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예능, 낚시가 예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입추가 지나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 뒤늦게 찾아온 두 편의 서핑 예능이 방송 중이다. 해수욕장 폐장일이 2주 남짓 남은 가을을 기다리는 길목에서 한여름 바이브가 가득한 계절콘텐츠를 펼친 시기상의 패착일까. 서핑붐이 일었던 2015년 이후 오래간만에 서핑이 예능에서 파도타기를 하고 있지만 도통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서핑은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붐이 일었다. 자연친화적인 서퍼 문화는 단순한 해양스포츠를 넘어서서 캠핑, 슬로라이프, 아웃도어 등과 일맥상통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재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도 2010년대 초반 양양 죽도 해변을 중심으로 서핑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났고, 2015년을 기점으로 서핑 관련 방송 콘텐츠가 줄을 잇고 있다.

2015년 XTM에서 방송한 최초의 본격 서핑 예능 <닭치고서핑>을 비롯해 <겟잇기어>, GTV <레츠고 서핑트립>, 엄정화와 정재형의 호주 서핑기를 그린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마리텔>, <뭉쳐야 뜬다>, <동상이몽>, <나혼자 산다> 등에서 계절메뉴처럼 여름이면 어김없이 서핑이 등장했다. 올해도 <서민갑부>부터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서핑을 다뤘다. 그런 만큼 분명히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 팽창하고 있지만, 방송에서는 한 번도 큰 파도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 7월 21일 방송을 시작한 JTBC의 <서핑하우스>는 제목 그대로다. 서핑의 성지 양양 죽도에서 조여정이 사장을 맡고, 송재림, 김슬기, 전성우 등이 직원이 되어 서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야기다. 서핑도 서핑이지만 게스트하우스다보니 손님들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부녀, 부부, 친구, 혼자 오는 손님, 외국인, 연예인, 반려견 동반 손님, 동호회 손님, 3대가 함께하는 가족 손님 등 다양한 나이와 직업과 관계를 가진 손님들이 서핑이란 공통분모로 모여 삶과 사람, 서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바다를 즐긴다.

쉽게 말해 <효리네민박>의 서핑 버전이다. 다만, 진짜 사는 집에서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담아낸 ‘효리네’와는 달리 PPL로 전개되는 서핑하우스의 모든 것이 급조되었다. 출연자들은 실제로 양양에 며칠간 묶으며 맡은 역할을 진정성 있게 해낸지만, 송재림 정도를 제외하면 출연자들은 서핑의 문외한이다. 그런 까닭에 이 문화를 알린다기보다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는 입문자의 시선 역할을 한다. 그래서 방송은 서핑 문화부터 요즘 힙한 러닝크루, 카버보드, 패들보트, 스킴보드, 프리다이빙까지 ‘세상에 모르고 살았던 여러 가지 재미와 낭만’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그 문화에 푹 빠져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소개차원이라 그럴까. 1차 타깃일 수 있는 서핑에 이미 빠져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초급용이고, 2017년 즈음 ‘욜로’의 낭만을 소개하던 프로그램들처럼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정도의 가치가 있을 뿐 로망을 자극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되기는 부족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11일부터 전파를 탄 MBN <바다가 들린다>는 전문 서퍼이자 서핑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WSB FARM’의 한동훈, 16년차 서퍼 YB밴드의 김진원, 캠핑부터 서핑까지 푹 빠져 사는 이천희와 정태우 등등 진짜 그 문화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금 더 최신의 감성과 문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호주나 미국서부 해안의 서퍼들처럼 올드 캠핑카를 타고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움직이며 파도를 쫓는 밴라이프를 결합했다. 배우 정태우와 한동훈이 출연한 국내 최초 서핑 웹예능 <태우로와>를 방송으로 확장한 예능으로, 이미 <태우로와>에서 함께한 바 있는 이천희와 김진원이 합류해 이 문화의 매력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또한, 서핑 촬영 전문팀이 함께하니 보다 역동적이고 멋진 화면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서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별다른 볼거리 없는 수수한 시골 해변도 최고의 스팟이 된다. 머무르는 곳이 곧 캠프가 되는 자유로운 문화, 기다림과 느림의 스포츠지만 정서적 충만함만큼은 남다른 서핑의 매력을 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방송으로 확장하면서 문화 소개와 체험, 예능적 장치를 둘렀다. 예능 선수인 장도연, 노홍철이 전면에 서서 분위기를 띄우며 서핑의 매력을 알아가는 성장캐릭터를 맡고, 김요한과 한소희는 비주얼을 담당한다. 깜짝 손님으로 윤도현이 출연하기도 한다. 덕분에 볼거리는 풍부해졌지만, 그만큼 일반적인 예능의 모습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윤식당>이나 <삼시세끼> 같이 보편적인 소재 한 가지만 벼려서 보여주는 관찰예능과 달리 특정 문화 소개와 체험, 예능 문법이 혼재되다보니 마니악한 소재만 더욱 부각되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멀어 보인다.



2015년에 비해 서핑 인구는 분명히 늘었다. 그러나 이를 소재로 한 예능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힙스터 문화 특유의 마이너함 때문인지, 기다림의 미학, 혼자 하는 스포츠의 묘미를 예능으로 변환하기가 어려운 탓인지, 인생과의 비교가 와 닿지 않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캠핑 예능이나 서핑 예능이나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몰두하고, 자랑하듯 경력을 뽐내다보면 겉핥기식 대리체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체험보다는 경험이 필요하고, 소개보다는 삶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서 보여주기보다 출연자들이 얼마나 그 문화를 즐기고 사랑하는지 진정성을 마련하는 길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낚시가 예능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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