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함도 한계도 모두 딱 옆집 총각 같은 ‘유 레이즈 미 업’
섹시코미디의 예상치 못한 선량함과 어쩔 수 없는 한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 웨이브 오리지널 <유 레이즈 미 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껏 웨이브 오리지널로 소개된 드라마들의 대부분은 <꼰대인턴>이나 <조선로코 녹두전>, <앨리스>, <거짓말의 거짓말>처럼 지상파/종편 채널에서 동시 공개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품들을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가 아니라 MBC, KBS, SBS, 채널A 드라마로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웨이브가 ‘웨이브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첫 작품인 <유 레이즈 미 업>이야말로 본격적인 ‘웨이브 오리지널’ 전략의 포문을 연 작품이라 하겠다.

지난달 31일 처음 공개된 이후, <유 레이즈 미 업>은 입소문을 타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중이다. 2030 남성의 사회적 좌절과 고립으로 인한 자존감 하락을 발기부전에 은유한 이 작품은, 섹시 코미디라는 장르적 한계를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돌파했다. 6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고개 숙인 청년 도용식 역의 윤시윤과, 용식을 근사한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다가 진료실에서 발기부전 환자로 마주하게 된 비뇨의학과 전문의 이루다 역의 안희연의 호흡은 썩 안정적이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은 <유 레이즈 미 업>을 어떻게 보았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파격적인 설정과 실제 작품의 결을 비교하며 “들고 날뛰는 악역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요즘 보기 드문 건강한 드라마”라고 평했다. 남지우 평론가는 작품이 그간 금지되었던 성 담론을 나름대로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온·오프라인 곳곳에서 드러나는 2030 남성들의 정서”를 간파해 겨냥한 작품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우울과 무기력, 자존감 저하, 강박과 트라우마를 혼자 앓는 대신 함께 이겨내기 위해, 마음에서 해법을 찾으라 조언하는 드라마라는 평이다.

두 평론가가 장점에 주목한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한계를 짚었다. 이승한 평론가는 작품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으나, 2030 남성만이 지닌 우울이 아니라 세대 전체가 공히 경험하는 우울을 다루면서도 끝내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평했다.

◆ 악역 없는 천연기념물 같은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사실 출연자 면면을 보고 기대가 많았다. 길해연, 서정연, 최대훈 등, 늘 적재적소에서 자신만의 색으로 윤기를 더해온 연기자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단한 연기자들을 이토록 사소하게 소비해도 되는 것인가 의아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비뇨기과 간호사 역할의 서정연 씨의 경우 대사 몇 마디가 변변히 없었는가 하면 길해연 씨가 맡은 주인공 용식(윤시윤)이 어머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인물이었으니까. 그나마 주인공들과 계속 얽히는 장 원장 역의 최대훈 씨는 분량이 좀 됐지만. 8부씩이나 되거늘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좀 더 들어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회가 가까워 오자 차차 생각이 달라졌다. 비록 비중은 적어 보이나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뒤를 받쳐줬기에 안정감이 있었던 것이다. 연기에 있어 완급 조절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천연기념물 같다. 요즘 대다수의 드라마에서 들고 날뛰는 악역이 단 한 사람도 없지 않나. 굳이 악역을 꼽자면 용식이 어머니의 심중을 어지럽히는 친구들 정도? 주인공 도용식, 이루다(안희연)와 삼각관계에 놓인 도지혁(박기웅)이 루다의 의중을 이해하고 선선히 집착을 내려놓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첫사랑 남녀가 비뇨기과 의사와 환자로 만난다는 파격 설정으로 화제몰이를 했다는 점, 또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심각할 비뇨기과 질환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뤘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건강한 드라마라는 점에서는 토를 달기 어렵지 싶다. KBS2 <흑기사>, tvN <빈센조>에 이어 이번 ‘꽃보살’ 역할까지, Mnet <댄싱9 시즌3> 우승자 김설진 씨의 성장을 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 중 하나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고추가 아닌 마음에서 찾는 문제의 해법

두 해 전 봄, 외국을 여행하던 중 넷플릭스에서 걸어놓은 옥외광고판을 보았다. 열띠게 홍보 중인 새 드라마의 제목은 <Sex Education>. 성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영국 공립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란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앱에 접속해 포스터에서 본 제목을 검색했다. 하지만 뜨지 않는 결과, 한국 공개는 아직인가? 어리둥절하던 중, 조금 어색하고 다소 유치해 보이는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내가 찾던 드라마의 한국어 타이틀이었다. 성(性)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섹스’는 ‘비밀’이 되어 저 자신을 감추고, ‘성교육’은 ‘비밀상담’이 되어 공적 책임이 아닌 사적 담화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춰야만 했던 것이다.

