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 싸울 의지가 있었을까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가파른 흥행곡선을 그리고 있다. ‘명품 배우’ 최민식과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범죄와의 전쟁’은 개봉 7일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부러진 화살’을 멀리 따돌리며 압도적인 수치로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연기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최민식의 출중한 연기는 물론이고 하정우, 조진웅, 마동석, 김성균, 곽도원 등 주조연을 맡은 대부분 연기자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영화에 잘 녹여냈다. 또 영화 개봉 이후 거대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는 실력파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도 놀랍다. 아울러 20년 전의 일이지만 현재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화제성을 확보하고 있는 점도 강점이다. TV조선이 이 영화에 투자했다는 문제로 시끄럽지만 당분간 ‘범죄와의 전쟁’의 독주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 영화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하자는 아니지만 1982년에서 1990년으로, 다시 2012년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배우들의 분장이나 캐릭터 설정은 문제가 있다. 영화의 결말에 앞선 최익현(최민식)과 최형배(하정우)의 재회 등 스토리에 설득력이 약한 부분도 있다. 일부 배우들의 어색한 사투리 구사도 지적되고 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실제 ‘범죄와의 전쟁’이 조직폭력배 두목들을 모조리 소탕한 성공한 정책으로 그려지고 있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시작에 앞서 ‘이 영화는 사실과 무관하다’는 자막이 나오긴 하지만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조직폭력배를 뿌리 뽑겠다’는 노태우(그는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오는 실존인물이다)가 그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전 대통령으로 미화되고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태우가 누군가.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도 ‘물태우’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만큼 강한 리더십과는 무관한 인물이 아닌가. 또 내란죄 및 군사반란죄, 부정축재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마저 박탈당한 범죄자 중의 범죄자가 아니던가. 어쩌면 이 부분은 이 영화에 TV조선이 일부 투자했다는 논란보다 더 명확히 사실관계를 짚어줄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 ‘범죄와의 전쟁’은 어땠을까. ‘범죄와의 전쟁’은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새질서 새생활 운동’에 관한 TV생중계도중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실제 민생치안을 강화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두고 나온 정책이라기보다는 집권 4년차를 앞두고 어지러운 정국과 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벤트성 정책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영화에서 일부 그린 것처럼 당시와 현재는 유사점이 많다. 대통령이자 집권여당인 민자당 총재였던 노태우는 조기 레임덕 조짐을 보이면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으로부터 노골적으로 탈당 등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동기의 진정성을 불문하고 민생치안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 정책은 단기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전쟁’ 선포 이후 공보처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2%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선포 후 일년 동안 조직폭력배 1,923명을 검거했다고 되어 있으니 대통령이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전쟁이 효과를 보긴 본 셈이다.

하지만 거물급 조직폭력배는 대부분 잠적하는 바람에 영화에서와 같이 괄목할 만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검거 실적용으로 조직원들을 잡아들이기 일쑤였고 이마저도 집행유예, 벌금형 등으로 1년 안에 50%가 풀려났다.

전체적인 치안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1월 경찰청이 내놓은 ‘10.13범죄와의 전쟁 2주년 평가서’를 보면 ‘2년간의 대범죄전쟁으로 강.절도 등 주요 5대 범죄는 감소추세에 있으나 신형범죄와 충동적인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적시돼 있다.

오히려 ‘전쟁’ 운운하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며 시민불안을 가중시켰고 실적 맞추기용 영장발부 및 인권침해 사례가 속출함에 따라 비판이 고조됐다.

결국 ‘범죄와의 전쟁’ 정책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 1992년 10월 ‘범죄와의 전쟁’ 2주년 즈음에 노태우는 결국 민자당을 탈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탈당 강요에 백기투항했다. 이벤트성 정책으로 본인의 레임덕을 조금 더 연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 것. 1992년 12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은 ‘범죄와의 전쟁’ 정책을 승계하지 않았을 뿐더러 1995년 11월 노태우를 구속시키며 범죄자로 만들었다. 아마도 실제로는 최익현도 최형배도 김판호(조진웅)도 잡아들이지 못했던 이 전쟁에서 노태우는 최고의 ‘대어’가 아니었을까.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영화 ‘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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