의 영혼을 빼다 박은 인물처럼 보인다.

장태준의 행보를 보라. 그동안 그는 중간을 왔다 갔다 하며 그 틈새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직 정치모리배 짓으로만 잔뼈가 굵은 오보좌관(정웅인)과는 달리, 그는 나름 정치가 약자를 돕고 삶을 바꾸어 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는 철학이 있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강선영 의원과 윤비서(이엘리야)와 한도경(김동준) 인턴은 그를 신뢰했다.

하지만 장태준은 산재현장의 CCTV 파일을 공개하는 대신, 부패 기업인과의 거래를 통해 자신의 이권과 유족에 대한 사과를 얻어낸다. 원청 기업인이 하청 노동자의 유족에게 무릎 꿇은 것은 이례적이지만, 그것은 ‘이미지 정치’일 뿐이고 본질은 진실의 은폐이다. 하지만 그의 행위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적어도 유족의 마음은 위로 했다”고 선해 된다. 같은 원리로 서북시장 상인들을 공청회에 불러 모은 사이 철거를 단행한 것도 “상인들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궤변으로 방어된다.



그가 고보좌관(임원희)을 죽였을까. 드라마는 이를 불분명한 암시로 처리하기 때문에, 장태준을 믿고 싶은 사람들은 그가 친구이자 동지였던 고보좌관을 죽였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삼일회 측에서도 정보의 누출을 인지했기에, 그들이 죽였을 가능성이 열려있다. 하지만 장태준이 직접 고보좌관을 죽였든 죽이지 않았든,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장태준이 고보좌관을 죽이는 권력과 한배를 탄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마치 이성민 의원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부패권력에 의한 척살이라는 본질을 바꾸지 않는 것과 같다.

장태준이 무릎을 꿇고 피를 묻혀가며, 국회의원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정치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를 ‘믿는다’는 말은 대체 무엇일까. 같은 삼일회 일원으로 국회의원이 된 장태준과 송희섭 법무부 장관 사이에 어떤 긴장과 대립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물론 <내부자들>의 우검사(조승우)처럼, 그가 내부고발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신세계>의 이자성처럼, 그 세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요컨대 장태준은 시즌1의 주인공이지만, 흑화된 뒤 시즌2에서는 반동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본질로서의 정치, 이전투구로서의 정치

장태준의 정치적 소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는 윤비서의 전언은 입법부의 존재 이유이자 ‘정치의 본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장태준이 그동안 한 일들 중에서 법과 제도에 기여한 것은 무엇일까. 장태준이 한 것은 협잡을 통해 송희섭을 높은 자리에 올리고, 자신을 버리려는 송희섭에게 맞서고, 오보좌관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공천권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흙탕 싸움의 현실정치’에 해당된다. 즉 장태준은 이상으로서의 정치를 늘 입에 담았지만, 실제로 그가 실력을 보이고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은 정치혐오의 대상이 되는 권력다툼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정치의 본질’에 치중하던 때가 있었다. 이성민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 함께 선후배 보좌진으로 일했던 시절, 그는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족을 도왔다. 그때 유족이었던 한도경 인턴은 장태준을 훌륭한 보좌관으로 존경하며 자신의 롤 모델로 삼는다. 또한 기자 출신의 윤비서가 장태준을 흠모하며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도 장태준에게 정치의 본질을 수행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선영이 그와 연인이 된 것도 장태준에게 자신이 흡수하고픈 노련한 정무능력과 패기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강선영 의원과 윤비서와 한도경은 모두 장태준을 사랑하거나 흠모하거나 존경하는 자들로, 장태준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에 가까운 일을 한다. 한도경은 지역구의 어려운 주민을 만나고, 윤비서는 자료를 분석하고 법안과 질문지를 만드는 등 보좌진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일을 하며, 강선영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고 그것을 통과시키기 위해 거물 정치인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이들이 무슨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뛰는지 시청자들이 알 수 있다. 한도경은 산재피해자와 시장상인들을 돕기 위해 발로 뛰었고, 윤비서는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만드느라 심혈을 쏟았다. 또한 강선영 의원은 한부모 지원법을 통과시키고, 한 소녀를 구하고, 낙태죄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막아냈다.

