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문제야’, 남녀노소 노래에 취하게 하는 놀라운 마력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술이 문제야’는 짧은 전주 후에 바로 훅으로, 훅 뛰어드는 노래다. ‘그리워서 한 잔’이라는 도입부의 첫 소절이 윤민수의 휘감기는 목소리에 탁 녹아들면 바로 감정의 취기가 오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노래는 계속해서 훅훅, 달려든다.

윤민수는 2000년 대 초반 한국 가요사를 뒤흔든 소몰이 창법의 화석이자 아직까지 살아남은 보컬리스트다. 윤민수의 강점은 어쩌면 신파적이라고 느껴지는 감성과잉 보컬을 적절하게 다져주고 눌러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소몰이 보컬들과 달리 감정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민수의 노래를 듣다보면 내 마음 깊은 곳의 아프게 뭉쳐졌던 슬픈 기억을 마사지해 풀어주는 기분이 든다. 마치 내 사연 하나하나가 살아나 나 대신 엉엉 울어주는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더구나 ‘술이 문제야’는 누구나 공감할 법한 평범한 노랫말에 누구나 공감하는 이별의 감정을 싣는다. 옛 추억에 취해 술을 마시고, 독한 네 사랑에 취해 술을 마신다. 이것은 이별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했던 일화일 것이다. 자꾸 너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내 탓이 아닌 애꿎게 “술이 문제야, 문제”라며 술 탓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자꾸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한 잔”을 마신다.



하지만 계속해서 흐느끼며 몰아치는 윤민수의 창법으로만 흘러갔다면 ‘술이 문제야’는 듣는 이를 지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훅으로 파고들어 계속 달려가는 노래를 중반부에 가라앉히는 건 바로 함께한 장혜진의 힘이다.

장혜진의 보컬에는 두 가지 강점이 있다. 한 가지는 기본기에 충실한 장혜진의 노래를 들으면 정말 훌륭한 보컬의 노래를 듣는 뿌듯함이 있다. 장혜진은 개성 있는 보컬로 노래를 압도하기보다 그 노래가 지닌 분위기에 따라 자신의 보컬로 밸런스를 맞춘다. 그 때문에 데뷔 시절 불렀던 ‘꿈속에선 언제나’나 ‘키 작은 하늘’처럼 전형적인 록 보컬과 블루스 보컬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도 이후 댄스곡이나 라틴음악까지 그에 어울리는 보컬을 구사해왔다. 또 2000년대 그녀에게 새 전성기를 열어준 바이브와 함께한 ‘그 남자 그 여자’에서는 당시 유행하는 감성적인 보컬을 본인 스타일로 적절하게 소화해냈다.



또 하나 드러나는 장혜진 보컬의 매력은 ‘드라이함’이다. 그녀의 보컬은 달콤하지 않다. 달지 않은 와인처럼 기본적으로 감정을 깊게 끌어내려 더 깊은 곳으로 사람을 침잠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고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장혜진의 대표곡 중 하나인 ‘완전한 사랑’은 그녀의 ‘드라이’한 보컬의 매력이 가장 도드라진 곡일 것이다.

‘술이 문제야’에서 장혜진의 역할도 그것이다. 윤민수에서 장혜진으로 바통이 넘어가는 순간 ‘술이 문제야’는 흐느끼지 않고 한층 가라앉는다. 그리고 이것은 ‘혼술’할 때 어느 순간 잔을 멈추고 멍하게 생각에 잠기는 그 순간의 느낌과도 일치한다. 술기운에 휘몰아치던 감정의 폭풍은 어느새 가라앉지만 내 마음의 음울한 먹구름은 더 짙어지는 그 순간 말이다. 그 도입부를 지나면 장혜진은 자연스럽게 실크 같은 음색으로 부드럽게 노래의 감정선을 끌어올린다.



‘술이 문제야’는 이어 윤민수와 장혜진의 보컬이 맞물리면서 노래의 감정 피치가 최대에 이른다. 비슷한 듯 다른 두 보컬의 하모니를 듣다보면 어느새 술이 아닌 노래에 취하게 만드는 기분이 든다.

여기에 더해 ‘술이 문제야’는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풍의 한국인 누구나 좋아하는 편곡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이 편곡 때문에 두 보컬이 주고받는 지점에 이르면 어느새 한편의 훌륭한 음악경연 프로그램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짜릿함마저 선사해준다. 이렇다 보니 ‘술이 문제야’는 필자처럼 술 한 잔 안 마시는 사람이라도 단숨에 훅 노래에 취하게 만드는 놀라운 매력이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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