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판타집’, 정규편성 가능성 무척 높은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 사회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진데다,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일상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부의 수단이나 몸을 누이는 곳 정도로 치부되던 주거공간은 얼마 전부터 공간 심리와 취향의 영역으로 다뤄지는 게 당연해졌고, 일본에서 발발해 영미권에서 대박이 난 정리나 살림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자기계발의 실마리를 찾는 흐름도 TV로 들어왔다. 이 방면의 큰형님인 MBC <구해줘! 홈즈>는 실제 거래가를 기준으로 매물을 구하지만, 단순한 부동산 방송이 아니다. 다양한 주거 환경의 존재와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굳건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은 방송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다.

SBS2부작 파일럿 <나의 판타집>은 이런 흐름 속에 있지만, 리얼리티가 아닌 판타지에서 출발한다. 주거 공간에 제목 그대로 판타지를 투여한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진행하는 유명 건축가의 건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리빙 아키텍처프로젝트처럼 출연진이 꿈꾸는 로망을 실현해줄 집을 찾아가 직접 며칠 생활하며 살아보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제작진은 거주감을 체험하는 관찰예능이라 소개한다. SNS의 발달과 일상의 가치가 중요시됨에 따라 랜선 집들이를 비롯해 타인의 공간, 멋진 공간을 눈으로 보는 체험과 볼거리는 크게 늘었지만 직접 그 공간을 누려볼 기회는 여전히 잘 없다. 집방 콘텐츠도 대부분 메이크오버나 집 소개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직접 꿈꿔왔던 공간에 머물며 체험해본다니 <나의 판타집>은 기존 집방에서 한발 더 깊이 들어간 기획인 셈이다.

다둥이 아빠인 양동근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너른 공간과 그런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구조를 바라는 아내의 로망을 담은 집을,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이승윤은 자연인으로 알려진 본인의 캐릭터와 달리 차갑고 세련되고 웅장한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 저택과 같은 화려한 집을, 허영지는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 가득한 집의 추억을 담아낸 여유롭고, 평화로운 공간을 원했다.

이에 제작진은 매물 대신 판타집을 찾아준다. 놀라울 정도로 로망과 싱크로율이 높은 현실의 공간을 찾아내 국내에 이런 집이 있구나라는 출연진의 감탄을 자아낸다. 정말 특이한 집부터 상상도 못한 형태와 구조의 집까지 집 구경의 재미를 중심으로 건축에 담겨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지향을 어떻게 기술공학적으로, 정서적으로 구현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던 로망을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의 즐거움을 따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집 구경을 한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영감과 새로이 싹트는 로망과 같은 이른바 집방본연의 재미와 함께 관계의 미학, 삶의 태도 등을 품고 있는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 면에서 <나의 판타집>은 건축가 유현준의 말처럼 집을 알아가는 프로라기보다 사람을 알아가는 프로로 확장된다. 기본은 집방이지만 각자 욕구가 다른 판타지에서 출발하다보니 집에 투영하는 가치가 제각각이다. 그러면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육아예능, 일상 관찰예능, 힐링 토크 등등 다양하다. 말 그대로 멀티플렉스다. 꿈꾸던 로망을 미리 일찍 실행하고 현실화한 집주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지 알아가는 장치가 의외로 큰 흥미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판타집>의 가장 흥미롭고 영민한 점은 단순히 판타지를 전시하고 체험하기보다 현실 가능한 접근이란 끈을 놓지 않는 데 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일반적인 주거 형태와 다른 로망의 집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대지, 건축, 자재 가격까지 공개하고 공유한다. 그 외에도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단열, 난방, 주변 환경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에 대한 언급을 피하지 않는다.

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만드는 주요한 고리가 된다. 실제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양동근은 집주인과 동네 주민들에게 관리비와 매물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승윤은 막상 190평이나 되는 집이 주는 장엄함이나 개인 풀장이 따로 있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관리해야 할 일도 많고 집 안에서조차 오가기 힘들다는 판타지와 현실의 차이를 언급한다. 연예인 출연자의 판타지에서 출발하는 기획이다 보니 자칫 위화감이나 괴리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지만, 판타지를 현실 논리로 풀어가면서 이런 위험을 극복한다.

물론 파일럿답게 아쉬운 점도 있다.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치와 재미요소들을 꾹꾹 눌러 담다보니 정리가 안 된 맥시멀한 집을 구경하는 듯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2회 분량 안에 3군데 집을 찾아가 소개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체험도 담아야 하고, 거기에 집주인 찾기와 인문학적 메시지도 곁들여야 한다. 그러다보니 집 소개를 넘어 직접 체험하는 거주감 체크라는 기획의 핵심이 기대만큼 뚜렷하게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망과 엿보기가 있는 집방 본연의 즐거움, 시야를 트이게 하는 다양한 거주 공간이 주는 영감을 기본으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예능의 장르를 녹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의 판타집>은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꽤나 매력적인 콘텐츠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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