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K’, 가수들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는 건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담하기)] 의미와 재미 다 잡기는 모든 콘텐츠들의 꿈이다. 이뤄낸다면 그 콘텐츠는 높은 평가와 함께 큰 파급력도 갖게 된다. 당연히 흔하지 않고 어렵다. 그런데 새해 들어 시작된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이하 <아카이브K>)가 모처럼 이 경우에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아카이브K>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전설의 가수들이 펼치는 라이브 무대와 영상, 토크로 기록하는 다큐음악쇼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 삶과 함께하는 대중음악과 관련해 변변한 자료보관소 하나 없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가수들을 인터뷰해 기록하고 이들의 증언과 무대를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사회가 기록과 보존에 취약한 점은 보완할 과제로 꼽혀 왔다. 근래 들어 각계의 기록물 보관소가 늘어나고 있지만 개선돼야 할 영역은 여전히 많다.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당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기록과 보존된 과거는 달려갈 미래를 위한 추진력이 되고 언젠가 닥쳐올 위기 극복에 참고가 되기에 꼭 필요하다.

<아카이브K>207명의 증언, 15012분의 인터뷰, 54개의 무대, 121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675일간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준비한 인터뷰와 공연 영상의 기록화는 물론, 대중들의 참여도 독려해 곳곳에 숨어 있는 소중한 대중음악 관련 자료들까지 모아 제대로 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데 근간으로 삼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아카이브K>는 대중음악과 관련된 아카이브 구축에 기여하는 것으로 방송의 공적 책무를 수행하려 하고 있다. 방송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발굴된 증언과 자료는 흥미롭고 중간중간 보여주는 공연을 통해서는 감상의 즐거움이나 회상의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보니 시청률도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심야치고는 높은 3%(닐슨 코리아)대를 1, 2회에서 기록 중이다. 이처럼 의미에다 재미까지 잘 갖춰진 것은 프로그램의 좋은 의도가 가수를 포함한 대중음악 종사자들의 열정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킨 결과로도 보인다.

인터뷰 내용은 아카이브 필요성에 대한 격한 공감 덕인지 풍성하고 디테일하다. 방송 속 공연 역시 사전 준비와 무대에 공들인 느낌이 TV 밖으로까지 전달되는 듯하다. 1회 발라드 편에서 이문세와 변진섭, 임창정, 백지영, 김종국, 조성모, 성시경 등 한국 발라드의 상징적인 가수들이 한 프레임 안에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물론 들어가야 했는데 빠진 가수도 있고 공연이 전성기 때 비해 아쉬운 가수도 있었다. 하지만 함께 하는 모습이 드문 발라드 특성을 생각하면 이만큼 모인 것도 굉장히 희귀한 일인데 가수들이 방송 의도에 깊게 공감해 성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17일 방송된 1990년대 나이트 DJ와 댄스 가수 편에서도,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에는 등장한 철이와 미애의 미애처럼 모두 열정적인 참여와 증언으로 당시 댄스 뮤직 태동과 유행의 배경을 심도 있게 전달했다.

회별 테마에 있어 흔한 분류를 답습하지 않는 것도 <아카이브K>의 이후 방송분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발라드 댄스, , R&B 같은 기계적 장르 구분을 따르지 않고 나이트 DJ와 댄스 음악’, ‘이태원 문나이트’, ‘홍대앞 인디뮤직’, ‘대학로 학전소극장’, ‘동아기획 사단’, ‘케이팝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형 흑인음악의 발원, 작가주의 뮤지션 공동체, 밴드 문화 등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를 만든 음악사적 중요한 흐름들을 상징적인 대표성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장소나 집단들을 중심으로 분류했다. 마치 포켓판 백과사전 세트나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의 세부 구성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접근은 흥미로움을 잘 불러일으키고 과거에 대해 좀 더 생생한 호출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방송이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아가다 보니 아카이브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대중들의 집단 참여도 활기를 띄면서 자료 제공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모아진 자료들은 우리가요사이트를 통해 공개되고 있는데 의미가 재미를 만들고 재미가 변화를 이끄는 선한 영향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아카이브K>는 이번 준비된 7개의 주제 외에도 추가로 더 많은 방송이 가능하다. 이번에 못 다룬 대중음악사의 주요 주제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구축도 기대되지만 일요일 밤 부담 없이 좋은 공연을 보는 음악 예능이자 가요사의 주요 순간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 예능으로만 즐겨도 충분히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니 후속 방송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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