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 체질’이 30대 남녀를 그리는 방식, 무엇이 문제일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찬반이 맞부딪히는 코너를 표방하며 시작했지만, [TV삼분지계]가 내부적으로 찬반이 이렇게 치열하게 갈리는 건 오랜만이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이야기다. 이병헌 감독이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2016)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드라마인 <멜로가 체질>은, 시작부터 ‘여성 판 <스물>’을 표방하며 30대에 접어든 여성들의 일과 사랑,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를 선보일 것이라 선언했다.

그런데 과연 결과 또한 그러할까? <멜로가 체질>을 바라보는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의 온도는 제각각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사랑보다 일이, 일보다 자신이 더 소중한 여자들”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존감 있는 사람들”의 캐릭터 조성을 극찬한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인물들의 대사가 쉬지 않고 합을 겨루는 스펙터클”을 칭찬하면서도 “여성 서사를 만들기에는 감독이 아직 남성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한다. 김선영 평론가는 “표면적 설정은 ‘칙릿’에 더 가까우면서도, 정작 여성들의 고민과 유대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는 태도”를 지적하며 “여성 문제를 얼마나 둔감하게 대하고 있는지” 한탄한다. 세 평론가의 시선 중 나는 어느 쪽에 조금 더 공감이 가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 젓가락 가는 곳마다 만족스러운 한정식 차림

서른 살, 세 여자 친구의 삶과 사랑이 담긴 JTBC <멜로가 체질>. 제목에 ‘멜로’를 앞세웠지만 사랑보다 일이, 일보다 자신이 더 소중한 여자들이어서 좋다.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세 여성들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수준. 느린 걸음이긴 해도 세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성 중심이라고는 하나 남성 캐릭터도 제대로 챙기는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 주인공 외의 인물들을 하찮이 소비하지 않아서 더 좋다.



그리고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존감 있는 사람들. 소민의 매니저 민준(김명준)은 매니지먼트의 정석이다. 매니저들이 등장하는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 정도 스킬은 본 적이 없다. 책임감은 기본, 연기자를 위해 당당하나 무례하지 않게 어필할 줄 알고, 적절히 기를 죽였다 살렸다 해가며 살뜰히 보필한다. 한주(한지은)와 재훈(공명)이 다니는 드라마 제작사 ‘흥미유발 엔터’ 대표 소진(김영아)도 눈여겨 볼 인물이다. 재훈의 애인 하윤(미람)의 난입으로 흐트러진 사무실을 서둘러 정리하며 이해된다며, 그냥 이해가 된다며, 이건 없던 일이라고 못 박던 소진. 쌀쌀맞은 외모와는 달리 따뜻하고 유머가 있는 인물이지 뭔가. 진주(천우희)가 쓴 극본에 범수(안재홍)의 연출, 소민이 주인공인 ‘흥미유발 엔터’ 제작의 드라마가 곧 탄생하지 싶은데 드라마 속의 일이지만 기대가 된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 제작과 편성 과정이 적나라하게 현실적이어서 씁쓸했다. 결정권을 가진 이들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우매함에 시청자는 가슴이나 칠 밖에. <검블유>와 다른 점은 민홍주(권해효) 같은 어른다운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기야 민 대표 같은 인물이 어디 흔하겠는가. 드라마 국장 인종(정승길)과 스타 작가 혜정(백지원)의 티격태격도 흥미롭고 은정(전여빈)이 언제까지 홍대(한준우)의 환영과 마주할 것인지, 은정의 동생 효봉(윤지온)과 애인 문수(전신환)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푸짐한 한정식 상차림. 젓가락 가는 곳마다 다 만족할 맛이랄까?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여성 판 <스물>’이라는 말의 함정

