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산촌편’, 더 자연스러워진 자급자족의 즐거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삼시세끼> 시리즈가 방송가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연예인들을 데리고 도시의 화려한 인프라를 등 지고 농어촌으로 들어간 뒤, 하루 종일 논일 밭일 낚시일에 밥 세 끼 차려 먹는 일만 시키는데 그게 예능이 되다니! 더 많은 요소들을 합쳐서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차포 다 떼고 밥 세끼 지어먹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나온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몇 시즌의 이야기다. 몇 번의 시즌을 반복하면서 <삼시세끼>의 문법이 확립되자, 이제 대부분의 그림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유사 프로그램들의 등장 또한 포맷의 신선함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다.

그래서 였을까. <삼시세끼 산촌편>은 ‘요리하고 집안일 하는 남자들’이라는 시리즈의 특성에서 ‘남자들’이란 요소를 빼고 최초로 멤버 전원을 여성으로 채웠다. 그러자 요리가 서툴고 집안일에 손에 안 익은 남자들이 일머리를 익혀가는 과정의 재미 대신, 숙련된 프로페셔널들의 물 흐르는 듯한 노동이 선사하는 안도감이 그 자리를 단단하게 채웠다.

[TV삼분지계]는 1회와 2회 모두 동시간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인 <삼시세끼 산촌편>을 어떻게 봤을까. 김선영 평론가는 집안일이 이미 일상의 영역인 여성 멤버들이 빠른 속도로 협력하며 일을 해치운 덕분에 <삼시세끼 산촌편>이 가장 자연스러운 매력이 돋보인다고 평했고, 이승한 평론가 또한 같은 맥락에서 ‘노동의 고단함’이란 미션 대신 ‘멤버들 본연의 매력’으로 가장 빨리 직행한 시즌이라 평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거리를 찾아 척척 해내는 박소담의 매력을 알아본 제작진의 안목을 칭찬했다.



◆ 자급자족 ‘프로젝트’에서 진짜 자급자족이 된 예능

<삼시세끼>가 처음 공개될 당시 방송가에는 요리 예능이 한창 대세였다. 그 예능의 진행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오죽하면 ‘요리 솜씨로 여성을 매혹하는 남자’를 뜻하는 ‘게스트로섹슈얼’이라는 서구의 신조어도 수입됐고, 이 말은 나중에 ‘요섹남’이라는 한층 노골적인 말로 로컬라이징됐다.

‘자급자족 프로젝트’를 표방한 <삼시세끼>가 새롭게 느껴졌던 것은,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남성 셰프들의 화려한 주방 엔터테인먼트쇼로 변한 ‘요리’에, 생존을 위한 노동이라는 일상적 의미를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 ‘삼시세끼’의 노동이란 아침밥을 지어 먹고 뒷정리를 마치면 곧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고, 그렇게 또 한 끼를 먹고 나면 어느새 또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 끝없는 반복 행위다. 비록 그 노동을 일상에서 매일같이 수행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 배우 이서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 위에 아궁이 불씨가 꺼질까 전전긍긍하고 쉼 없는 부엌일에 지친 ‘며느리 시집살이 체험기’를 겹쳐놓음으로써 ‘게스트로섹슈얼’의 판타지를 깨는 쾌감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 등 여성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삼시세끼 산촌편>은 역대 ‘삼시세끼’ 시리즈 가운데 제일 자연스러운 맛이 살아 있다. 남성들 편의 ‘트위스트’ 없이, 원래 ‘자급자족’이 일상인 이들의 모습에서 배어 나오는 편안한 재미다. 가령 나영석 PD가 기껏 기존 시리즈의 관습대로 염정아에게 ‘메인 셰프’의 룰을, 박소담에게 ‘성실한 막내’의 룰을 부여해도, 어느새 누구랄 것 없이 ‘함께’ 모든 일을 해내고 정리하는 모습이야말로 ‘산촌편’의 핵심 묘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척척 해내니 굳이 남성 게스트의 ‘머슴 롤’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인스턴트 음식과 인공조미료를 예찬하며 투덜거리는 캐릭터의 웃음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난이도를 높여가며 요리 미션을 수행하는 스펙터클 대신, 그저 ‘삼시세끼’의 일상적 노동에 충실한 ‘산촌편’은 그래서 오히려 가장 신선하고 경쾌하게 다가온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미션이 사라진 자리를 멤버들 본연의 매력으로 채우다

