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아가씨’, 신파 가족극 달인이 뽑아낸 막장 반죽 수타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KBS 주말극 <신사와 아가씨>는 오래된 클래식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바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다만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가 혈혈단신 고아였던 것과 달리 <신사와 아가씨>의 박단단(이세희)은 기생충 가족을 달고 있다. 그 결과 <신사와 아가씨>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는 전혀 다른 한국식 신파와 막장 양념이 스며든다. 이 기생충 가족 서사에서 또 다양한 고리가 엮이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신사와 아가씨>를 쓴 김사경 작가의 커리어는 MBC <오자룡이 간다>와 KBS <하나뿐인 내편>으로 대표되듯 전형적인 신파 가족극 계열이다. 임성한 식의 ‘빙의’ 서사 김순옥 식의 ‘부활’ 서사로 시청자를 당황스럽게 만들며 이목을 끄는 스타일은 아니다. 전형적인 가족극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슷비슷한 신파극의 재료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식이다. 결혼 반대, 고부 갈등, 출생의 비밀, 가족의 화해 이런 것들 말이다. 여기에 막장으로 간을 얼마만큼 맞추느냐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달라진다. 김사경 작가의 최근작 <하나뿐인 내편>은 박금병(정재순)의 치매라는 막장을 과도하게 사용해 시청률은 쭉쭉 뽑아냈지만 시청자들은 질린 경우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사와 아가씨>는 김사경 작가의 전작과 결이 다르다. 물론 임성한 스타일은 아니다. 사실 초반부에 배우 지현우가 연기하는 주인공 이영국이 1960년대 노신사에 빙의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인물 특유의 말투란 것이 밝혀지면서 이 드라마는 그저 전형적인 신파 가족극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신사와 아가씨>는 꽤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다. 마치 신파 가족극의 달인이 신파와 막장의 반죽으로 찰진 수타면을 뽑아내는 것 같은 경지다.

사실 이 드라마 주인공들의 로맨스는 그렇게까지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꽁냥꽁냥’의 장면이 이어지면 손톱으로 돋아나는 닭살들을 긁어가며 봐야하는 순간들도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박단단과 이영국을 둘러싼 기생충 가족 서사가 더 흥미롭다. 물론 그것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우리가 익히 김사경 작가의 가족극에서 보아온 것들이다. 출생의 비밀, 딸의 성공을 빌며 신분을 숨긴 채 지켜보는 친부모, 재벌가 여인들의 속물스러움 같은 것들.

하지만 <신사와 아가씨>>는 이 설정들을 코믹하게 잘 섞어놓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드라마의 문법을 유지하되, 재빨리 해결한다. 그런 이유로 등장인물간의 오해는 금방 풀려버린다. 그렇기에 박단단은 주변인들의 음모로 몇 번 위기에 처할 뻔했으나 그 위기는 이내 쉽게 끝난다.

또 기존의 가족극이라면 중반부가 지나서야 풀릴 비밀들 또한 쉽게 드러난다. 특히 박단단이 이영국에게 자신이 기생충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너무 빨리 털어놓거나. 혹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음모를 꾸며야 할 악녀 조사라(박하나)가 이영국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쉽게 까이는 설정 같은 것들이 그렇다. 더구나 그러면서 계속해서 또 다른 음모와 사건들이 화수분처럼 이어진다. 전형적인 고구마식 전개를 사용하지만, 목이 메는 고구마가 아니라 고구마라떼처럼 꿀떡 넘어가는 식이라 보기에 전혀 답답함이 없다.

더구나 <신사와 아가씨>는 <하나뿐인 내편>처럼 한 가지 막장 코드를 계속 밀고나가는 실수도 범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서도 왕대란(차화연)이 치매 연기를 하지만 그 설정이 채 한 달이 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1~2회 만에 들통이 나 버리는 것이다.

<신사와 아가씨>의 설정 자체는 흔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요즘 시청자의 코드를 제일 잘 반영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메시지나 플롯은 빤하고 모든 여성캐릭터가 이영국만 바라보는 가부장제 해바라기 로맨스나 다름없지만, 주말극 역시 유튜브 시대에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 노력은 한다는 인상도 준다.

그리고 드디어(?) 주인공 이영국이 산에서 굴러 떨어져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과연 <신사와 아가씨>에서 주인공의 기억상실증 이야기를 얼마나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갈지 사뭇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모쪼록 <신사와 아가씨>의 기억상실증이 <하나뿐인 내편>의 치매와 비슷하게 쓰이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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