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이연희와 문소리가 보여주는 직장 내 세대 소통의 문제

[엔터미디어=정덕현] 과연 직장 내 서로 다른 세대들은 소통하고 있을까.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레이스>를 보다보면 문득 이 드라마가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하필이면 ‘홍보’라는 기업에서 대내, 대외 소통(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는 부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 드라마의 갈등들이 생겨나는 이유가 직장 내 기성세대 꼰대들과 젊은 세대들 간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대행사에서 일하다 대기업 블라인드 채용에 합격한 윤조(이연희)가 겪는 상황들은 큰 기업들일수록 사내 소통이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보고 체계를 중시하는 대기업들은 그 체계라는 명목 하에 상하 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상사와 꼰대들을 만들어낸다. 윤조가 대행사 시절 제안서를 썼던 코스메틱 브랜드 셀틱스의 디지털 홍보를 담당하게 되고, 이 제품이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BI(Brand Identity) 전면 개편을 제안하자 마케팅실 정수환 실장(김종태)이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

다짜고짜 홍보3팀을 찾아와 BI 개편안을 쓴 박윤조가 누구냐고 묻고, 마케팅도 모르는 홍보 운운하며 홍보팀 전체를 비하하는 정수환 실장은 사실상 이 셀틱스의 부진의 책임이 본인이 선택한 마케팅 방식의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커리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제기를 한 이가 “일개 대리”라며 분노하고 그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적당히 책임자를 세운 후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PR전문가로 세용에 스카우트 되어 온 구이정(문소리)은 생각이 다르다. 박윤조가 내놓은 개편안을 이사회에서 보고한다. 부사장편에 선 김연수 전무(전진기)가 옥상으로 그를 불러 막말까지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준비하고 론칭한 상품이 망했다. 그러면 기획팀이든 영업팀이든 누구 한 사람은 그 책임을 지고 이 회사를 나가야 된다. 그런 문화라면 어느 직원이 대가리에 총 맞았다고 그 상품을 맡겠습니까? 어느 직원이 그 상품에 대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겠냐고요?”

<레이스>가 이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는 건 대기업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다. 기업이 비대해질수록 팀들도 많아지고 팀 간 경쟁 때문에 협업은커녕 팀 이기주의만 커져간다. 여기에 이른바 임원들이라는 사람들은 자리보전 혹은 권력을 쥐기 위한 사내 정치만 하려한다. 제품의 성공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뭉쳐도 될까 말까한 상황인데, 그것보다는 기업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제품의 실패를 본보기처럼 바라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결국 소통의 단절은 대기업이 망가지는 중대한 원인 중 하나다.

정반대로 <레이스>는 홍보대행사 얼스 커뮤니케이션의 소통 문화를 보여준다. 한 직원이 일은 많고 보수는 적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자, 서동훈 대표(정윤호)는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탄력적 인센티브제를 생각해낸다. 작은 대행사의 경우 대기업과 달리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이처럼 상하 구분 없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것이 작은 회사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반면에 대행사는 대기업이 자신들의 선택으로 망친 프로젝트를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것처럼 떠안아야 하는 일이 숙명처럼 되어있다. 서동훈 대표는 세용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이 얼스 커뮤니케이션 책임이라 몰아붙이는 세용의 진병만(하성광) 홍보실장 앞에 뭐라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잘못했다”는 말만 한다. 즉 작은 홍보대행사의 경우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원활하지만, 갑을관계가 되는 외부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대기업의 제품이나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뭐라 하지 못하고, 저들의 선택으로 결국 실패한 책임도 질책당하는 그런 입장이라는 것.

<레이스>는 대기업과 대행사에서 일하며 젊은 세대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충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집중하는 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물론 지나치게 개인화된 젊은 세대들의 문제가 <레이스> 시작과 함께 박윤조가 인턴과 부딪치는 에피소드를 통해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주로 꼰대처럼 행동하는 기성세대들로부터 비롯한다. 대기업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싶지만, 이런 기성세대들 때문에 아예 이를 포기한다.

<레이스>에서 이러한 소통 문제에 있어 색다른 행보를 보이는 두 인물이 바로 박윤조와 구이정이다. 박윤조가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면 구이정은 기성세대지만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을 대변하고 있다. 박윤조가 어떤 상사의 막말과 압력에도 똑 부러지게 할 말은 하는 젊은 세대라면, 구이정은 부하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이야말로 회사를 지탱하는 동량이라는 자세로 존중하는 기성세대다. 이들이 보여주는 세대를 넘는 소통과 직장 내 꼰대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흐뭇함과 짜릿함이 느껴지는 건 그것이 이 작품이 말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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