국내 미디어 산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극도의 성적 보수성을 딛고 온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은 탄생만으로도 방송사의 ‘사건’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주연배우 윤시윤이 자신의 작품을 두고 “자존감으로 고민하든 누구든”, 즉 ‘아이들과도 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언급한 것은 ‘사건 발생’을 선포하는 ‘선언’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실제로 <유 레이즈 미 업>은 15세 관람가, 이는 고등학교 1학년생과 그 또래부턴 누구나 시청의 권한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드라마가 남성의 성욕, 그리고 발기부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 회차의 시각연출이나 대사쓰임을 보면 성적인 묘사를 크게 자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윤시윤의 ‘시청 독려’가 타당할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배제되었던 미성년 시청 층을 ‘성’을 둘러싼 텔레비전 공론장으로 초대하는 목소리였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옳은 일이다. 배우의 기대에 부응한 걸까, 드라마가 미성년 시청자들에 선사할 ‘Sex Education’의 내용은 나쁘지 않다. 남자도 분홍색을 좋아할 수 있다고, 봉제 인형을 만드는 건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주니까. 언제 올지 모를 성기능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판타지스럽지 않고 현실적인” 포르노를 골라 시청할 것을 알려주니까.

하지만 <유 레이즈 미 업>이 주로 겨냥한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다. 길 위 모든 이들을 등급으로 나누고 평가하는 그 끝에, “나는 루저”라 결론짓는 이들. 세상 모두가 자신을 ‘키작남’, ‘오타쿠’, ‘찐따’에, ‘소추’, ‘발기부전’, 심지어 ‘잠재적 범죄자’라고 부를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 <유 레이즈 미 업>은 바로 지금 2021년, 온·오프라인 곳곳에서 드러나는 2030 남성들의 정서 일부를 완벽하게 간파해 빠르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지목된 우울과 무기력, 취업난과 경쟁, 자존감 저하, 그리고 강박증과 트라우마를 주된 키워드로 삼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은 고추가 아닌 마음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혼자 외롭게 아플 게 아니라 함께 앓고 함께 일어서기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 선의로 가는 울퉁불퉁한 먼 길

<유 레이즈 미 업>의 결말은 놀라울 만큼 깔끔하다. 용식(윤시윤)은 목표하던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오늘을 긍정하는 법을 익힌다. 지인의 회사에 취직해 받는 월급은 간당간당하고, 갚아야 할 카드빚은 많으며, 여전히 반지하 셋방살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여전히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고, 제 마음을 알아봐 주는 연인 루다(안희연)가 있으며, 조금씩 쌓아가는 일상의 행복이 있으니까. <유 레이즈 미 업>은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남들과 나의 성취를 비교해가며 등급을 매기고 우울해하는 청춘들에게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좀 느려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깔끔하고 선량한 결말로 가는 길은 다소 울퉁불퉁하다. 남들처럼 잘 풀리지 않는 삶을 비관하며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청춘이라는 용식의 설정은 지금의 2030 세대가 성별을 막론하고 공히 공유하는 슬픔이다. 그럼에도 작품은 용식의 슬픔과 고통을 설명해야 할 때면 그 계기로 여성을 소환한다. 용식의 발기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용식의 전 여자친구인 희진(이노아)이 그를 떠난 이후부터였고, 팬시상품점에서 마주친 여고생들은 핑크색에 애착을 지닌 용식을 비웃고 수근거린다. 용식을 납치범으로 오인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도, 겁에 질린 용식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을 때 기자들에게 용식이 평소에도 수상했노라 이야기하는 것도 여성이다.

용식은 트랜스여성인 제니퍼(김설진)도 편견없이 대하며 우정을 쌓는 선량한 청년인데, 온 세상이 그를 오해하고 비웃고 밀쳐낸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좋아해왔던 그의 첫사랑이자 사회적 성공과 재력으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존재인 루다다. 상처의 근원도, 치유의 계기도 여성으로부터 찾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돌보고 자신감을 치유한 보상처럼, 용식은 루다를 쟁취하는데 성공한다.

<유 레이즈 미 업>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이 작품은 코너에 몰린 청년들을 위로하려는 선의와 더 다양한 형태의 삶을 폭넓게 긍정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 눈에 보이는 성취와 소유가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 비수술 트랜스여성 제니퍼처럼 극복해야 할 편견과 한계가 용식보다 더 많을 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키고도 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대신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로만 소비했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한계다. 부디 이번 작품의 성공이, 더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가 존중 받는 차기작을 만들어 낼 동력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wavve.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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