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 작가 “세종 이기려 전력투구했지만..” [인터뷰2]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최근 한 매체가 드라마PD·대중문화평론가 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김영현(46)·박상연(40) 작가가 꼽혔다. 김수현과 노희경 작가가 그 뒤를 이었다.

김영현 박상현 작가는 조용히 강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한 작가집단 사이에서 최고의 협업체계를 보여준다. 둘은 포지션이 잘 나눠져 있다. 원래 김영현은 ‘도전 추리특급’ ‘사랑의 스튜디오’ ‘테마게임’을 썼던 예능작가 출신이다. 김 작가는 당시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커플로 맺어지는 결과만을 보여주던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네온 막대인 ’사랑의 작대기‘로 선택하는 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아이디어로 큰 재미를 주었다. 시청자들은 어긋나는 사랑의 선택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사랑은 엇갈림이라 하지 않았던가? 또 소설로 등단한 박상연은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자이며 영화 ‘화려한 휴가’ ‘고지전’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김영현은 작품의 전체적인 얼개와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캐릭터는 박상연이 주로 맡는다. 건축으로 따지면 김영현이 기둥 등 뼈대를 만들면, 박상연이 인테리어를 채워넣는 식이다. 전체를 조망하는 김영현의 안목이 뛰어나 구조물의 뼈대는 워낙 탄탄하다. 이속에서 재기발랄한 박상연은 마음껏 대사로 실험할 수 있다. 박상연이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유명한 대사 ‘사랑하는 건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를 쓸 수 있는 것도 이런 환경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이라 해도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당대의 이슈와 화두를 가장 잘 녹여낸다. 캐릭터는 팔딱팔딱 뛰어다닐 정도로 명확하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이하 ‘뿌리’)의 원작소설도 김은 읽었지만 박은 읽지 않은 것도 협업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뿌리’는 원작과는 크게 다르다. 한글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정도만 같다.

박상연은 원작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박상연은 ‘선덕여왕’때는 3개월간 거절하다가 공동집필을 수락했는데, ‘뿌리’는 김 작가로부터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자고 했다고 한다. 한글 때문에 살인이 일어난다는 원작의 탄탄한 토대가 있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두 작가의 드라마가 ‘끝장토론’ 등 캐릭터간 토론이 유독 많듯, 대사를 쓸 때도 끊임없이 회의를 통해 소통을 해나간다.
 
두 작가는 왕(세종)과 사대부(밀본), 백성(채윤, 소이)의 논리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듯이 캐릭터를 만드는데 큰 공을 들였다. 그래서 수많은 인물들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살릴 수 있었다.



‘글자가 권력이다’는 주제로 24부를 끌고 가기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 될 것 같아 ‘문무겸비 드라마’로 하자고 결정했다. 두 작가는 적지 않은 반응이 나온 개파이는 숨겨둔 절대강자라 했다.
 
“개파이는 해양소설 ‘모비딕’에 나온, 인간을 초월할 느낌이다. 무휼은 두 손을 쓰는데 개파이는 한 손을 쓰지 않나. 나뭇가지로 사람을 죽인다. 채윤이 듣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개파이가 무휼과 대결했을 때는 무휼이 칼을 놓치고, 이방지도 당했다. 평소에는 연두랑 잘 어울린다. 비주얼은 강렬하데 순수한 이미지의 개파이를 연기할 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천추태후’에 나왔던 김성현 씨다. 연두와 노는 걸로 봐 영화 ‘아저씨’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레옹’도 있고 ‘프랑겐슈타인’도 있었다.”

밀본의 행동대장 살수 윤평(이수혁)은 초반 음성변조한 듯한 특이한 저음으로 신비감을 주었는데, 갈수록 무술 실력이 떨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윤평은 외모는 예쁘지만 암살자 이미지다. 그런데 일선에서 뛰는 사람은 실력이 너무 뛰어나면 안된다. 그러면 드라마가 끝나버린다. ‘선덕여왕’ 때 보종도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현대물에 비해 사극은 캐릭터간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한 경향이 있다. 그 많은 인물관계의 변화, 구성을 잘못하면 산으로 가버린다. 이도측과 밀본측(심종주, 막수,혜강, 이신적, 도담댁, 한가놈)이 있고 최만리, 황희, 조말생은 중립이다. 두 작가는 마지막 반전이 된 한가놈의 이야기를 더 풀어놓았어야 했다며 아숴워했다.
 
사람인 신세경을 해례로 한 것은 영화 ‘코드명제이’에서 따왔다고 했다. 뇌 속에 들어있는 메모리 확장장치를 이용해 비밀정보를 전달해주는 컨셉이다. 박 작가는 “머리에다 다운받아 어디다 옮기는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현실에 와닿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광평대군 역의 서준영과 이신적 역의 안석환 씨가 연기인생을 걸고 연기를 해주었다고 말했다. 광평대군에게 “울어라”고 지문을 쓰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연기했고, 안석환씨의 심오한 능구렁이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고 했다.

박 작가는 밀본 정기준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특히 토론을 많이 했다고 했다. 한글을 반대해보라는 난상토론이었다. “몇 가지 유의미한 논리가 나왔다. 약간 나치적인 생각이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전 국민에게 한 일이 히틀러의 말을 한 번에 들을 수 있게 라디오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한글도 괴벨스의 라디오라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이 글을 아는 세상은 어떨 것이냐 상상해보라’는 대사가 있지 않나. 이외수 작가는 돌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글에 맞아죽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고 했다. 미국국민은 자신을 위해 무기를 들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군수산업자 위한 논리도 있지 않나. 사실 정기준의 논리 개발에도 공을 많이 들였으나 심정적으로 잘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것 같다. 정기준을 통해 세종을 이기기 위해 전력투구했지만 잘 안됐던 것 같다. 세종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도 한글로 써야 했다.(웃음)”

두 작가는 세종의 스트레스를 상징하는 ‘지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먼저 똘복에게 이 말을 한 번 시켰다. 김 작가는 “처음에는 세종이 욕을 한다며 정신이 있나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맥락이 있고 한석규 씨가 소화를 잘해 전달이 잘 됐다”고 전했다. 두 작가는 이밖에도 세종의 호위무사인 무휼 조진웅씨의 폼샘폼사 연기도 좋았다고 했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전성환 기자,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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