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문 내놓은 샘 오취리, 무엇을 잘못한 걸까
우리의 외국인 방송인들을 보는 시선, 괜찮은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내 의견을 표현하고자 했는데 선을 넘었다”, “경솔했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결국 쏟아지는 악플과 논란 속에 사과문을 내놨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사진에 가나의 장례식을 패러디한 이른바 ’관짝소년단‘을 게재한 것에 대해 샘 오취리가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프다. 흑인들 입장에선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고 쓴 것에 대한 사과문이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샘 오취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을까 싶다. 샘 오취리가 지적한 건 학생들이 패러디 사진을 위해 얼굴에 검게 칠을 해 분장을 한 부분이 이른바 흑인 비하의 일종의 코드인 ‘블랙페이스’라는 사실이었다. 흑인의 얼굴이 실제로 검은데 검게 분장한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그건 흑인비하의 의도가 없는 ‘표현’일 뿐이라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그건 ‘블랙페이스’라는 서구에서는 이미 문화적 금기가 된 흑인 비하 코드를 잘 모르거나 혹은 무시한데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많은 매체들이 샘 오취리의 지적을 마치 ‘한국인을 무지한 이들로 비판한 것’인 것처럼 오도하며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놨지만, 일부 매체들은 그것이 ‘블랙페이스’라는 금기된 코드의 문제라는 걸 꺼내놓았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코미디 공연인 ‘민스트럴쇼’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백인 진행자들이 흑인 노예 흉내를 냄으로써 큰 인기를 끌었던 사실이 “노예제의 심각성을 가리고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또 1960년대 민권 운동 이후 블랙페이스는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블랙페이스 분장을 했던 사실이 밝혀져 사과한 서구의 유명인사들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블랙페이스’는 뒤집어 보면 동양인들을 ‘옐로우’라고 표현하거나 ‘눈 찢기’로 표현할 때 우리가 느끼는 불쾌감을 통해서도 그 코드가 흑인들에게 줄 불쾌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얼굴이 노랗고 눈이 작으니 그렇게 표현한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과연 이를 공감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옐로우나 ‘눈 찢기’가 하나의 동양인 비하 코드인 것처럼 저들에게는 ‘블랙페이스’가 바로 그 코드라는 것이다.

물론 이번 논란에 의해 과거 샘 오취리가 방송에 나와 했던 ‘눈 찢기’ 표정을 지적하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그건 당연히 우리가 지적해야 될 사항이고 그 사안에 있어서 샘 오취리가 잘못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블랙페이스에 대한 샘 오취리의 지적이 부적절했다 말할 수는 없다.

최근 들어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는 외국인들이 상당수 출연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는 하지만, 방송이 종종 외국인을 소비하는 방식은 국뽕에 가까운 ‘한국 예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외국인이지만 너무나 한국인 같다고 말하는 걸 하나의 자긍심으로 여기기도 하고, 그들의 그런 모습을 통해 마치 우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뿌듯해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최근 대중문화에 있어서 한국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게 사실이지만, 진정으로 우리의 위상이 높아지려면 그만한 성숙한 다문화에 대한 자세를 갖는 게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국인처럼 말하고 행동하길 바라기만 하기 보다는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 서로의 입장을 들여다보고 적어도 상처 되는 문화적 금기들을 건드리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우리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의 입맛에 맞는 말만을 들으려 할 게 아니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샘 오취리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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