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질문, 우리는 누군가의 응원이 되고 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미안해 희도야. 그동안 메일 안 읽었던 거.”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경기를 마치고 고유림(보나)은 나희도(김태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빚 때문에 러시아로 귀화한 후 PC통신으로 글을 남겨도 또 메일을 보내도 묵묵부답이었던 고유림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나치게 한러 대결 구도로 나희도와 고유림을 세우는 기자들 때문에 말 한 마디조차 왜곡되어 기사로 나가버리는 상황이었다. “나희도 선수랑 친한 사이여서 경쟁구도 만들 때 좀 불쾌할 때가 있어요. 희도는 훌륭한 선수거든요. 그치만 선수가 경기에 임할 때만큼은 자신이 최고라고 믿어야 되요. 갠 아무 것도 아니다. 상대도 안된다. 이렇게 최면을 걸죠.” 이렇게 말한 대목이 ‘귀화 고유림, “나희도, 내 상대 안돼 비교 불쾌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나가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유림의 그 사과에 나희도는 그럴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알아. 말 안 해도. 내가 겪었던 거 너도 겪었겠지. 우리가,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그건 우리만 아는 거잖아.” 나희도와 고유림은 한국과 러시아를 각각 대표하는 펜싱선수로서 모두가 대결구도를 만들고 그래서 상대를 ‘매국노’로까지 매도하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했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나희도는 양찬미(김혜은) 코치에게 “이겨야 한다”며 찾아온 고유림을 만나지 않았지만 고유림의 준결승전을 응원했다. ‘지지마 고유림. 질 거면 올라와서 내 손에 져.’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의 세계는 우리네 경쟁적인 현실을 닮았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그리고 비정한 현실은 이긴 자에게만 모든 걸 갖게 해준다. 이른바 ‘승자독식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 경쟁상대는 그 순간 이겨야할 상대로 만났지만 어쩌면 우리의 친구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승부는 승부이니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지만, 승패로서 모든 걸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은 폭력적인 일이다. 고유림과 나희도의 진심을 제멋대로 왜곡해 죽고 죽이는 대결구도로 세운 언론이 그렇고, 그 언론에 동조해 ‘매국노’라는 손가락질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나희도와 백이진(남주혁) 그리고 고유림과 문지웅(최현욱)의 달달하고 절절한 사랑을 담은 청춘멜로지만, 어쩐지 사랑보다 우정이 더 찐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사랑과 우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바로 ‘응원’이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래서 이 대사는 아마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백이진이 뉴욕 특파원이 되어 911 이후 나희도와 멀리 떨어져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고유림이 가정형편 때문에 러시아에 귀화해 서로 다른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 서로 물고 뜯는 라이벌 관계로 등 떠밀려 대결무대에 서는 상황이 되어도 이들은 서로를 응원한다. 물론 그 응원은 편을 나누고 내 편만이 최고인 그런 의미를 담은 응원이 아니다. 그가 가는 길을 바라봐주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더라도 지지해주고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사랑이고 우정이다.

함께 즐겁게 뛰놀았던 터널 속에서 누군가 ‘고유림 매국노’라고 커다랗게 글씨를 새겨놓은 걸 보며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며 자책하는 백이진을 나희도는 안아주고 위로해준다. 그건 백이진 때문이 아니고 그가 하는 일이라는 걸 분명히 해준다. 그러면서 백이진에게 나희도는 말한다. “나는 니 거 다 나눠가질 거야. 슬픔, 기쁨, 행복, 좌절 다. 그러니까 힘들다고 숨지 말고 반드시 내 몫을 남겨놔. 니가 기대지 않으면 나 외로워.”

세대로 나누고 성별로 나누어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려 싸우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어도 상대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일은 요원한 걸까. 권도은 작가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희도와 고유림이 힘든 현실 앞에서도 PC통신으로 만나 서로에게 건넨 작은 위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있어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겪었던 거 너도 겪었겠지.” 나희도가 고유림에게 건네는 말처럼 비록 눈앞에서는 경쟁상대로 만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똑같이 겪었던 것들로 여전히 상대를 응원할 수 있고 상대와 연대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지할 수 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엇갈리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모두 똑같이 겪고 있는 삶이라는데 공감함으로써.

그래서 마지막 한 회가 남았고, 거기서 나희도와 백이진이 어떤 엔딩을 결과로 내보일 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서로에게 여전히 그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살아가고 있는가가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가 아니, 본인은 그런 사람이었는가가 중요하다. 당신은 누군가의 응원이 되고 있는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이 질문은 그래서 이 작품에 청춘멜로의 달달함 그 이상의,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울림과 여운을 더해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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