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을 만나 더 빛난 조인성의 존재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대의 조인성은 태생이 단풍시럽처럼 멜로나 로맨스에 스르륵 스며드는 배우는 아니었다. 긴 기럭지와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수에 젖거나 달콤한 느낌을 풍기지 않았다. 무언가 정서불안의 느낌을 주는 발음과 말투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남녀구도 로맨스나 깊이 있는 로맨스에 걸림돌이었다. 로맨스와 멜로 모두 갈등과 우울을 밑바탕으로 깔지언정 불안의 서사는 아니다.

물론 조인성도 비극적인 멜로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었다.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처럼 모성애를 자극하는 불안한 부잣집 아들 캐릭터가 그의 시그니처였다. 혹은 SBS <별을 쏘다>의 스타지만 아직 제멋대로의 10대 시절이 남아 있는 성태 같은 캐릭터도 좋았다. 허우대 멀쩡해 언뜻 듬직하지만 믿음직하지는 않은 어떤 잘생긴 남동생과 그려내는 로맨스와는 합이 맞아서였다. 그 때문에 일찍이 고현정이나 전도연 같은 연상의 여배우들과 그려낸 드라마들에서 매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조인성은 이 드라마 안에서 성장하는 캐릭터가 되지는 못하다. 파멸하거나 늘 그대로거나. 그리고 이것은 로맨스는 아니지만 조인성의 필모에 중요한 코드로 남는다.

드라마에서 조인성이 풋풋한 얼굴로 보여준 캐릭터들이 30대에도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유형은 철없는 남편 스타일로 흘러가는데, 이런 느낌의 캐릭터는 이미 드라마에서 윤상현 같은 배우들이 꽉 잡고 있다. 더구나 조인성은 이런 철없는 남편으로 가기에는 화면에서 존재감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멜로와 로맨스가 약점인 조인성은 영화 쪽에서 다른 길을 모색해 왔다. 영화 <비열한 거리>의 조폭2인자 병두가 그 첫걸음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조인성은 허우대는 ‘까리’하지만 인생은 ‘까리’하지 않은 밑바닥의 남자를 어설프게 연기한다. 어설프지만, 사실 20대 남자의 폼 자체가 실상 멀리서 보면 어색한 옷이므로 그 연기는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역시 성장하려 애써보지만 그대로가다 파멸해 버린다.

영화 <쌍화점>은 스킵하고... 이후 <더 킹>에서 박태수 역을 맡으면서 조인성의 비열한 라인은 완성형의 연기에 가까워진다. 뭐랄까 조인성이 보여주는 30대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남성 인물의 분위기는 독특한 이질감의 조합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비열하고 야박하며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인물이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공에 대한 로망에 ‘혹’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더구나 조인성이 보여주는 큰 키에 날렵한 외모 역시 이 멋진 그림에 한몫한다. 그런데 정작 조인성의 약간씩 들뜨는 연기는 이런 유형의 인물에 현실감과 친근감을 준다. 우리는 많이 보았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성공의 슈트와 실제 인간의 몸이 어울리지 않아 삐걱대는 어떤 남성들의 모습들을.

최근 개봉작 <모가디슈>에서도 조인성은 본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아니, 지금껏 그가 보여줬던 연기 중에서 어찌 보면 가장 매끄럽고, 우아하며, 거친 면들은 적절히 다듬어졌다. 1990년대 초반의 성격 나쁜 잘생긴 엘리트 강대진 참사관이 그렇게 탄생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베테랑 배우 김윤석과 허준호는 한신성 대사와 림용수 대사를 그때 그 사람들처럼 정확하게 연기한다. 다른 조연배우들의 연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르포 같은 분위기에서 조인성의 캐릭터 강대진은 좀 다르다.

강대진은 <모가디슈>에서 스릴과 반전을 만들어내는 캐릭터다. 실화 사건 안에서 영화적인 사건으로 옮겨가는 사다리처럼 쓰이는 극적인 캐릭터이기도하다. 다른 인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무언가 계속 엇나가는 스토리를 짜야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여기에 암울한 분위기 안에서 얄밉지만 독보적으로 빛나야 하는 비주얼적인 매력도 갖춰야 한다. <더 킹>의 박태수가 오직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 영화라면, <모가디슈>의 강대진은 스스로 영화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만들면서 다른 인물들과도 조화를 이뤄야 하는 굉장히 복잡한 인물이었다.

<모가디슈>에서 조인성은 이 모든 조건에 타당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조인성의 강대진이 풍기는 쿨한 화이트컬러 엘리트 양아치 느낌은 이 영화를 순간순간 오락영화로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흐름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류승완 감독의 능력도 한몫했다.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유아인에게 조태오를 뽑아낸 것처럼, 남자배우의 독살스러운 면을 캐릭터화 시키는 그 능력 말이다.

어쨌든 <모가디슈>의 조인성은 그대로거나 파멸하는 대신 성장했다. <어쩌다 사장>의 허허 웃는 조인성보다 이쪽이 더 매력적인 선택지인 건 당연한 사실. SF, 히어로물,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성장한 조인성은 꽤 괜찮은 텐션을 지닌 배우가 될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영화 ‘모가디슈’‘비열한 거리’‘더킹’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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