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로 시작해 집과 여성 거쳐 다시 트로트로 끝나는 2020년
2020 예능 키워드 : 트로트, 집 그리고 여성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담하기)] 2020년 대중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치고 우울했다. 사람들을 북돋고 위로해야 할 예능은 제 앞가림에 정신없어 본분을 수행하는 데 애를 먹었다. 전년도까지 해외 로케로 진행된 수많은 여행 예능과 먹방 예능은 국가 간 이동이 단절되면서 국내로 유턴하거나 휴방하거나 종영해야 했다.

여행 예능인 tvN <짠내투어>, 공연 예능 JTBC <비긴어게인>, 요리로 해외의 입맛에 도전해 보는 tvN <현지에서 먹힐까>는 국내로 유턴해 <더 짠내투어>, <비긴어게인 코리아><배달해서 먹힐까>로 생존을 위한 적응에 나섰다.

국내에서 제작되던 예능도 관객이 있거나 일반인을 대면하는 포맷이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비대면 체제로 변경을 시도해야 했다. 각종 음악 프로그램들이 무관객으로 변경됐고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은 거리에서 일반인을 무작위로 대면해 인터뷰하던 포맷을 정해진 실내에서 해당 회차 테마에 맞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국내를 여행하던 예능들도 사람들 속으로 돌아다니는 콘셉트를 자제하고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연예인들 출연자끼리만 특정 지역에 머무는 체류형으로 변모했다.

<여름방학>, <바퀴달린 집>, <바닷길 선발대>(이상 tvN)JTBC <갬성캠핑>, 디스커버리 코리아, KBS <땅만 빌리지> 등 체류 예능은 줄을 이었다. 혼란 속에 코로나 상황에 대한 적응이 필요한 것은 대중들만이 아니라 예능계도 마찬가지였다.

예능이 외적으로 코로나라는 폭풍을 겪었다면 내적으로는 트로트라는 태풍을 맞이해야 했던 한 해였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이 예능 사상 기록적인 35.7%(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마무리된 이후 트로트는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가릴 것 없이 예능의 치트키로 등장했다.

<미스터트롯> 입상자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치솟았다. <트롯신이 떴다>처럼 <미스터트롯>과 관련 없는 기존의 트로트 스타들이 등장하는 예능들도 쏟아져 나왔고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가 꽤 있었다.

하반기에는 MBCKBS까지 동시에 <트로트의 민족><트롯전국체전> 이라는 트로트 오디션을 대대적으로 선보이기까지 했다. 예능의 트로트 쏠림이 너무 심해 피로감이 든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12월 들어 시작된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 시즌2가 첫 회에 2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트로트의 위세를 재확인한 상황. 예능은 해를 넘겨서도 트로트 의존을 줄이기 힘든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트로트를 제외하면 2020년 예능은 코로나 영향 아래 집 예능이 활성화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연초에는 지상파 종편 등 주요 채널에서 MBC <구해줘 홈즈> 정도가 두드러지던 집 관련 예능이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JTBC <서울에는 우리집이 없다>, SBS <나의 판타집> 등이 연이어 선보였고 파일럿이던 <나의 판타집>은 새해 1월 정규 편성을 확정했다.

집 내부 공간을 정리하고 인테리어하는 <신박한 정리>나 세컨하우스를 다룬 <땅만 빌리지> 등도 집 예능 범주에 포함될 만한 한 프로그램이었다. 집 예능의 유행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대중들의 주요 관심사로 집이 급부상했고 부동산 가격 폭등 국면과도 맞물려 예능의 새로운 뜨거운 테마로 등극했다.

코로나와 상관 여부가 불분명한 예능의 새 트렌드도 있었다. 여성이 고정 멤버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예능이라 불릴만한 프로그램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2020년이었다. 과거 예능은 남성 출연진 위주에 여성은 조력자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 출연자가 중심이 된 예능은 주로 케이블의 뷰티, 푸드, 생활 등 여성 취향 채널 계열에서 한정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MC 유재석을 제외한 고정 출연자 전원이 여성인 tvN <식스센스>를 시작으로 tvN <나는 살아있다>, JTBC <갬성캠핑> 등 여성들이 주를 이루고 남성들이 게스트 등으로 출연하는 예능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와 더불어 예능계에 큰 이슈를 몰고 다니는 MBC <놀면 뭐하니?>에서도 여성 고정 출연자들로 진행되는 환불원정대프로젝트로 하반기 화제를 모으고 큰 인기를 누렸다. 이런 여성 예능의 대거 등장이 2021년에도 더욱 확산된다면 수십 년을 공고히 유지된 예능의 남성 중심 판도에 대변화가 생기는 사안이라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2020 예능계는 코로나로 인한 제작 환경의 위협 속에서 대중들이 웃음과 힐링을 얻을 포맷과 소재가 무엇일지를 그 어느 해보다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백신 개발 소식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코로나 종식까지는 여전히 장기전을 좀 더 치러야 하는 대중들에게 예능이 2021년에도 좀 더 많은 위로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TV조선, M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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