잘난 장태준이 부패한 ‘아버지들’과 싸우다 무릎을 꿇고 한자리를 얻는 동안, 그의 능력을 사랑하거나 흠모하거나 존경하였던 이들이 장태준이 하지 못한 ‘본질로서의 정치’를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강선영 의원은 지금껏 다루어진 적이 없는 여성 캐릭터이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TV정치 토크쇼를 진행했으며, 비례대표 초선의원으로 당 대변인을 맡았다. 두 거물 정치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누구에게도 충성하거나 줄서기를 않는다. 양자를 오가며 권력의 이음매를 벌려, 그 틈새에서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이다. 힘의 관계와 국회 절차를 훤히 꿰뚫고 영리하게 정적을 활용하여 상대를 저격한다. 자기 욕망에도 충실해서 장태준 보좌관과 비밀연애를 하지만, 그를 정치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생각할 뿐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장태준에게 “누가 누구에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네 꼴을 보라”고 쓴 소리를 퍼붓고, “이 자리에 오래 있으려면 입조심을 하라”는 거물 정치인에게 “할 말도 못하면서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받아친다. 정치혐오에 찌들어있는 미혼모에게 정치의 양면성을 당당하게 말하고, 위기에 몰려도 그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다. 올바른 정책을 펴나가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권력을 위해 올바름을 저버린 적 없는 강선영은 한 번도 재현된 적 없는 용감하고 영민하며 정의로운 여성정치인이다.



◆ 새 시대의 첫차, 여성정치

이쯤 되니 시즌2가 주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강선영과 윤비서와 한도경을 주인공으로 삼아, 장태준까지 한편이 되어버린 삼일회의 부패권력과 맞서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보좌관>은 제목이 가리키는 직업세계의 의미도 살리고, 현실정치가 봉착한 문제와 새로운 정치의 비전도 담아내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

한도경은 이미 장태준과 맞설 것을 예고했고, 윤비서와 강선영 의원의 입장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보좌관의 죽음의 진상이 알려지면, 장태준에 대한 강선영 의원의 믿음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또한 고보좌관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보좌관 자리에 윤비서가 들어가고, 한도경이 윤비서를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셋이 한 팀이 된다. 혹자는 윤비서와 강선영 의원이 장태준을 사랑하기에 이런 구도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 연애감정이 남성의 부도덕함을 알았을 때도 유지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낡은 통념이다. 더구나 강선영과 윤비서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닌 인물들이다. 출세욕에 사로잡혀 대의를 저버리면서도 고뇌하는 척 하는 남자선배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며 자신의 실무능력을 갈아 넣는 여자후배의 구도는 청산되어야 할 386 연애담의 찌꺼기다.



사랑에 대한 낡은 통념을 깨고, 이들이 한 팀이 된다면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시즌1의 마지막이 강선영 의원의 낙태죄에 대한 이슈 파이팅으로 장식된 것은 시즌2에 대한 서막으로 읽힌다. 이는 시즌2에서 강선영 의원을 통해 ‘본질로서의 정치’를 보여주되, 그 내용은 여성정치일 것이라는 암시이다. 즉 송희섭과 장태준 사이에 전선이 그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한 묶음으로 하는 낡은 정치세력과 이들에 대항하는 새로운 주체 사이에 전선이 그어지는 것이다.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 보좌관으로 이루어진 팀이 행하는 새로운 정치는 한부모 지원사업, 낙태관련 입법, 여성혐오발언 정치인 징계 등에서 한발 더 나아간 여성정치의 실현이다.

시즌2가 이런 구도로 만들어진다면 <보좌관>은 단순히 현실정치를 반영하고 모사한 드라마를 넘어서, 현실정치의 모순을 적확하게 집어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정치드라마로 성공할 수 있다. 촛불혁명 정신의 진정한 계승은 정권교체가 아닌 ‘미투혁명’이었다. 386 정치인들이 기득권의 일원이 되어 부패하는 것을 막을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도 여성 정치에 있다. 장태준으로 유비되는, 나쁜 아버지와 싸우다가 무릎을 꿇고 한자리를 얻는 패거리 정치가 아니라, 강선영이 보여주는 입법과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새로운 정치가 시대정신으로 요구된다. 구시대의 막차인 장태준과 결별한 강선영이 새 시대의 첫 차로서 장태준과 맞서는 구도를 시즌2가 보여준다면, ‘정치의 전선을 이동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기름을 붓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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