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섭외하고도 망한 ‘해투4’, 장수 예능의 품격은 어디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 예능 <해피투게더4>가 관성적인 토크쇼라는 평은 그 자체로 진부하다. 그런데 지난 15일 밤 ‘음악앨범특집’으로 꾸려진 <해투4>는 진부함을 넘어 어색함과 불편함까지 느껴졌다. 코스타리카에 가서 낚시를 하는 게 예능이 되고, 진짜 연애를 하고,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해 축구공을 함께 차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2000년대 초반 감성과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가치와 취향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무나 노골적이고 무성의하다는 생각까지 든 15일 방송을 보면서 <해투>의 진부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 진부함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생각해본다.

‘음악앨범특집’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홍보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배우 김고은, 정해인, 김국희, 정유진 등이 영화 홍보를 위해 출연했고, 기존 스튜디오를 벗어나 LP바로 촬영장소를 옮겨서 영화에 어울리는 무드를 조성했다. 공간을 바꾸면서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기억이 많아서일까. <해투>는 준비를 여기까지만 했다.

촬영 일정이 굉장히 급하게 잡힌 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질문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연예가중계>의 리포터식 진행과 기계적인 리액션이 시종일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됐다. 유재석이 이끄는 <해투>의 장점은, 게스트와 MC진이 어울리면서 그 안에서 생생한 장면, 의외의 캐릭터 발견을 통해 뜻밖의 캐미스트리를 만들고 엮어가는 살아 있는 웃음이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서 유재석과 김고은 사이를 경계로 나눠 앉은 구도 그대로 양측은 전혀 어우러지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선, 질문이 식상해도 너무 식상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관성 그대로 두 주연배우의 얼굴을 최대한 오래 잡는 게 목표인 듯했다. 두 주연배우의 만남, 두 주연배우의 연예계 친분, 의외의 인간미, 그리고 간략한 영화 홍보에 이어 갑자기 스타가 되기 이전 녹록치 않았던 두 주연 배우의 초년기 에피소드를 두어 가지 질문으로 훑었다. 그런데 준비된 메인 에피소드가 몇 해 전 방영한 <도깨비>에 관련한 것일 정도로 새로움이 없었다.

분명 영화 홍보인데 관련 이야기 중 가장 긍정적인 내용이 사람이 너무 좋았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 홍보에서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술자리를 자주 가질 정도로 친해졌다는 이야기는 귀신영화에 귀신이 나온다는 정도의 클리쉐다. 그래서인지 혹은 애초에 그럴 마음이었는지 <해투>의 대본은 영화보다 정해인과 김고은의 얼굴을 잡는 데 있는 듯했다. 털털한 김고은과 바르고 착한 정해인의 기존 이미지 안에서 테두리가 정해진 준비된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니 흥미를 끄는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살아있는 대화가 나올 수가 없었다. 대신 유재석은 조세호를 타박하거나 정해인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마련하려 애썼는데, 이는 지금 현재 방송되는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유 퀴즈 온 더 블록>과 <놀면 뭐하니?>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도 조세호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현무와 조윤희는 대본상 주어진 질문을 간헐적으로 하는 서브 리포터 이상의 롤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방송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간혹 돌려가며 방송을 본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는데, 실은 뮤지컬로 유명한 김국희와 최근 여러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정유진까지 4명의 배우를 초대했었다. 그러나 풀샷이 잡힐 때를 제외하면 주로 정해인과 김고은의 투샷을 잡거나 MC진과 김고은, 정해인까지만 한 화면 속에 잡고 두 조연 배우는 목소리는 물론 얼굴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실제 촬영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방송 상으로는 공통 질문이나 ‘흑역사 지워드립니다’ 같은 코너, 개인적인 질문들은 모두 두 주연배우까지만 해당됐다. 너무나 직설적인 주연배우 띄워주기 속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은 배역의 차이 이상으로 철저히 소외당했다.

주연 배우들에게만 집중해서 웃음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대본과 될 만한 캐릭터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는 유재석식 진행이 만나 벌어진 참사인지, 애초에 두 배우에 대한 준비를 안 한 건지 모르겠지만 배역과 인지도를 기준으로 한 노골적인 차별은 보고 있는 시청자가 대신 사과하고 싶을 만큼 불편하고 민망했다.



김고은과 정해인은 초창기 어려운 시절 이야기, 고마운 선배 이야기 전작 이야기, 상의 탈의 사진까지 나왔지만 예능 시청자들에겐 낯선 김국희와 정유진은 다 합쳐서 3번 이상 말할 기회를 가졌을까? 그나마 정유진은 분위기 전환을 위한 개인기 무대라도 가졌지 뮤지컬배우임에도 김국희의 노래는 편집되었다. 마지막 인사말까지 목소리만 나올 뿐 정해인, 김고은의 얼굴 아래서 배경 처리되었다.

<해투>의 올드함은 나름의 콘셉트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무성의함이 느껴지는, 그래서 불편함까지 전해지는 방송을 보면서 고민 없는 관성을 떠올리게 된다. ‘좋은 사람’이 키워드인 요즘 예능에서 MC들의 브랜드도 있는데 이런 무례를 의도적으로 범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홍보성 출연도 그럴 수 있고, 많은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가 나왔으니 포커스의 비중을 달리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조연 배우는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데려다 놓고 주연배우에게만 집중하는 심각한 분량 차이는 제작진의 준비와 MC진의 마인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인기스타 게스트의 인지도에 의존해 너무 쉽게 과실을 얻으려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토크쇼라는 기본조차 간과한 게 아닐까. 시청자의 반응은 2% 대로 떨어진 시청률로 나타났다. 장수 예능다운 품격이 매우 아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