이병헌 감독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멜로가 체질>을 ‘여성 판 <스물>’이라 부른다. 그 말처럼 <멜로가 체질>을 잘 요약하는 표현도 없지 싶은데, <멜로가 체질>은 영화 <스물>의 성취뿐만 아니라 <스물>의 한계까지 고스란히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스물>이 그렇듯 <멜로가 체질>은 인물들의 대사가 쉬지 않고 합을 겨루는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엄마 나 여기서 몇날 며칠 퍼질러 잘 거거든? 혹시 잔소리할 거 있으면 여기 음성사서함에 녹음해 놔. 한번에 들을게.”, “밥 먹고 자. 길어질 텐데.” 같은 대화가 쉴 틈 없이 펼쳐지는 광경은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홀린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조금은 비현실적인 설정들이나 못나고 찌질한 캐릭터들을 은근슬쩍 보는 이의 품 안에 찔러 넣는 이병헌 감독의 솜씨는 어떤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감독이 찔러 넣은 내용들을 꼼꼼히 보다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분명 주인공은 세 여성인데, 자꾸 여성의 아픔이나 상처, 실수 등을 묵묵히 감싸 안아주는 남성 캐릭터의 멋짐이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이다. 한주(한지은)가 마음 쓰지 않게 자신의 연애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혼자 아픔을 달래는 재훈(공명)이나, 제멋대로인 배우 소민(이주빈)을 지켜주는 매니저 민준(김명준), 사망해 환영이 된 상태에서도 은정(전여빈)의 이성의 목소리를 책임져주는 홍대(한준우)와, 누나 은정이 홍대의 환영을 보는 걸 걱정하고 있지만 짐짓 모른 척해주는 동생 효봉(윤지온)까지.

<스물>에선 남자 주인공들의 카운터파트로 나오는 여자들도 죄다 어딘가 남자 주인공들처럼 미숙하거나 뒤틀려 있는 인간이었던 반면, <멜로가 체질>에서 남자들은 대체로 더 주인공들보다 성숙해서 주인공들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스물> 때에도 그랬지만, 감독이 관심과 이해도를 가지고 애정을 주며 묘사하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남성이고, 그 맞은 편에 놓인 여성에 대한 감독의 이해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여성 서사를 만들기에는 감독이 아직 남성을 너무 사랑한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여성들의 고민은 어디에

방영 전 캐릭터 포스터의 ‘된장녀’ 표현 논란을 제외하고서라도, <멜로가 체질>은 당황스러울 만큼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똑같이 30대 여성 세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와 비교하면 그 한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두 작품 모두 2000년대 전후 유행한 여성 성장로맨스 장르 ‘칙릿’의 구도를 빌려왔으나, 여성들의 경쟁과 성취에 초점을 맞추고 로맨스를 후면에 배치해 이 시대 여성들의 변화한 의식을 반영한 <검블유>와 다르게, <멜로가 체질>은 ‘사랑 타령’을 전면에 내세운다. 단순히 ‘멜로’를 표방한 장르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30대 여성 친구들에 ‘말 잘 통하는 게이’ 캐릭터를 더한 인물 배치 등 표면적 설정은 ‘칙릿’에 더 가까우면서도, 정작 여성들의 고민과 유대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는 태도에서 비롯된 문제다.



<멜로가 체질>의 세 주인공인 임진주(천우희), 이은정(전여빈), 황한주(한지은)는 한집에서 가족처럼 살만큼 끈끈한 사이로 소개되지만, 드라마는 이들의 지난 연애사를 공들여 보여주는 동안에도 이들 관계의 기원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각각의 서사도 연애사를 빼면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주의 서사는 일과 사랑이 분리되지 않은 채 전개되고, 은정의 서사에는 아예 과거의 애인이 환영처럼 함께 따라붙어 다닌다. 싱글맘 한주의 서사는 더욱 심각하다. 육아와 생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여성 차별 현실이 아니라 사랑의 실패로 인한 상처로 묘사되는 한주의 이야기는 이 작품이 여성 문제를 얼마나 둔감하게 대하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5회, 진주의 드라마 편성 관련 회의에서 중년 남성들이 “여자들 이야기에 너무 치중된 것 아니냐”며 문제 제기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의 부실한 여성 서사에 대한 자기변명인가 싶을 정도로, <멜로가 체질>이 요즘 여성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영상·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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