일이 쌓일 틈이 없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시리즈에서 보기 드물게 좀처럼 설거지 감이 쌓이지 않는 수돗가를 보여주며, 요리 중간중간 쉬지 않고 설거지를 하는 멤버들을 보여준다. 가사노동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인 여성 멤버들이 모인 덕분에, <삼시세끼 산촌편>은 직접 노동해서 직접 밥상을 차려 먹는다는 조건이 더 이상 ‘미션’이 아니게 됐다. 요리하는 멤버에게 끊임없이 ‘엄마’라거나 ‘셰프’ 같은 별호를 달아주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캐릭터 빌딩을 해왔던 시리즈의 전통이 <삼시세끼 산촌편>에선 자취를 감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기는 요리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치던 염정아와 윤세아 모두 막상 식사를 준비할 때면 시행착오 한번 없이 일을 척척 해내니, 이서진이 보여줬던 ‘일이 손에 안 익은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며 집안일을 해내는’ 광경의 코미디나 차승원이 보여준 ‘의외의 집안일 실력’ 같은 반전요소들로 승부를 걸기가 애매했으리라.



그래서 <삼시세끼 산촌편>은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지점으로 빨리 들어간다. ‘멤버의 요리와 노동’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해당 멤버가 지닌 본연의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염정아의 급한 성격과 실없는 유머센스,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좋아하는 화사한 성격을 보여주고, 윤세아의 느긋함과 전체를 살피는 시야, 오골계와 손가락만한 당근과 세상 만물을 귀여워하는 애정을 보여준다. 박소담의 밥의 단 맛을 즐기는 입맛과 어딘지 모르게 어르신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자급자족이라는 미션 앞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멤버들’이라는 허들의 단계가 사라지면서, <삼시세끼 산촌편>은 에두르는 일 없이 곧장 멤버들 개개인의 매력으로 직행해 그들의 매력만으로 리듬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삼시세끼 산촌편>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시즌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장 꾸밈없는 시즌으로 기록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박소담의 진면목을 알아본 제작진이 있어 다행이다

세상에는 뭘 시켜야 겨우 하는 사람과 일거리를 스스로 찾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 매의 눈으로 일을 찾아 눈치껏 해결하는 이가 최고의 일꾼이겠고,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물론 시키는 일도 못하는 이가 그 다음 순서겠다, 최악은 일이 눈에 들어와도 모른 척 외면하는 사람일 테고. 소담스럽게 밥 잘 먹는 <삼시세끼 산촌편> 막내 박소담은 단연 일꾼 계의 으뜸이다. 한 마디로 ‘일 머리’가 있다. 첫날부터 염정아가 요리를 하고 윤세아가 불을 피우는 사이 알아서 정리정돈을 맡았는데 사실 뒷정리는 표 안 나고 생색 안 나는 일이 아닌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제작진이 엽렵하게 카메라에 담아준 덕에 다람쥐 모양 일거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박소담을 볼 수 있었다.

성시경이 Olive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에서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라고 하더니 과연 ‘산촌’ 팀의 한 끼 한 끼는 늘 완벽한 마무리다. 장 보러 가서는 필요한 목록을 꼼꼼히 점검해가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무턱대고 카트에 주워 담았다가 계산대에서 물건 빼느라 수선을 피우던 몇몇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박소담이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교본이 될 것 같다.

박소담이 MBC <라디오 스타>에 나왔을 때 흔치 않은 신선한 면면에 반해서 그가 출연한 연극 <렛미인>을 보러 갔었다. 잠깐 나왔던 tvN <내게 남은 48시간>도 봤고, 당연히 KBS 월화극 <뷰티풀 마인드>도 챙겨 봤다. 박소담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는 제작진 때문에 속 터져 하며. 그게 2016년 일이다. 무려 3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TV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그의 진면목을 알아본 제작진이 있어 다행이다.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영상·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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