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조의 ‘샤워’, 10년을 훌쩍 넘긴 ‘컨셉’ 장인의 힘이란 이런 것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15년 조빈과 이혁의 노라조는 ‘똘끼’의 정점 <니 팔자야>를 발매한다. 한국의 기복사상과 관광버스 댄스 분위기에 베토벤의 <운명>까지 버무린 이 곡은 나름 ‘노라조’ 스타일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니 팔자야”와 “아, 대박!”을 오가는 노래를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로또’ 1등에 당첨될 것 같은 환각에 이른다고나 할까? 억울하게도 <니 팔자야>의 뮤직비디오를 보다보면 조빈이 속삭이는 “생동감이 넘치는 이 노래가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다.”라는 최면어법에 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노라조는 <니 팔자야>를 통해 3집 <슈퍼맨>의 귀여운 ‘똘끼’에서 너무 극단으로 간 느낌은 분명 존재했다. 그 전의 노라조는 조빈을 필두로 한 코믹한 듀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니 팔자야>는 호불호가 갈리는 괴상한 노래였다. 컬트적인 지지층은 확보했지만, 대중적인 지지는 전만 못했으며, 뮤직비디오는 방송금지를 당했다.



그럼에도 <니 팔자야>의 뮤직비디오는 4년 지난 지금도 대중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괴작’이다. 과연 B급과 A급 가요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뮤비는 신자유주의 열풍에 매몰된 현대인의 비극을 풍자한 것인가? 조빈의 시바신과 이혁의 용대가리 비주얼 폭풍 영상에 압도당하는 이 기분 무엇.

운명을 노래한 노라조는 <니 팔자야>를 불렀지만 ‘아, 대박!’을 치지는 못했다. 대신 <니 팔자야> 이후 노라조의 운명은 큰 변화를 겪는다. 노라조 노래의 락적인 보컬과 정상적인 분위기를 담당한 이혁이 탈퇴한 것이다.



이후 노라조의 ‘똘끼’를 담당한 조빈은 이혁과 비슷한 분위기인 ‘용의 관상’으로 잘생긴 원흠을 새 멤버로 맞이한다. 2018년 노라조는 <니 팔자야>에 비하면 깜찍한 케이팝 같은 <사이다>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노라조의 조빈은 성별까지 초월하는 독특한 ‘사이다’ 컨셉으로 특유의 똘끼를 보여주었다.

<사이다>의 성공 이후 2019년 노라조의 조빈은 눈알이 빠질 만큼 시원한 폭풍 <샤워> 뮤직비디오를 들고 나타난다. 여러 면에서 <샤워>의 뮤직비디오는 <니 팔자야>의 후속타 같은 면이 있다. 우선 시바신 느낌의 조빈이 하늘에서 날아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후 뮤직비디오는 변기 속 블랙홀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노래는 마지막까지 19금 모자이크와 젖꼭지 보일러, 눈알 빼서 씻기 등등 기기묘묘한 샤워의 세계로 인도한다. 하지만 메시지는 상당히 건전하다. 어쨌든 <샤워>의 주제는 더운 여름에 잘 씻자, 이니까.



또 <샤워> 자체가 <니 팔자야>보다는 조금 더 친근한 노래다. <니 팔자야>가 베토벤의 <운명> 채찍을 맞으며 대박 기도원으로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라면, <샤워>는 19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신데렐라> 멜로디를 후렴구로 살려 코믹한 즐거움을 준다. 특히 “샤바, 샤바, 아이 샤바”를 “샤워, 샤워”로 바꾼 센스는 꽤나 유쾌한 감각이다. 뮤직비디오자체는 <니 팔자야>보다 더 깊숙한 블랙홀로 빠진 듯하지만, 음악 자체는 그들의 대표곡 <슈퍼맨>처럼 친근감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노라조의 <샤워> 무대는 뮤직비디오와는 또 다른 비주얼의 재미를 준다. 이태리 패션 부럽지 않은 이태리타월 바지와 샤워캡, 그리고 6인조 세신사 컨셉 백댄서와 함께하는 무대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청량감을 준다.



이쯤 되면 노라조는 성별은 다르지만 한창 ‘똘끼’ 충만했던 패션과 뮤직비디오 컨셉으로 대중들을 빨아들인 전성기의 레이디 가가(Lady gaga) 못지않은 재미와 충격을 준다. 특히 노라조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터프하지만 전형적이고 빤한 아이돌이 넘쳐나는 케이팝 시장에서 더욱 돋보인다. 노라조의 생동감이 넘치는 <샤워>를 듣다보면 요란하지만 은근히 빤한 케이팝 메이크업을 시원하게 씻어내는 마력이 느껴진다. 10년을 훌쩍 넘긴 ‘컨셉’ 장인의 힘이란 이런 것 아닐까?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마루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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