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정우성 하면 사실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스스로도 말했듯 ‘잘 생긴 얼굴’이다. 그래서 1997년 영화 <비트>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은 그는 <태양은 없다> 같은 작품에서도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과시했고 <무사>에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의 여심을 자극하는 감성 연기 같은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물론 영화 <똥개>에서처럼 자신의 그 틀을 깨려는 도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의 이미지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도 ‘좋은 놈’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멋진’ 모습으로 소비되었다. 그런 모습은 <더 킹>, <강철비1,2> 등에서도 계속 이어졌고, 아티스트 컴퍼니의 대표(지금은 김병선 대표로 바뀌었지만)가 되면서 소속배우들을 위해 나서는 사업가로서의 면모와, 난민 문제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는 의식 있는 배우로서의 이미지까지도 더해졌다.

그런 그에게 아마도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의 박삼수 기자라는 역할은 같은 소속사 배우인 배성우의 하차가 아니었다면 아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말 그대로 같은 소속사 배우가 일으킨 물의에 대한 책임감에 나서게 된 것이지만, 이 선택은 정우성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고 보인다.

배성우가 연기하는 박삼수 기자의 말투와 액션들을 마치 연구한 듯한 정우성의 대체 연기는 ‘신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너무나 다른 이미지지만, 정우성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과 며칠은 씻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박삼수 특유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기해내고 있다.

다소 과장된 리액션으로 드라마의 유쾌한 흐름을 이끌어냈던 배성우의 연기를 고스란히 입은 듯한 정우성의 바통 터치는 그래서 그간 그가 갖고 있던 ‘멋진’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의 정우성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저 ‘멋지고’ 잘 생긴 배우가 아니라 어떤 역할이든 잘 소화해내는 배우라는 상찬이 쏟아지고 있는 것.

그간 잘 볼 수 없었던 정우성의 코미디 연기는 그래서 그의 향후 연기 스펙트럼을 한층 넓혀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정우성으로서는 이러한 연기 영역의 확장만큼 좋은 성과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그가 멋진 역할을 하든, 망가지는 코미디 역할을 하든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기회를 제공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런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배우로서도 중요할 수 있는 정우성의 ‘책임감’이나 ‘의리’ 같은 인성적인 면들까지 부각시켜 주었다. 아마도 동료 배우들은 이런 정우성과 함께 하는 어떤 작업에 있어 남다른 ‘신뢰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정우성은 <날아라 개천용>에 대타로 교체 등판함으로써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어떤 위기에서도 어떤 슬기로운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배우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그의 새로운 얼굴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영화 <비트><똥개><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더킹><강철비2>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