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곡2’, 임성한 작가는 어떻게 절필 선언 꺾고 부활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죽어도 죽지 않고 떠도는 영혼.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2>에서 김동미(김보연)의 남편이었던 신기림(노주현)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도시를 배회한다. 자신을 죽도록 내버려뒀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 신유신(이태곤)을 연애대상처럼 바라보며 욕망을 드러내는 김동미를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치 김동미를 해코지하려는 듯 보이고 가사도우미가 섬뜩함에 공포를 느끼지만 정작 김동미는 태연하다. 그는 대놓고 귀신이 된 신기림에게 얘기를 건네기도 한다.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흥미로운 건 김동미 주변을 배회하던 귀신이 된 신기림이 엉뚱한 짓을 벌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수영장에 출몰해 비키니를 입은 여성을 음흉한 시선으로 훑어보고, 물속에서 수영하는 여성을 소름끼치게 만든다. 또 길거리 버스킹 현장에서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귀신이기 때문에 자유를 얻은 듯한 모습. 신기림의 시선은 <결혼작사 이혼작곡>이라는 드라마에 담겨진 임성한 작가의 시선처럼 보인다.

죽음 저편으로 넘어간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것. 거기에서는 결혼과 불륜, 이혼 심지어 죽음도 뭐가 옳고 그른 것이라는 관점 자체가 희석된다. 그저 그 때 그 때의 욕망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고 그 결과는 드라마들이 늘 보여주는 것처럼 사필귀정만이 아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일이 된다. 임성한 작가는 마치 죽은 후 제 욕망에 자유롭게 떠도는 신기림처럼 절필 선언 이후 피비(Phoebe)라는 필명으로 부활한 것처럼 보인다.

시즌1에서 중반까지 남편들의 불륜으로 인해 파탄 나는 아내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던 드라마가 중반 이후 남편들이 어떻게 불륜에 빠지게 됐는가를 그렸던 건 시청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임성한 작가의 의도는 남편들의 ‘내로남불’을 폭로하려던 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보다는 남편들 역시 어쩌다 보니 선을 넘게 됐고 그들의 불륜 또한 그 순간들만큼은 사랑이었다는 걸 그렸다. 그것이 ‘내로남불’이라 보인 건, 시청자들의 윤리적 관점이 만들어낸 것일 뿐, 임성한 작가의 관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륜에 아이까지 갖게 된 판사현(성훈)과 내연녀 송원(이민영)은 마치 엇나간 결혼생활로부터 탈출해 드디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낸 이들의 이야기처럼 그려진다. 물론 여기에는 가부장적 시선이 드리워져 있다. 결혼을 했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아내나 며느리를 ‘잘못’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갖고 판사현의 밥을 챙겨주는 송원은 내연녀지만 ‘조강지처’처럼 그려진다.

판사현의 아내 부혜령(이가령)은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고는 선선히 이혼을 해주겠다고 하고 대신 거액의 위자료를 챙긴다. 마치 쿨한 여성으로 부혜령을 그리는 듯 했지만 그는 이혼 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이혼 당했고, 남편이 내연녀에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흘려 동정표를 얻어갔다. 대신 판사현은 신상이 털리며 ‘죽일 놈’이 됐다. 부혜령의 입장이라면 이런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보복심리이고 자기방어로 볼 수 있지만 드라마는 이 인물을 이기적인 악녀의 모습으로 그린다. 결과적으로 불륜을 저질렀지만 판사현과 송원이 잘 되길 바라는 시선이 만들어진다.

반면 신유신과 사피영(박주미) 그리고 이시은(전수경)과 박해륜(전노민)은, 그 불륜의 결과가 판사현·부혜령과는 사뭇 다르다. 신유신은 갈수록 밑바닥을 보이고, 사피영과 서반(문성호)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적반하장격으로 “자신이 속았다”며 딸의 양육권을 요구한다. 이시은과 이혼해 남가빈(임혜영)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박해륜은, 남가빈의 옛 남자친구인 서동마(부배)의 등장으로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에 균열이 생겨난다. 시청자들은 이들 남편들이 처절한 후회를 하기를 바란다. 판사현과 부혜령의 관계에서 기대하는 것과 너무 다른 관점이 투영되어 있다.

이처럼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결혼과 불륜, 이혼의 이야기가 어떤 결과로 튈지 예측 불가다. 불륜이 모두 사필귀정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행복의 결말을 낼 수도 있고 때론 불행의 결말에 이를 수도 있다고 임성한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런 시각은 사실상 이 드라마 속에서 작가가 하고픈 말을 전하는 메신저처럼 보이는 서반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이혼을 선택한 사피영에게 그는 말한다. “뭐가 옳았는지는 나중에 돼봐야 알고요. 참아서 잘 된 경우도 있고 안 참아서 잘 된 경우도 있고요.” 의지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친구분들은 어떠냐는 질문에 서반은 3분의1은 이혼했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답한다. “성격차이도 있고 양쪽 말 들어봐야겠지만 상대방이 못돼서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는 친구도 있고 다양해요.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불륜으로 이혼한 경우에 있어서도 서반은 “한 명은 잘 살고 한 녀석은 4혼을 하고서 정착했다”는 말로 그 결과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한다. 그러면서 한 번 결혼도 어려운데 네 번을 한 것이 부럽냐는 사피영의 질문에 서반은 “하나도 안 부럽다”며 복잡한 세상에 “인생이라도 심플하게” 살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이처럼 결혼과 불륜 그리고 이혼의 변주곡을 다양한 양태로 그려낸다. 거기에 어떤 윤리적 시선이나 비판적 관점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시선은 죽음 후에 비로소 자유로워진 듯 보이는 저 떠도는 신기림처럼, 절필 선언 이후 피비라는 필명으로 부활해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내려다보는 시선’에 의해 가능해졌다.

어떤 지향점이나 방향성 없이 그저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서 다소 운명적인 관점을 담은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그래서 그 결과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윤리나 가치관 같은 방향성이 없는 이야기 속에 담겨진 허무에 가까운 운명론적 세계관에 대한 불편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결국 신기림 같은 초현실적 존재의 시선을 빙자한 임성한 작가의 유체이탈식 자의적 세계일 수 있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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