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2’, 과연 반일 민족주의와 팬클럽 정치가 답인가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다. 주제가 서사를 압도해서 투 머치의 연설문이 되고 말았다. 통찰과 능숙함이 돋보였던 <강철비>의 속편이라기보다는 비운의 영화 <유령>과 강박적인 괴작 <한반도>가 야합하여 낳은 속편 같다. 양우석이 강우석이 되었다는 우스개가 슬플 지경이다.

◆ 지정학적 대환장 각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좀비물인 <반도>를 보면서도 대한민국이 좀비 창궐로 권력의 무주공산이 되었는데, 주변국들이 4년 동안 내버려 둔다고? 여기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한반도인데?’라는 의문 때문에, 액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릇 재난영화는 <감기><백두산>처럼 정치 혹은 국제정치학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반도>가 썩 재미있지 않았고, 그런 의미에서 <강철비2>의 개봉이 더욱 기다려졌다. <강철비>는 문제의식과 만듦새가 매우 훌륭해서 극찬했고, DVD 코멘터리까지 참여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득한 느낌이 밀려온다.

<강철비2>는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패권 국가들이 총출동하여 지정학적 대 환장 각을 이룬다. 개봉 전 노정태는 남북이 힘을 합쳐 일본을 공격한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류의 국뽕영화가 아니겠냐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다. 그나마 영화에서 건질 것은 무모한 통일 대망론의 인식을 멀리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오히려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서에도 남한의 서명란이 없었던 것처럼, 종전협정이나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남한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는 없다는 인식을 뚜렷이 한다. 우리 민족끼리화해만 이루어내면 통일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거나, 대한민국이 북미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순진한 망상과 거리를 둔다.

그보다는 1990년대에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미국의 북한 체제인정과 북미수교가 한반도 평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고비가 될 것이며, 이를 둘러싸고 살벌한 미중간의 줄다리기가 예상된다는 냉철한 인식을 깔고 있다. <강철비2>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흑심과 북한과 미국 내부의 분열 등을 복잡하게 겹쳐 넣는다. 그 결과 동해의 북한 핵잠수함 안에서 남북미의 정상들이 감금되고, 반역의 반역이 펼쳐지는 대환장각을 펼쳐놓는다.

◆ 얄팍한 인물들과 기우뚱한 시각

어쩌면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 있었다. 하지만 강약과 완급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다. 너무 많은 주체의 욕망들을 한 쌈에 쑤셔 넣다 보니, 오히려 단순하고 반복적인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인물들은 종이 인형처럼 납작해졌다. 가령 미국의 패권을 상징하는 존재로 미국 대통령은 그저 한심하고 즉물적인 개인이 되어버렸다. 이는 (현실의 트럼프를 참작한 것이라 할지라도) 유치하고 단선적인 풀이에 불과하다.

전체 상황을 주도하는 북한의 호위총국장(곽도원)도 평면적이다. 그가 중국과의 혈맹을 지키고자 일본 극우세력의 돈을 받아가며 중국과 일본과 해상분쟁이 일어나도록 하는 복잡한 작전을 짜며, 최고 존엄을 납치하고 일본에 핵미사일을 쏘겠다는 엄청난 배짱의 소유자이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서사가 없다. ‘철우라는 이름의 동생을 사랑한다는 것 외에는 군모를 쓰고 거울을 보는 첫 등장 이후 시종 강경 군부의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이를테면 <쉬리>의 박무영(최민식)이나 <1987>의 박처장(김윤석) 같은 악역에서 느껴지는 파토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 한경재(정우성)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북미 정상회담의 중재자로서 노력하는 모습은 안쓰러운데,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안쓰럽다기보다는 이처럼 빈약한 드라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꼴이 안쓰러울 뿐이다. 영부인(염정아)과의 티격태격도 앙상하기 이를 데 없고, 잠수함 안에서의 장면들은 ‘B급 코미디풍의 짠내가 난다. (김정일 암살을 다루었던 미국 코미디영화 <인터뷰>가 연상될 지경이다.)

<강철비>의 두 철우가 만나 소소한 감정을 교류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라. 품격과 두께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가장 매력 있게 그려진 인물은 북한의 최고 존엄이다. 그는 자존감이 강하고, 판단력도 있으며 인간적인 호감도 지닌다. 여기서 북한의 최고 존엄과 남한 대통령의 모습이 감독의 워너비를 투사한 것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오려면, 남북의 지도자가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감독의 소망이 반영된 셈이다.

