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인가 의사인가, ‘내과 박원장’ 이서진이 남긴 페이소스

[엔터미디어=정덕현] “장사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내과 박원장>에서 박원장(이서진)은 저도 모르게 병원 운영에 대한 이야기에 자꾸 ‘장사’라는 단어를 꺼냈다가 말을 바꾼다. “장사가 잘 되나 보네”라고 말하려다 “병원이 잘 되나 보네”로 바꾸는 식이다.

이러한 박원장의 말 속에는 그가 개업의로서 처한 두 입장이 부딪친다. 하나는 병원 역시 엄연히 경영을 해야 하는 사업체라는 점으로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장사’라 지칭하게 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라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 ‘장사’라는 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직업윤리 의식의 발현에서 말을 바꾸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제 개업을 한 박원장이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민들은 <내과 박원장>이 담아내는 웃음의 포인트가 된다. 개원 첫날 파리만 날리면서 그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박원장은 어떻게든 환자를 유치하려고 별의 별 방법을 다 고민한다. 지역 카페에 올라온 악플 하나에 전면전을 선포하기도 하고, 병원 운영보다 TV에 나와 유명세로 돈을 버는 쇼닥터를 부러워하며 어떻게든 방송에 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코미디의 소재로서 끌어온다.

게르마늄 제품들을 줄줄이 온 몸에 달고 다니며 유사과학에 빠져버린 아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박원장의 모습은 그가 다름 아닌 의사라는 점에서 곰곰이 씹어보면 볼수록 웃음이 터진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커피 믹스를 아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박원장에게서는 웃음과 더해진 짠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364일 24시 야간 진료를 선택하는 개업의나 부업으로 대리기사를 뛰는 의사까지 <내과 박원장>에는 이게 의사가 맞나 싶은 의사들을 보여준다.

지금껏 그토록 많은 의학드라마들이 보여준 의사들은 종합병원에서 위급한 환자를 살려내는 성인 같은 의사들이나,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상대적으로 개업의들이 의학드라마에 적게 등장한 이유는 일반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갖는 정서가 기꺼이 응원할 만큼 긍정적이지만은 않아서다.

흔히들 개업의하면 의사의 생명보다는 사업(장사)적인 데 더 몰두하는 의사들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개업 자체가 경영적 의미를 담고 있어 그런 요소들을 빼놓을 수 없지만, 모든 개업의들이 그런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성형외과나 피부과처럼 생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술로 비보험이 적용돼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과들은 실제로도 장사가 더 주를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내과처럼(물론 요즘은 내과도 건강검진센터를 동시에 운영하며 돈벌이를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지만) 동네의원으로 가까이 환자들과 동고동락하는 주치의 개념의 의사들은 박원장처럼 장사로서의 현실과 더불어 의사로서의 직업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내과 박원장>이 직업윤리를 고민하는 의사가 현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장사꾼처럼 되어가는 모습을 웃음의 코드로 포착해낸 지점은 날카로운 면이 있다. 그것은 일단 우리가 생각했던 의사의 고정된 관념을 깨고 있어 웃음을 주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짠내 가득한 현실의 페이소스가 겹쳐져 있다.

8회에서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병원을 운영하던 박원장의 선배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364일 24시간 진료를 시작하다 결국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이야기는, 누군가를 살리는 직업인 의사가 개업의 현실 앞에서 자신조차 살리지 못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멀쩡해 보이지만 가발을 벗으면 대머리인 박원장처럼, <내과 박원장>이 그리는 건 멀쩡한 의사간판을 내건 병원들 중 상당수가 적자에 허덕이는 현실을 담아낸다. 물론 그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장사꾼이 되어버린 의사들의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까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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