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 미디어 출신들이 만드는 카카오TV에 거는 기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방송가의 관심사 중 하나는 91, 플랫폼이자 채널로 새롭게 등장할 카카오TV. 카카오TV2015년부터 존재했던 서비스지만 9월부터 카카오M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담아내는 OTT 서비스 플랫폼이자 채널로 탈바꿈한다. 플랫폼 서비스로 대박행진을 이어가는 모회사와 보조를 맞춰 엄청나게 몸집을 불린 엔터테인먼트 회사 겸 콘텐츠 제작사 카카오M의 행보는 우리나라 방송계에 게임 체인저가 될 전망이다. 이미 그 파장은 방송, 엔터업계의 이직 시장에서 톡톡히 보여줬다. 번창하는 제국처럼 기존 방송가와 엔터업계의 유능한 인력과 스타, 회사들을 속속 거둬들이며 영토를 넓혔다. 그래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면면이 화려하다.

플랫폼 전쟁에 나선 카카오TV의 론칭 라인업은 <아만자>, <연애혁명> 드라마 두 편과 <찐경규>, <내 꿈은 라이언>, <카카오TV 모닝>, <페이스아이디>, 시트콤 <아름다운 남자 시벨롬> 5개 예능 콘텐츠다. 이외에도 계속 쏟아낼 예정이라고 한다. 모두 회당 20분을 넘지 않는 숏폼 콘텐츠고, 모바일 시청환경에 맞게 특정 프로그램들은 세로형 콘텐츠로 제작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새로운 플랫폼에 맞는 신선한 콘텐츠라고 홍보하는데, 프로필과 크레딧의 명단은 매우 친숙한 이름들로 채워져 있다. 이경규, 김구라, 이효리, 노홍철, 유희열 등등 출연진부터 기획과 제작 일선에 나선 서수민 PD, <SNL코리아> 작가진, <마리텔>사단 PD들은 물론 간부들까지 대부분이 그 업계에서는 레거시 미디어로 칭하며 선을 긋는 기성 방송사 출신이다. TV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드는 TV콘텐츠인 셈이다.

기존 방송 환경에서 성장하고 활약하고 있는 인력들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으면서도 질 높고 미래지향적인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점은 흥미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비즈니스 모델 차원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방송 콘텐츠는 규모, 경험, 인력풀, 대중성 측면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이며 보편적인 콘텐츠란 점이다. 아예 TV를 안 보는 세대의 층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고, TV가 더 이상 필수 가전이 아닌 시대가 이미 몇 년 전 도래했지만 어떤 기준과 수치로 따져도 TV콘텐츠는 TV로 보지 않을 뿐 여전히 가장 친숙하고 영향력이 큰 대중문화 콘텐츠다.

이는 연이은 음악 프로젝트로 중흥을 구가하고 있는 MBC <놀면 뭐하니?>를 보면 더욱 자명해진다. <놀면 뭐하니?>의 출발은 대세 플랫폼이 전환된 현실과 달라진 시청 환경에 따라가는 방송 콘텐츠 모델을 찾는 여정이었다. 1인 캐릭터가 더욱 드러나고 즉흥적인 인터넷 방송 스타일이나, 영상의 질에 대한 기준 하향을 비롯해 기존 방송 제작환경 하에서는 차마 하지 못하는, 김태호 PD니까 할 수 있는 전위적인 실험이 이어졌다.

그러다 방향을 선회해 <무한도전>의 익숙한 공식 패턴과 국민MC 유재석의 캐릭터플레이와 김태호 PD의 브랜드 파워에 집중하면서 부캐라는 무브먼트를 만들어냈다. 과거에도 <UV신드롬>, <음악의 신> 등의 페이크다큐에서 요즘 부캐라 부르는 유희가 큰 인기를 끈 적 있지만 <놀면 뭐하니?>와 유재석처럼 트렌드를 만들고 이끌어낸 적은 없었다.

<놀면 뭐하니?>유산슬로 트로트붐의 확성기가 되더니 싹쓸이1990년대를 끌어안고, 쉴 겨를 없이 환불원정대를 결성해 여성 예능 트렌드의 최전방에 나섰다. 일류 서퍼처럼 넘어가는 트렌드 파도타기가 과연 우연일까. 짧게 치고 빠지는 프로젝트성 기획과 소비자와 보다 가깝게 소통하며 제작하는 방식은 분명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겠지만, 방송 콘텐츠 형식으로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모든 기획의 출발선인 (과장하자면) 무소불위의 섭외력과 유재석의 캐릭터 플레이는 기존 방송가의 생태계에서 비롯됐다.

넘버원 예능 선수인 유재석의 구력도 큰 몫을 했다. tvN <유퀴즈>의 시청률을 보면 유재석이 부캐역할을 너무나 완벽하게 해내면서 함께 올라간다. 살짝 흔들리던 위상과 영향력은 다시금 굳건해졌다. 그런데 그의 방송 진행 스타일은 정작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편해()하는 방송인들에 더욱 천착하고, ‘지미 유는 훨씬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무려 4번이나 연달아 성공하면서 진행 스타일은 지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매번 비슷한 전개에도 새로운 흥미를 느끼고 기대와 관심이 쏟아지는 건 방송을 수동적으로 보는 걸 넘어서 부캐놀이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송도 소통과 적극적 시청을 담는 그릇이란 측면에서 아예 경쟁을 못할 수준은 아니다.

가장 늦게 케이블과 종편에 진출했던 유재석이 지금 다시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시점에서 카카오TV가 론칭한다. 그리고 그 인력은 대부분 레거시 미디어 출신이다. 겉모습뿐인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방송의 몰락과 대세 플랫폼의 변화 과정에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강박에 약간의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TV를 매개로 삼지 않는 TV콘텐츠의 본격 탄생이다. 카카오TV의 론칭을 앞두고, TV를 염두에 두지 않는 TV콘텐츠의 패러다임은 무엇일지, 과연 카카오TV는 또 다른 시대를 열어갈 것인지 무척 기대가 된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카카오M,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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