<강철비>가 한반도 정세에 관한 냉철한 인식과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에 기댄 해법을 담은 영화였던 반면, <강철비2>의 시각은 다시 기우뚱하다. 미국은 대통령의 천박한 인격과 부통령의 음모적인 행위로 환유되어 버린다. 중국은 북한의 친중파 군부에게 사탕발림의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한국의 대통령에게 우정 어린 충고를 하는 대사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일본에 대해서는 굉장한 악감이 투영되어 있다. 일본은 국가기구는 등장하지 않고 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막후의 극우 혐한 재단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극우 혐한 단체의 하부조직쯤으로 격하시킨 셈이다. 또한 계속 독도를 배경으로, 일본이 동해를 전쟁터 삼아 중국과 일전을 벌이면서 북한을 이용해 남한을 공격하는 계획을 세운다거나, 북한의 군부가 민족적 반감에 의해 일본의 뒤통수를 쳐서 일본을 공격한다는 일-, -북의 교전 상황으로 긴장감을 몰아간다. 북핵을 둘러싼 냉철한 국제관계를 다룬다기보다, 반일 민족주의를 영화의 기본 화력으로 삼아 관객의 관심을 촉발하려는 저급한 의도가 보이는 대목이다.

바랄 것은 북한의 자중지란과 팬클럽 정치?

잠수함 안에서 벌어지는 반역의 반역상황이라든가, 정우성이 일본을 공격하려는 빌런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장면 등은 필연적으로 영화 <유령>을 생각나게 한다. 좁은 잠수함 안에서의 반복적인 티격태격이 밀덕을 제외한 관객들에게 답답함과 지루함을 안기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유령>이 자멸을 택한 데 비해 <강철비2>는 그렇지 않으며, <유령>이 남한의 잠수함이었던 반면 <강철비2>가 북한 잠수함이라는 점이다. 즉 북한 내부의 투쟁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대목이 영화에서 가장 난감해지는 부분이다. 남한이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북미회담을 전제로 한데다, 문제의 촉발점이 북한의 쿠테타이고, 문제의 해결점도 잠수함 안에서의 역쿠테터이다. 즉 모든 중요한 사건들이 북한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남한은 단 한 명의 네고시에이터 대통령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남한의 사람들은 (성당에서 기도하는 영부인이 보여주듯이)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다. 태풍 스틸 레인이 북상하는 가운데, 모든 사건과 드라마는 동해 밑 깊숙이, 밀실 속의 밀실이라 할만한 잠수함 안에서 일어날 뿐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에필로그까지 집어넣어 일장 연설과 함께 던지는 통일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의 수신처는 묘연해진다. 남한 사람들이 선택하거나 결행할 것이 너무 적다는 것을 영화 내내 보여주고는, 그걸 왜 우리에게 묻는지 의아해지는 것이다.

영화의 장광설은 몇 줄로 요약 가능하다. 얼마 전 미국의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강(David Kang)TV 인터뷰에서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여론조사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북한이 붕괴하면 그 영토를 누가 가져가야 할까, 일본, 중국, 한국 중에서 답하시오, 라고말했다. 통일은 선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을 <강철비2>는 에필로그의 질문까지 달아가며 중언부언하는 중이다.

이처럼 영화가 서사를 통해 전달하는 것은 북한의 급변 가능성과 통일에 대한 관심촉구이겠으나, 사실 영화가 영상을 통해 알려주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네고시에이터 남한 대통령에 대한 희구와 염원이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남한 사람들이 한 일은 환상적으로 잘 생긴데다 반듯한 성품을 지닌 한경재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고, 앞으로도 남한 사람들이 할 일은 미남의 네고시에이터 대통령을 뽑고, 그를 북한으로나 가버리라고 욕하는 세력들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이는 팬클럽 정치의 정서를 뒷받침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효자동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젊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미남 대통령, 영어는 짧아도 역사관이 훌륭하고 원만한 인품에 희생정신까지 지닌 대통령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믿고 자위하기엔, 국제정치의 상황이 너무 험난하지 않은가. 반일 민족주의와 팬클럽정치가 향하는 곳이 포퓰리즘을 넘어 파시즘이라는 것을 우려하는 입장에서, 흥행하는 영화에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강철비2>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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